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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지만 저에겐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왕뱀이 아파하는 거예요”
(본문.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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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어떤 작품을 평가할 때 ‘동화적이다’ 혹은 ‘동화스럽다’라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만, 막상 ‘동화적이다’는 수식어를 떠올리는 것은 무척 포괄적인 사유들을 담게 됩니다. 그것은 동화 ― 혹은 ‘아동문학’이라고 정의되는 장르가 내적인 문법에 분류되기 보다는, 그 독자의 대상에 따라 분류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해외에서는 동화로 분류되지 않는 작품들이, 국내에 번역되며 동화라는 표지를 붙이고 발매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동화는 그 대상에 따라 정의되는 장르이기 때문이죠. 그리스의 고대 우화인 <이솝 이야기> 같은 경우를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동화’ 자체에 문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게으르고 편리한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읽은 <톤톤과 번개푸레나무>를 소개해드리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은 ‘번개푸레나무’라는 상상 속 식물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그 문법은 무척이나 ‘동화’에 걸맞은 구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감평에서는 <톤톤과 번개푸레나무>를 동화적 문법에 따라 분석해보며, 아동문학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많이 살펴보지 말고 세 가지만 엉성하게나마 살펴보도록 해요!
첫째, 『목적지가 분명한 서사』
아동문학에서 보이는 특징은 그 줄거리가 무척 단순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과 그 갈등이 해소되는 지점이 무척 선명하다는 뜻이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톤톤’ 또한 이 명확한 서사와 배경을 보여줍니다. 톤톤은 나무에 사는 정령들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커다란 나무를 두고 열매와 껍질즙을 식량으로 살아가고 있죠. 이 이야기는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나무)이 피해를 입으면서 발생합니다.
(P.10) “우리가 먹고 마시는 열매와 껍질즙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P.20) “불쌍한 건 이 나무지. 나무가 저점 메마르고 있어.”
이 갈등은 특별한 경험적 토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그들이 사는 ‘집’이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량’의 상징입니다. 거주지와 음식이라는 삶과 맞닿아 있는 요소가 파괴되고 있다는 서사는, 그 소재만으로도 공감의 대상이 됩니다.
둘째, 『선(善)으로 비롯되는 영향력』
흔히 ‘동기’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인물들의 인과는, 그 작품의 줄거리에 있어서 깊이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해당 인물이 움직이고, 그 행동에 대한 결과와 보상은 줄거리에 대한 성취감뿐만 아니라, 그 인물이 움직여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에 대해 설득력을 주기 때문이겠죠.
흔히 ‘동화스럽다’고 표현하는 데는 이 동기적인 요소가 엮여 있습니다. 인물이 움직이는 이유는 무척 원초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며, 그 감정은 대부분 ‘선(善)’을 추구한다는 교훈적인 요소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이 <톤톤과 번개푸레나무> 또한 이 ‘선(善)’의 영향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실제로도 주인공 ‘톤톤’이 의미 있는 조력자들과 연결되는 계기 또한, 그 선한 성품에서 비롯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P.58) 톤톤은 까마귀의 처지가 공감이 갔어요, “따라와.” 그래서 까마귀 친구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어요. …(중간생략)… 가장 맛있어 보이는 열매 두 개를 몰래 꺼내 까마귀에게 나눠줬답니다.
(P.150) “누구든 간에 밥을 굶어야 하고 아파하는 건 옳지 않아요. 영감님, 저는 그것보단 왕뱀을 도와주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톤톤’은 공감을 무기로 삼는 주연입니다.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해결하는 데에 손을 내미는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보상을 바라는 행위가 아니라는 데에 있어서, 톤톤의 행동은 무척이나 성인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P.67) “같이 우리 주인님한테 가실래요? 우릴 도와줬으니 분명 주인님은 톤톤님에게 좋은 걸 줄 거예요.”
중요한 것은 그 선으로 비롯된 행위가 가장 만족스러운 보상으로 직결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연히 도와준 까마귀로부터 모든 사건의 해결책을 소개받는가하면, 자신의 터전을 망가뜨린 원흉에게도 공감하며 더 커다란 ‘선(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흔히 동화에서 ‘교훈적이다’라고 평하는 요소는 이런 명확한 보상으로 비롯됩니다. 조건을 바라지 말자는 다소 허황된 가르침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이 이 문학의 문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특별하진 않아도 능력이 돋보이는 주인공』
사실 나무에 살고 있는 수많은 정령들 중 가장 미숙한 톤톤이 주역이 된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화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오히려 어린아이가 시선의 중심을 잡는 쪽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릅니다.
어린아이는 기본적으로 힘이 부족한 존재입니다. 또한 시선이 좁고 사고가 미숙하죠. 흥미로운 점은 <톤톤과 번개푸레나무>에서 시선이 좁은 것은 오히려 어른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P.38) “조금만 더 참으라니까! 그럼 물푸레나무는 건강해져서 다시 열매를 잔뜩 줄 거야!”
(P.40~46) “우리 이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도 그게 좋다고 말했어. 제일 쉬워 보였고 생각을 안 해도 될 거 같았거든. 미안해, 톤톤. 사실 어른들도 바깥을 잘 몰라.”
어른들이 위기를 앞에 두고도 나서지 못 하는 것은 그들의 무력함과 미숙함에서 비롯됩니다. 썩어 들어가는 나무를 두고도 다시 건강해질 거라며 근거가 부족한 희망을 굴리는가하면, 왕뱀이라는 원흉을 앞에 두고도 마땅한 대처를 찾지 못 해 자리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P.160) “네가 왕뱀과 싸우지 않고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겠다. 넌 우리가 보지 못 하는 걸 더 잘 볼 수 있구나. 너는 번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을 제대로 본 거야.”
작중에서 인물들의 대사로 톤톤이 다른 정령들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투로 묘사됩니다만, 사실 톤톤이 다른 이보다 월등히 나은 능력을 보여주진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들이 보지 못 하는 것을 포착하는 능력보다는, 기존에 있지만 눈치채지 못 하는 것들에 눈길을 둘 수 있는 섬세함이 주목되는 편입니다. 그것을 ‘특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특별할 것이 없기에’ 더 돋보인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P.167) “아니, 이 아이는 다른 선택을 할 거야.” “우리와 달리 순간을 봤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순간’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중에서 두려움에 눈이 먼 정령들은 존재하지 않는 가정에 집착하며 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력자로 등장하는 노인 또한 왕뱀과 영문 모를 사투를 벌였고,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은 피해가 벌어졌다는 암시를 줍니다.
(P.150) “궁금하지만 저에겐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왕뱀이 아파하는 거예요.”
하지만 톤톤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노인과 왕뱀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정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톤톤이 바라보는 것은 오로지 현재입니다. 왕뱀이 아파하고, 나무가 썩고 있는 ‘현실’을 보는 셈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톤톤이 어린아이이기에 비롯되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사고가 미숙하기에 현재 눈에 비치는 것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이의 속성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속성을 벗어나, 지나간 과거와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아우르는 사고를 키우고 있던 어른들이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고들이 두려움에 살을 붙이고 있는 형편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톤톤이야말로 작품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시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겠죠.
(P.192) 정령들은 훗날 그 나무를 번개푸레나무라고 불렀답니다.
그렇다면 번개를 정지시켜서 가지를 만든 그 나무야말로, 우리가 봐야하는 ‘순간’의 상징이겠죠? 그 상징을 만드는데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는 것, 그뿐이겠죠. ‘특별하진 않아도 돋보이는’ 그것이 동화적 문법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주인공’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상 깊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글 기대하겠습니다!
PS.
고백하자면 저도 동화작가를 꿈꿨던 적이 있었어요…
<마녀가 죽었던 집>에 슬며시 ‘비단 옷을 입은 소녀’라는 창작동화를 끼워넣었던 기억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래전에 브릿G에 팬픽 형식으로 쓴 동화 한 편을 조심스럽게 소개해드릴까해요.
원본이 되는 소설도 멋진 작품이니 만큼 들려주시길 부탁드려요 ㅎ
<팬픽 동화> 누비 갑옷을 입은 용사와 푸른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