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이야기가 충분한지 측정하는 방법에 관한 고민 비평

대상작품: 칼디온 연대기 : 단검의 노래 (작가: 저녁, 작품정보)
리뷰어: 영선, 6시간전, 조회 8

애석하게도 그다지 좋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제 취향 문제도 있긴 합니다.

 

마치 자동사냥 게임을 멍하니 보는 것 같이 진행되는 웹소설들을 이전에도 읽어보긴 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투자와 재투자로 이어지는 이야기 진행을 보여주고, 『칼디온 연대기 : 단검의 노래』역시 이런 부류의 작품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이 투자(몬스터 사냥이건 노동이건)의 성과를 얻고, 그 성과를 다시 재투자하며 자산(금전 자산이건, 능력치이건, 사회적 지위이건)을 증식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도 대략 그런 부류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진행을 하는 작품들을 읽을 때면 대개, 너무 시시콜콜하지 않나… 하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이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재미있을지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칼디온 연대기 : 단검의 노래』(이하 『칼디온 연대기』)의 시시콜콜함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구석구석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는 등장인물의 대화는 마치 외국어 회화 교재 지문을 읽는 것 같았고, 주인공의 행적을 모조리 비춰주는 이야기와 문장은 완급이 없습니다. 전투 장면은 종이 인형을 세워두고, 그 앞에서 주인공들만 “힘만 센 녀석 같으니” “흥 여기까지다” “좋은 생각이 났어!” 같은 혼잣말만 부지런하게 늘어놓는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어차피 고블린, 코볼드, 슬라임 같은 던전&드래곤에서 나오는 친숙한 적이 나오면 설명을 생략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을 텐데도 그 장점을 일부러 피해 갑니다.

도입부 역시 너무 시시콜콜한데, “한때는 모두가 살기 좋았던 초대륙 칼디온”부터 조금 움찔하게 되죠. 모두가 살기 좋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일단 의아해지는데(후술하겠지만, 온갖 것을 시시콜콜 말해주는 작품인데도, 짚어줘야 할 것 같은 부분은 의외로 휙 넘어가곤 합니다) 그다음에는 대륙이 쪼개지고 제국이 있고 왕국이 있고 엘프가 있고 무역과 농업이 발달하고 기후가 급격히 변화했다는데 결국 이 긴 설명의 도착지는 북쪽의 작은 마을입니다. 솔직히 조금 허탈했습니다.

“대륙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도입부, 그리고 프롤로그의 전투 장면에서 이미 드러나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흔히들 말씀하는 “설정을 주구장창 늘어놓지 말라”라는 금언을 어겨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생동감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장황한 대륙 설정 설명도, 한가한 혼잣말로 이어지는 전투 장면도, 이후 전개되는 주인공의 행적에서도, 생동감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것저것 사건이 일어나긴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오랜만에 “게임 캐릭터는 마우스 커서와 같다”라는, 이제는 별로 통하지 않을 의견이 오랜만에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도 커서 같았거든요.

작가님을 비난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격렬한 자기반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식은땀이 흐르며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이것이 이번 리뷰를 쓰게 된 이유로, 이번 리뷰도 자기 반성을 위한 리뷰가 되겠습니다. 과연 무엇에 관한 반성이 될 것인가…

 

지난 4월 24일, 저는 연재중인 작품 『만들어진 신들의 세계와 소녀의 논 캐논 신화』 2화를 고쳤습니다. 『칼디온 연대기』를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고쳤는지, 아니면 마침 이걸 고친 뒤에 『칼디온 연대기』를 본 탓에 충격과 부끄러움이 더 커졌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습니다(전자일 가능성이 좀 더 큰 것 같습니다).

 

2화를 고치게 된 연유는, 제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얻은 중요한 규칙,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실히 하라”를 어겼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화에서 캐릭터 콜렉팅 게임 덕후들이 모인 것 같은 종교를 묘사하려 했는데, 문제는 그것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하지 못하고 그저 세계관 설정을 보여주려는 시도에 그쳤다는 점입니다. 『칼디온 연대기』의 도입부(“한때는 모두가 살기 좋았던 초대륙 칼디온…”)와 똑같은 문제가 있었죠. 제가 제시하려는 세계의 풍경이 대단히 독특하거나 흥미로웠다면 그걸로도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별로 그랬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작품 2화에, 자신이 좋아하는 마이너 신의 신화 업데이트가 있을지 조마조마 기대하는 주인공의 묘사를 추가했습니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좀 더 하려고 해본 것인데, 이 조치로 충분했을까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충분한지 어떤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솔직히 잘 모릅니다. 저는 여태껏 능수능란한 작가가 되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저는 이 2화 내용 수정과 연관해서 『칼디온 연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인물의 행적을 시시콜콜 묘사하는 서술, 온갖 설명을 대사로 늘어놓는 인물들, 종이 인형을 두고 싸우는 것 같은 전투 장면들의 문제는 한 마디로 생동감이 없다는 것이며, 생동감이 없는 이유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요.

 

대체 뭐가 부족했기에 주인공의 이야기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인가? 저는 단지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이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으음…

 

우선 떠오른 궁금함은, “대관절 모험가는 어떤 직업인가?” 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점이지만, 은행계좌 개설이나 점심 메뉴 같은 것조차 시시콜콜 설명하는 작품에서 모험가가 어떤 직업인지는 제대로 짚지 않는 것이 의아합니다. 물론 모험가야 대충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 것입니다만, 주인공이 일부 인물의 반대에도 모험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보이고 있으니, 세계관에서 모험가가 어떤 위상을 갖는지는 알아야 주인공의 욕망도 구체화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가령 주인공의 아버지 존은 용병이었다는데, 이 세계에서 용병과 모험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요? 프롤로그에 따르면 모험가들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지휘관이 없으면 오합지졸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굳이 길드를 조직하고 메달까지 발급받으며 폼을 잡는 이유가 뭔가요? 또, 대삼림의 조사작업에서 모험가로는 할 수 없는 스케일의 작전에는 군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군대보다도 능력치가 낮은 이런 직업이 왜 있어야 하며, 왜 생겨났으며, 더 나아가 이런 직업을 주인공은 왜 멋있게 여기나요?

 

토가시 요시히로의 만화 『헌터X헌터』의 중요 직종, 헌터가 떠오릅니다. 위험한 지역으로 모험을 다니는 직업이라는데, 신묘한 특기가 있는 전문가들인 건 알겠지만 이걸 직업이라고 하기엔… 그냥 능력 많은 부랑배 아닌가? 싶은 점에서도 헌터와 모험가는 비슷합니다. 심지어 각 작품의 주인공이 존경하고 동경하는 인물들(곤의 경우 아버지와 카이, 트리온의 경우 스티브) 때문에 헌터/모험가를 지망하게 되는 점도 비슷하죠.

그러나 『헌터X헌터』는 헌터의 사회적 지위를 설정해서, 이것이 선망되는 직업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등장인물들은 헌터의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활용해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이루려고 하고요. 누구는 일족의 복수를 하려 하고 누구는 돈을 많이 벌어들이려고 합니다.

『칼디온 연대기』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헌터와는 달리 모험가는 천대받는 직업이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직업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며, 그렇기에/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이 직업을 선망한다면 왜 그러한지, 주인공의 개성과 욕망에 맞물려 설명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칼디온 대륙의 사정이 설명되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모험가라는 직업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왜? 모험가가 되기를 원하는 주인공이 나오니까요. 가령 대륙이 쪼개지고 마물이 준동한다고 설명되는데, 이와 관련해서 모험가의 필요성이 설명될 수도 있었겠습니다.

 

아마 몇 가지 더 예를 들어볼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일일이 제 아이디어를 주절거리기보다는(저 자신도 작품 2화를 허둥지둥 수정한 비숙련 작가에 불과합니다), 본질적인 고민거리를 다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관절 “주인공의 이야기”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죠. 주인공의 이야기가 뭔지 정의해야, 그것이 충분한지 어떤지도 측량할 수 있을 테니까요.

 

1화 프롤로그에서 존이 사투를 벌이는데(존은 프롤로그의 주인공이라고 해야겠지요) 이것은 왜 주인공 이야기가 아니죠? 로레인을 만나고 낚시를 하고 돼지를 치고 술집 사장 아들 친구와 만나 대화하고 다 주인공이 하는 짓인데 왜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일까요? 심지어 제가 불평했던 도입부(=칼디온 대륙 개론)는 왜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인가요? 주인공이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것인데?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라.” 제가 저 자신에게 이런 규칙을 정해준 데서 아시겠지만, 저는 이 규칙을 자주 어깁니다. 『칼디온 연대기』를 통해 반성해본니, 지금까지 저는 적당히 감으로만 해왔습니다. 반성합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의 내려 설명하지 못하니, 충분했는지 어떤지 측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니 저도 2화를 부랴부랴 고쳤던 것이겠죠.

더구나 그런 주제에 『칼디온 연대기』를 논평했으니 구체적인 논거 제시로 책임을 져야만 하겠습니다. 겸사겸사 저도 명확한 규정을 해봐야겠고요.

 

어쨌든 작가는 나름대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니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측량하기 위해서는, “하는가?” 보다는 “충분한가?” 쪽을 따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디온 연대기』 17화 「로레인이 읽은 책」은 아주 좋았는데, 물론 제가 소녀 캐릭터의 이야기에 마음이 쏠리는 탓도 있겠지만, 그리고 17화도 시시콜콜한 외국어 회화 지문 같은 대화로 가득하지만, 로레인이 책에서 트리온의 메모가 적힌 책갈피를 발견하는 장면, 그렇게 해서 시무룩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사제로의 길에 심기일전할 계를 얻는 것, 또 트리온과 심적인 관계가 변화하는 것은 아주 좋았다고 해야겠죠. 더구나 로레인이 책에서 읽은 내용은 주인공의 단검에 관해 정보를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단검으로 할 수 있는 것, 앞으로 맞이할 운명을 예측할 정보들입니다.

 

유독 좋게 느껴졌던 17화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라”에 관해 생각해 볼 중요한 힌트이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라고 하니까 양적인 것만 생각하게 되는데, 양도 양이지만 정밀함이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17화에도 작품의 단점(시시콜콜한 외국어교재풍 대화)은 비슷하게 있습니다만, 아주 잘 된 부분들 덕분에 단점이 상쇄되고 아주 느낌 좋은 에피소드가 되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주인공의 이야기가 좀 더 선명하도록 작가가 정보를 깎아낼 수 있다면, 주인공의 이야기는 충분해질 수 있습니다. 기존 분량에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저는 2화를 수정할 때 깎지 않고 덧붙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선명하게 해야 할까? 저 역시 이것에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하여 실패를 반복하니, 좀 더 객관적으로 측량할 수 있는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주인공에게 무슨 상관인가?” 이 질문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모두가 살기 좋았던 칼디온 대륙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꽤 자주 했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의 도입부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선명성을 떨어트리는” 정보 덤핑이었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위래 작가님의 초고 지침이 생각나네요(“초고 내용의 다음에 올 이야기를 써라”). 아마도 작가 스스로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충분했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 이런 솔루션을 제안하시는 것 아닐까, 이번 기회에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도입부는 단순히 독자들을 붙잡기 위해 “나는 좆됐다”같은 재밌는 표현을 궁리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아마도 어떤 주인공의 이야기를 할지 소개하는 곳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주인공의 이야기가 더없이 충분해야(선명해야) 하는 지점이며, 충분하기 위해서는, 채우는 것만큼이나 덜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래는 도입부로 떠올려 본 지점들입니다.

 

1.존의 전사 : 트리온이 부상당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는 것부터 시작. 이타적인 마음으로 비장하게 싸우다 죽는 존경스러운 아버지가 묘사되는 동시에, 아버지를 잃는 충격이 주인공에게 새겨집니다(주인공의 신념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유언과 함께 단검을 물려받습니다. 이를 통해 단검은 (비록 몸은 떠나갔지만) 늘 트리온을 지켜주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상징하게 됩니다. 이후 전개에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아버지에 대한 트리온의 입장이 묘사될 수 있을 것입니다.

 

2.로레인과의 만남 : 청소년의 짝사랑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로레인은 견습 사제이고, 트리온은 적성에도 안 맞는 성직을 강요당하고 있으니 이런 대조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트리온이 성직을 강요당하느라 느끼는 반항심과 스트레스, 그 반발작용으로 더 강해지는 모험가 동경이 묘사된다면 남자 청소년 주인공다운 반항아 캐릭터가 조형될 수도 있겠네요. 한편 두 소년소녀는 모험가를 동경한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로레인이 모험가를 동경하는 모습이 묘사되고, 트리온과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 둘의 감정이 강렬하게 연결될 것도 같습니다. 이 둘이 모험가를 동경하는 이유를 대화로 주고받으면서 『칼디온 연대기』의 세계에서 모험가가 어떤 위상을 갖는 직업인지도 설명될 것 같습니다. 로레인에게 더 멋져보이고 싶다는 마음에, 트리온이 모험가를 더더욱 모험가를 선망하게 되는 전개도 공상해 보았습니다.

 

3.멧돼지 방어전 : 멧돼지 방어전 직전의 상황에서 시작. 주인공은 전투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습니다. 로레인과의 만남을 섞어놓을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멧돼지 방어전을 앞둔 상황에서 트리온과 로레인이 처음 만날 수도 있고, 이미 구면인 상태로 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에게는 로레인이 여기서 처음 소개되는 것입니다. 비장한 분위기로 단검이 등장하게 되며(주인공은 단검을 아무한테나 보여주지 말라는 경고를 이미 받았지만, 로레인에게는 보여줄 수 있다고 여기며, 심지어 보여주고 싶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버지도 마을을 지키려고 싸우다 죽었으니까요. 이 공상을 할 때 저는 에반게리온 라미엘 방어전 직전, 레이와 신지의 대화도 떠올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번이 제일 좋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풋풋한 청소년 연애담도 좋아해서 2번도 좋습니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 미숙련 작가인 제가 이래라저래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늘 그랬듯 다른 분의 작품을 통해 저 자신을 반성하는 것일 뿐입니다. 『칼디온 연대기』의 도입부에 대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망상해 보았는데, 보다시피 과감할 정도로 내용을 떼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나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렇게 과감한 떼어내기를 할 수 있을까? 분명 『만들어진 신들의 세계와 소녀의 논 캐논 신화』 도, 다른 분이 비평적인 예리한 눈으로 본다면 주인공의 이야기를 “충분하지 못하게 하는” 시시콜콜한 것들로 가득할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저 스스로 측정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네요.

저는 제가 떠올린 세계를 시시콜콜 늘어놓겠지만, 작가인 나는 아마 그것이 필요한 이야기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것들이 죄다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머릿속에 구상한 플롯을 밀어붙이는 데에 급급하여, 주인공이 생동감을 잃고 (플롯 진행을 위) 정보를 시시콜콜 덤핑하기도 할 것입니다(주인공은 주절거리는 설명에 파묻혀버리겠지요).

 

결국 글 쓰는 내내 나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 쓰는 이것이 주인공에게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여기서 “무슨 상관인가?”에 대답하는 관점도 어쩌면 작가마다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는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주인공에게 상황이 주어지고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감정적 입장이 드러나고 그것이 인물의 행동과 이야기의 동력원이 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작품을 쓰고 검토할 때 이 측정기준을 써보려고 애써야겠습니다.

 

가령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선량함이 늘 강조되니, 주인공의 선량함이 꼭 필요한 세계가 제시되어야 했겠다고 생각합니다. 칼디온 대륙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은 그것을 위해 일어나야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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