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이별을 했을 때, 그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온통 행복 가득한 핑크빛이었다면, 이별 후의 시간은 아픔만이 가득한 어둠 그 자체였다. 특히나 그 어둠 속에서도 그와 관련된 기억들은 사소한 물건하나까지도 어찌 그렇게 잘 보이던지. 보이는 것들 하나하나가 추억이고 또 아픔이었다. 충분히 합의된 이별이었음에도 그렇게 아픈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나만 남겨지는 기분은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어릴 적 칼국수를 먹다가 면이 기도에 걸려 위험했던 순간 이후로 국수는 입에도 대지 않는 나에게 자기는 다양한 레시피의 국수를 만들어 준다. 남자친구 입맛을 돌려놔야지 요리사를 할 수 있을 거라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떠나갔다. 사랑을 하고, 꿈을 함께하고, 치유가 되어줬던 사람이 떠나간 것이다.
<자기에 담은>을 단순히 이야기한다면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떠나갔기에 더 아플 수밖에 없는 이별의 감정들과 일상의 흔적들이 뒤섞여 나와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뒤섞인 감정과 의식을 글로 담아낸다는 듯이 현재 시점과 과거의 시점을 자유롭게 전환해가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혼란스럽게 느껴질 의식의 전환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또한 그런 힘이 작품의 끝까지 유지된다는 사실은 독자들을 이 작품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누구나 빠져들어서 이 작품을 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앞서 <자기에 담은>을 단순히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정리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큰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있다. 작품 소개를 먼저보고 작품을 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하는 나도 남자고 자기도 남자라는 사실에 말이다. 그렇다. <자기에 담은>은 동성애를 다루는 퀴어 소설이다.
이 작품이 퀴어소설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읽었다면 당연히(?!)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로 생각하며 읽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남남간의 사랑이야기라는 사실에 충격을 한 번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충격을 받아야했고, 도대체 뭐가 당연한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서 이 이야기가 그냥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였다고 하면 한없이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녀가 남남으로 바뀌어서 그런 감정들이 바뀌었다면 그것은 그저 동성애에대한 막연한 거부감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남녀나 남남이나 결국에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인데 말이다.
이정도의 동성 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그게 뭐?,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떠나간 자기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이다. 우연하게 자기 스스로가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게 되면서 직장 동료들의 괴롭힘을 받게 되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자살을 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단순한 괴롭힘이 그 이유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회적으로 부정당했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아닌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경우를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던가?!
동성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기가 참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들의 입장이 아니기에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해하기위해 노력은 해봤으며,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고 최소한 그들을 인정은 하려고 한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들의 취향이나 감정들에 대해서 말 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타살이나 하는 말들을 사라지게 하는 시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에 담은>은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꺼번에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이야기하는 로맨스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해서, 국수를 등장시키면서 테이스티 문학상을 한 번 쳐다보고, 결정적으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양함이야 어쨌든 확실한 것은 확실히 읽는 맛이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맛있게 읽다보면 독자들 스스로가 그 영양분들은 알아서 흡수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작가의 의도도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