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된 경험으로서의 비극을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으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사고는 그 자체로 거대한 불행이었지만 그럼에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었지요. 당시 모든 사람이 분노와 슬픔과 애도로 이 시기를 보냈다고 믿고 싶지만, 누군가는 안도했고 누군가는 외면했으며 심지어 누군가는 기뻐하기도 했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립고등학교 교사 ‘한영준’을 서술자로 세우며 바로 그런 관점 중 하나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영준은 부조리한 세상사에 곧잘 순응하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도심에 있는 8층짜리 건물이 무너져내려 그 안에 있던 아내가 죽었음에도 그의 순응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는 변하지 않죠. 아내와 따로 살던 영준은 그날 그 건물에서 아내를 만난 뒤 조금 떨어진 키즈카페에서 딸 ‘혜은’과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준은 약속 장소로 가던 중 사고 소식을 듣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딸의 존재를 떠올립니다. 영준은 오로지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밖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한심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런 영준이 사고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것은 정작 영준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내의 동생인 ‘지환’의 요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유족들이 있는 현장에 방문했다가 의례적인 위로를 몇 마디 건넨 것이 촬영되어 전파를 탄 것이죠. 문제는 그 장면이 영준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영준이 근무하는 사립학교는 교원의 정치적 행위를 사실상 금지하는 극단적인 수구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사고 희생자의 유족으로서 경찰에게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당연한 일마저도 예외는 아니죠. 학교 측은 영준이 방송에 나왔다는 이유로 휴직 연장을 권고합니다.
영준은 사고 관련 취재를 맡고 있는 PD ‘희선’에게 연락합니다. 둘은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잠깐 사귀기도 했고, 영준의 결혼 이후에는 불륜의 상대이기도 했죠. 방송에서 자신이 나온 장면을 삭제하라고 다그치는 영준에게 희선은 ‘남 탓하지 말고 네가 할 일을 하라’고 말해줍니다. 항상 세상과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그때그때 알맞게 처신하는 삶을 살아온 영준은 그 말의 의미를 끝까지 알아내지 못하겠죠. 영준에게 남은 것은,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단 한 번의 불운에 삶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는 억울함과 답답함뿐입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 책임을 다시 영준에게 묻게 되지요. 왜 그럴까요.
생각해보면 도심 복판에서 초대형 사고가 발생한 일부터, 아내를 잃은 일, 현장을 방문했다가 방송에 잡힌 일, 직장에서 휴직 권고를 받은 일까지, 이 안에서 영준의 의지대로 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준은 그저 상황을 봐가면서 최선을 다해 처세술을 발휘한 기회주의자일 뿐이죠. 다시 말해 영준은 이 사고와 관련해서는 죄가 없는 인물이에요.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서 독자가 가장 큰 책임을 묻게 되는 인물은 다름 아닌 영준입니다. 그건 죄에 대한 책임이라기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삶에 불성실했던 자에게 묻게 되는 책임이죠. 즉 이 작품에서 건물 붕괴 사고는 단순한 사건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다루어집니다. 그리고 소설 「부재」는 이 거대하고 불합리한 사회 현상으로부터 야기되는 삶의 과제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고찰하는 작품이죠. 그 태도에 따라 우리는 개인으로서 진정으로 존재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반대로 부재하는 삶,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현상이 거대할수록, 그리고 사회 구조가 불합리할수록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손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자라나 사회 분위기를 지배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개인은 마땅히 내야 할 목소리를 잊은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여기게 되죠. 영준의 무기력한 삶의 태도는 바로 그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옆에서 끊임없이 현상을 개선하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근본적으로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