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이나 형사에게는 일종의 시그니처로 여겨지는 습관이나 특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탐정에겐 후식이 있어야 한다>의 주인공이자 자칭 한국 유일의 강력 사건 전담 탐정 공서진의 경우에는 그것이 ‘식탐’이다.
경기도 광주의 야산 폐차장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취재하러 온 일간지 사회부 기자 양희주와 만난 공서진은 첫 만남부터 엄청난 식욕을 보여 양희주를 놀라게 한다. 첫날엔 모둠전, 도토리묵, 꽈배기, 소프트아이스크림, 파인애플 꼬치, 쥐포, 소 곱창을, 이튿날에는 파스타에 소고기 국밥, 가래떡, 닭강정, 바게트 빵 등을 먹어치운다. 계산은 전부 양희주의 몫인데도 그는 좀처럼 공서진을 미워하지 않는다. 공서진의 먹부림(!)이 사건 해결로 이어질 것을 기자의 본능으로 예감한 걸까.
그런데 왜 하필 공서진은 수많은 것 중에 음식에 탐욕을 보일까. 공서진은 “허기가 지기 시작하면 생각도 잘 안되고 말도 안 나옵니다.”라며 자신의 식탐을 변호한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그의 말이 맞겠지만 실질적인 이유로는 부족하다. 음식은 친분 없는 사람들이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렇다. 사건 현장에서 처음 만난 공서진과 양희주는 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모둠전을 먹으면서 각자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추리한 바를 공유한다. 뒤이어 후식으로 도토리묵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공서진은 묵 파는 할머니부터 사건 현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공서진에게 음식은 자신의 추리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자 정식으로 수사권을 위임받지 않은 탐정으로서 비공식적으로 행하는 탐문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 소설의 제목은 <탐정에겐 ‘음식’이 있어야 한다>가 아니라 <탐정에겐 ‘후식’이 있어야 한다>일까. 공서진에 따르면 “후식이란 식사에서 부족했던 것을 채우는 식사의 마무리”이며 “어떤 식사를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공서진에게 있어 후식의 정의가 일반적인 후식의 정의와 약간 다르다는 것이다. 보통 후식 하면 커피나 차 같은 음료나 케이크, 과일 등을 떠올리고 사전에도 “식사 뒤에 먹는,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따위의 간단한 음식”이라고 나오는 데 반해 공서진의 정의는 훨씬 광범위하다.
공서진은 모둠전을 먹고 기름으로 텁텁해진 입을 도토리묵과 막걸리로 개운하게 만들거나 파스타를 먹고 느끼해진 속을 얼큰하고 시원한 소고기 국밥으로 달래는 식으로 주요리를 후식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덜떨어진 대식가”라는 세간의 평에 갇혀서 보면 단순한 먹부림으로 보이지만, 고기구이를 먹은 후 입가심으로 된장찌개에 밥, 냉면 등을 먹거나 김밥을 먹은 후 마무리로 컵라면을 먹는 경우가 현실에도 종종 있음을 떠올리면 아주 이해하기 힘든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후식이라고 하면 음료나 과일 정도를 떠올린 것이 안일한 생각으로 여겨진다.
공서진은 자신이 “식사에서 부족했던 것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후식을 먹는 것처럼 범인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미진했던 부분을 충족할 목적으로 후속 행위를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살인 사건의 ‘주요리’로 보는 살인이 이 사건의 경우에는 ‘후식’일 수 있음을 간파한다. 이 대목이 이 소설의 백미이자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작가는 이 밖에도 닭강정의 유래, 바게트의 탄생 비화 등을 통해 편협한 사고방식에 갇혀 현상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맛도 있고 멋도 있는 추리 소설의 탄생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