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는 ‘나’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강박증으로, 그 때문에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어떤 이야기라도 해야 합니다. 마치 ‘꼭두각시 서커스’의 가토가 걸린 것 같은 이 병 때문에 아르바이트에서 다섯 번이나 잘린 ‘나’는 여섯 번째 아르바이트로 청계천의 허름한 헌책방의 점원이 됩니다.
그 서점에는 한 눈에 봐도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주인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손님들이 드나듭니다. 그리고 서점의 한쪽에는 책으로 지은 것 같은 구조물 안에 어떤 소녀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 소녀는 ‘나’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잠자는 여왕의 종이 궁전 아래에서’는 이치에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니, 아예 대놓고 말이 안 되는 내용이지요. 주인공이 주절주절 떠들어야 하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있고, 이상하게 한가로운 서점에 취직한 것 까지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책에 물을 주어야 한다는 둥 하는 주의사항을 줄줄 늘어놓는다거나, 카운터 옆에 여자가 CD 플레이어를 끼고 누워 있는다거나 하는 상황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으므로 거기서부터는 앞뒤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런 몽환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하는 용도로 내러티브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줄거리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단편은 줄거리를 꼼꼼하게 따라가지 않더라도 그 이미지를 즐기는 것만으로 그 맛을 느끼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맞닥뜨린 대상과, 그가 보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신비한 공간의 묘사입니다. 어쩐지 장르 소설에서 ‘판타지’라 하면 서양식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중세 배경에서 활약하는 모험담 같은 식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사실 근본적인 의미의 판타지라고 하면 이런 소설들이 더 가깝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잠자는 여왕의 종이 궁전 아래에서’ 그러한 개념에 충실한 기담이며 환상 소설입니다.
인물들이 말도 안되는 대화를 나누고,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헌책방 속을 부유하며 맞닥뜨리는 것은 일종의 해방감입니다. ‘제일 좋은 작가는 죽은 작가다’라는 말을 하며 혹시라도 그 작가가 숨겨놓은 미발표작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전집주의자 손님에게 점원인 주인공은 미저리처럼 그 작가를 가두라고 합니다. 그 손님은 나중에 찾아와 작가를 감금했다면서, 글을 실컷 쓰게 하고 그 가죽을 벗겨 책 표지를 만들 거라며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이게 상황에 따라서는 굉장히 불쾌한 대화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편에서는 그 공간 자체가 왜곡되어 있고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것조차도 재치 있는 문답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의 중심에 여주인공인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자신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어야 잠들 수 있으며 자신이 깨어나면 세상이 끝난다고 합니다. 주인공의 병과 마치 짝을 이루는 것처럼 고안된 소녀의 욕망은 이 이야기를 또 다른 단면으로 확장시킵니다. 앞에서 내러티브가 중요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했지만 이쪽으로 넘어가면 한편으로는 그게 결정적인 감상 요소가 됩니다.
누군가에게 계속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존재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작가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의 강박은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작가의 창작 욕구입니다. 자연스럽게 소녀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독자이며, 혹은 그를 발산하도록 돕는 창구가 됩니다. 서점은 그런 욕망을 구현하는 거대한 작가의 머릿속 자체입니다.
이건 노골적인 상징인 ‘서점의 책’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주인공은 소녀에게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재미없다는 소녀의 말에 따라 서점에 꽂힌 책을 꺼내서 소녀에게 읽어줍니다. 그러다 읽어줄만한 책이 점점 없어지면서(책방의 넓이와 장서 보유량을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게 됩니다.
이는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어떠한 패턴에 의존하게 되고, 아이디어가 있지만 갈수록 그것이 고갈되어 억지로 이야기를 짜내게 되는 작가의 사정과 닮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소녀가 주인공이 지어내는 이야기에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요구하면서도 계속해서 단점을 지적하고, 주인공이 해주는 얘기가 재미없다며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끝은 소녀가 주인공의 이야기에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소녀의 대사는 의미심장합니다. “당신의 이야기에는 당신의 삶이 담겨있지 않아. 그래서 지루하고 끔찍하고 재미없어.”
이러한 소녀의 반응은 결국 자연스럽게 작별로 귀결됩니다. 더 이상 둘은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지요. 아르바이트는 끝이 나고 서점은 사라집니다. 서점을 배경으로 한 환상도 끝이 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서점의 환상이 일단락되면서 정말로 소녀와의 작별이 어떠한 세계를 끝내는 의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말에서 그는 혀가 잘립니다. 작가의 창작 욕구가 주인공의 병이므로 혀가 잘렸다는 것은 일련의 그런 욕망이 끝이 났다는 의미입니다.
배드 엔딩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끝이 났을까요. 서점은 영원히 문을 닫고 주인공의 증세는 완전히 없어진 걸까요. 창작욕은 사라지고 글쓰기에 대한 꿈은 사라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욕구를 발산한 결과가 이 작품이기 때문이죠. 그런 식으로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서점과, 소녀와, 주인공의 아르바이트와, 그 거대한 환상이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