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고 싶은것을 쓴다는 것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트리거 (trigger)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montesur, 17년 5월, 조회 107

오늘날 우리가 보고 읽고 접하고 쓰는 모든 좀비 이야기는 조지 로메로 라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글쎄 메이크업 담당 정도가 배우와 트로피를 나누어 가지는건 좀 너무 하지 않은가?)

클래식 3부작 시리즈와 조금은 팬심을 담아 우겨 보자면 ‘Land of dead’에서 까지 조지 로메로는 좀비 라는 소재로 할 수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다 끄집어 내서 우리에게 선보였다.

때때로 ‘좀비를 주제로 하늘아래 이토록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내가 생각해 내다니!’ 라는 뻔뻔한 태도로 낡디 낡은 이야기를 대단히 참신한 이야기 인양 펼치는 창작자들을 보고 있자면 뒷골이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제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거기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성의와 학습 정도는 하고 시작하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기분이랄까?

반면 좀비는 그저 이야기의 진행을 원할히 하고 정조를 보충해지는 소도구 정도로만 쓰고 자기 할말만 하는 부류의 창작물들이 대세라는것도 인정할수 밖에는 없을것같다.

엄성용 작가의 본작 역시 그러한 부류의 이야기다. 좀비는 그저 두 주역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배경을 제공해주는 소도구로 활용된 권격 단편 이라고나 할까?

내겐 좋은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해괴한 재미를 준 단편이긴 했다.

일단 캐릭터가 좋다 .여기에서 좋다는건 잘짜여지고 공감이 가는 참신한 인물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상투적이라 누구든지 몇단어의 서술만 봐도 ‘아 재는 저런 인물이겠구나~’라는 예측이 쉽게 되는 캐릭터란 의미다.

특히나 이런 이야기에서는 악역의 매력이 중요한데 ‘샌더스 대령’ 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놀랍도록 빨리 악역 캐릭터의 외양을 규정지어 버린다. 다분히 만화적으로 캐리커처화 되어있지만 뚱보에 수다쟁이고 허세가 심한 악당이라니? 적어도 너무 뻔하디 뻔해서 관심도 안가는 악당들 보다는 한참 괜찮지 않은가?

반면 우리의 성식군은… 언제나 그렇듯 성식이 스럽다. 괜찮다. 어차피 이런 극에서의 주역 캐릭터는 이야기의 목적에 맞게 충실히 구르기만 하면 되는거니깐.

굉장히 뻔뻔스러운 태도로 성식군의 선배의 장황한 설명으로 세계관을 퉁치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숨쉴 겨를도 없이 이야기의 하일라이트 이자 작가가 가장 공들여 설정한 고물차 안에서의 샌더스 대령과 성식군의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다.

엄성용 작가의 작품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한정된 무대이다. 아마 작가의 작품중 가장 협소한 장소일테고 가장 뛰어난 액션씬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재미를 위해 자세한 설명은 건너뛰겠지만 여기서 액션을 펼치는게 가능해?라고 생각되는 협소한 공간과 동선도 제대로 뽑아내기 힘든 거리에서 전성기의 성룡 영화를 연상케 하는 기물을 한껏 활용한 액션이 펼쳐진다.

사실 이런 장면 연출이 엄성용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자 단점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로는 담아내기 힘든, 어쩌면 불가능한 장면이다. 카메라를 어떻게 설정하고 CG를 활용한다 해도 도저히 사람의 눈으로 이해 가능 한 프레임과 동세를 담아내기는 힘들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 중 가장 연극 무대적인 연출이 뛰어났던 아즈카반의 죄수에서의 밀실 대치 장면이 영화에서 얼마나 밍숭맹숭하게 연출되었는지를 떠올려 보시라. 심지어 그 영화의 연출은 헐리웃에서 카메라를 가장 잘다루는 감독중 한명인 알폰소 쿠아론 이였다.)

반면 활자 매체로 이를 접하는 우리에겐 상상력이란 강력한 무기가있다. 수십대 수백대의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배치하고 원한다면 뒤로 감거나,반복 재생을 하거나, 줌인/줌아웃도 원껏 할수있다.

다른 독자들에겐 어떻게 여겨졌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장면을 굉장히 즐겼다. 반면 이러한 권격 장르, 특히 지근 거리에서 합을 주고받는 전성기의 성룡영화나 액션 장면 내내 A4 용지에 살을 베는 느낌을 끝도 없이 전해주는 The Hunted 같은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이 장면이 어떻게 다가 왔을까? 궁금한 지점도 있다.

아쉬운것은 이후의 반전과 이야기의 마무리가 급속도록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하고 싶은건 다 보여줬어~ 라는 느낌까지 받았다고나 할까? 기껏 공들여서 구축해 놓은 지근 거리에서 합을 주고받는 고수들이 대적하는 상대의 성격이 어울리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 같기도하다.

이건 마치 전성기의 성룡이 에일리언의 세계관에 뛰어든 느낌마저 들지 않은가?

(말해 놓고 나니 의외로 재미난 조합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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