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 댓글 단 독자가 저 뿐이라고요?
시대에 발맞춰(?) 혐오를 소재로 내걸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 제목에 “혐오”자가 들어가고 있고, 1화 제목도 “혐오가 미래 에너지라고?” 이지만, “혐오”라는 소재가 활용되는 양상에 대해서는 고찰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작중 인류에게서 채취되는 뇌 에너지도 혐오 에너지가 아니라 불행 에너지이고, 주인공 태연에게서 채취되는 에너지는 김우진, 김성찬 등의 등장인물이 숨 쉬듯이 지르는 혐오 발언/행위에서 유발되는 분노와 스트레스이기는 합니다. 인류를 “특출난 불행 에너지의 원천”으로 만드는 것은 촘촘한 혐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혐오가 소재로서 나름 중심적이라고 할 수도 있으려나요?
반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타인의 혐오발언이 아니라 현실적인 금전 문제나 학업 문제, 자녀 문제 때문에 불행 에너지를 생성하는 지구인도 있지 않겠어요? 오히려 혐오의 주체인 탓으로 유발되는 불행 에너지도 있을지 모릅니다. 흐음. 우주인이 혐오를 직접적으로 수집해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닌데, 혐오를 작품 제목에다, 1화 제목에다 써도 되나?
제 생각에는 될 것 같습니다. 작품은 두루뭉술하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는 하지 않으니까요. 이야기는 김태연의 처지(온갖 혐오 발언에 스트레스 받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중 김태연은 우주가 주목하는 에너지원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보면 1화의 제목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김태연의 불행 에너지를 형성하는 것은 작중 김씨 남자들의 혐오 행태니까 말이죠. 석유가 공룡이나 플랑크톤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석유가 된 것 처럼 말이죠…
아울러 8화에서는 “공룡과 석유의 관계 / 혐오와 불행 에너지의 관계” 를 좀 더 힘주어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 후반부에 가면 라야카가 속한 비밀 조직이 에너지 원천으로서의 혐오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전개가 나오려나…싶기도 하고요. 이런 예측을 떠올려본다는 건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의미죠.
그나저나 김씨 남자들이(8화에선 김씨 여자도) 작품에서 전개하는 혐오 발언 묘사가 실로 일품입니다. 글쓴이의 관찰과 기억이 꼼꼼했다는 생각이 들어 창작자로서도 배운 점이 있었습니다.
관련하여, 등장 지구인 전원이 김씨라는 점은 제가 이 작품에서 손꼽는 유머입니다. 저는 등장인물 이름을 인상적으로(그러면서도 친숙하게) 지으려고 노력하며, 특히 성씨도 겹치지 않게 하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등장인물이 몽땅 김씨인 쪽이 리얼리즘 아닌가…하고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이 다채로운 김씨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지만, 작중 묘사되는 사태는 특이할 것도 없이 일반적으로 만연하며, 이 김씨 남자들이 대단히 주목할 빌런이 아니듯 김태연 역시 특출난 희생자가 아니며, 다들 고만고만한 너 나 우리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김우진이나 김성찬 같은 (독자들의 분노를 듬뿍 받을) 사람들도 태연을 혐오하는 만큼 태연으로부터 분노와 적개심을 느끼고 있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그들이 제일 불행한 사람일 테고, 그들의 불행에 공감해 줄 사람도 있으리라고(아마도 어떤 커뮤니티 같은 곳)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품 내용에 있어서는 별로 상관 없는 부분이지만, 저는 이런 점을 짚어보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그나저나 지구인이 에너지 효율이 좋은 종족이라던데, 막상 등장 외계인 세계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외계인 등장인물인 라이캬의 배경 설정이 다소 복잡한데, 그렇지만 이것도 독특한 아이디어를 과시하려는 설정은 아닙니다. 다만 라이캬가 처한 입장을 세팅하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보았는데, 즉 행동마다 서스펜스가 생성되는 입장을 세팅 하는 것이죠.
지금은 라이캬도 그 서스펜스를 자각하고 있습니다만, 현 시점에서는 태연과 라이캬의 기이한 동행을 그리고 있으니, 이 동행 관계가 익숙하고 친숙한 일상으로 차차 변해간다면, 아마 그 과정에서 서스펜스는 독자만이 느끼는 것이 되어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노화가 빠른 종족 출신의 억압받는 노인과, 질 좋은 불행 에너지를 생산하는 젊은 여성 사이에 형성될 우정이 편안한 일상을 만들면, 라야카의 꿍꿍이는 조금 유예된 것처럼 착각되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독자조차도 그 서스펜스를 마음 깊은 곳 초조함으로만 느끼게 되었을 즈음, 라이캬의 처지가 새로운 이야기를 불러오지 않을까 예측하게 되기도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예측을 떠올려본다는 건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의미죠.
복지가 발휘하는 뜻밖의 효용성을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4화). 복지 짱.
주제를 잡고 고민해보기보다는 작품에서 좋았던 점들만 주절주절 나열하는 글이 되어버렸는데, 아무튼 이 재미난 글이 좀 더 많은 성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