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장치 공모(감상)

대상작품: 장부국에서 보내는 편지 (작가: 석월,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2시간 전, 조회 8

흔히들 농담삼아 지구 작가님 개연성 무시하신다 라고 하죠.

현실은 소설보다 기이합니다. 작가들은 열심히 독자를 납득시켜야 할때 지구 작가님은 압도적인 체급으로 그냥 우직하게 밀고 나가지요.

그렇지만 평범한 작가들도 현실처럼 말도 안되는 듯 하고 기이한 설정을 밀어붙일수 있습니다.

바로 여행기나 박물지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는 대단히 컬트적인 매력이 있는데 작가는 페이크 다큐라고 썻지만 번안되면서 실제로 있는 동물들을 연구한 박물지로 취급하고 번역했다는 점이죠. 이렇게 현실이다 라는 주장은 대단히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힘이 생겨요.

장부국에서 보내는 편지도 그와 비슷합니다. 이는 본국으로 보내는 보고서와 같은 형식을 취해 이 기이함을 밀어붙이내요.

매우 흥미로웠어요. 둘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불로불사하는, 겨드랑이로 아이를 낳는 남자들의 나라.

이런 가상의 나라는 어떤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네요.

혼인동맹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연합이 불가능하고 아이가 성인이 되면 재산을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관료집단의 힘이 약한 나라. 관료귀족의 힘이 약하고 왕이 영원불멸한 나라. 이 부분은 십이국기의 설정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리고 일본 순정만화식으로 표현하면, 여자 내성이 없어 분장한 남자들에게도 기겁하는 나라. 이 부분은 조금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읽으니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지네요.

벼슬아치의 힘이 약하다고 했지만 개인의 힘이 약할뿐 가문의 힘은 어마무시하게 강력하겠지요. 장부국의 사람들은 불로불사하니 죽기 전까지 일할수 있을 것이고 금융소득이 아니기에 복리의 마법은 누리지 못하겠지만 차분하게 쌓이는 노동소득은 산술급수적으로 가문의 힘을 불릴테니까요. 봉록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나게 쌓이겠지요. 심지어 지참금 등으로 다른 가문에게 가지도 않을 것이고 대를 잇지 못해 가문이 영락하는 일도 없을테니 벼슬아치 가문의 힘은 무시무시 할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둘이 만나 하나만 낳으면 인구가 줄지만 장부국에서는 하나가 하나를 낳으니 계속해서 가문원이 증가할 것이고 가문원의 수가 곧 힘이 되기 때문에 저 견제장치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건국 설화에서 부터 계급을 박아놓았다면 작금의 장부국 안에서도 어떤 차별이 있을것 같네요. 현실에서도 출산중 산모가 죽으면 낙인을 찍으니 둘째가 차별받는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이게 건국 설화가 아니라 작금의 장부국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야기에서 벼슬아치는 특정 직위에 오르거나 몇년 이상 하게 되면 둘째를 꼭 낳아야 하고 둘째는 재산을 받되 벼슬에 출사할수 없다고 했다면 납득했을거 같습니다. 피지배 계급에서 첫째는 벼슬에 출사할수 있지만 막대한 세금을 왕에게 바쳐야 한다면 더더욱 자연스럽겠죠. 이 나라에서 둘째는 천한자라고 건국 설화에 박아놓았으니까요.

견제장치가 의미 없다는것 때문에 여러 다른 상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여자국을 유인하기 위해 적당히 숨겼을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지금의 장부국에서 왕이 없다는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 가문이 다른 모든 가문을 지배하고 있는게 아니라 모든 가문의 힘이 동등하다면 왕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있진 않을테니까요.

물론 장부국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개 가문의 음모일 가능성도 있겠죠. 이건 어디까지나 여인국을 유인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니까요. 그렇기에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고요.

다만 언제나 장편이 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좀 더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면 어떨까요?

이야기의 끝에서 장부국은 지금 없다고 이야기를 끝냅니다. 사실 우리가 장부국의 장부들에게 지배받고 있다면 어떨까요.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나면 세상을 지배하고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기술을 쌓으며 가랑이 사이에서 태어나면 봉사해야 한다. 이런 속담이 사실 전해진다면 어때요? 아니며 아기장수 우투리의 옆구리에 난 날개가 사실은 태아고 그걸 뽑는 바람에 출산을 한 것이 되어 죽은게 진실이라면요? 어쩌면 회식하던 중 격려차 방문한 이사님의 옆구리가 갑자기 불룩 튀어나오면서 아이가 나온다면? 장부국은 세상에 없다 땅땅땅 보다는 이야기와 현실과의 경계를 흐리는 것으로 마무리해 더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