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통 : 시간여행을 넘어 자기 존재를 묻다 공모(비평)

대상작품: 바통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영원한밤, 6시간 전, 조회 16

※ 본 리뷰의 스포일러 부분은 소설의 후반부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을 먼저 보시고 읽는 것을 권합니다.

※ 본 리뷰에서 다룬 본작에 대한 해석은 리뷰어의 주관적 해석이고, 작가님의 공식 해석은 아닙니다.

모든 글을 다 읽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고 추천 목록에 뜨는 것을 보고 저장해두었다가도 연재중인 장편이어서 선뜻 시작하기에는 따라가다 버거울까봐 망설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본작도 그 중 하나였는데, 완결이 되었고 장편치고는 길지 않은 분량이어서 시도해볼까 하던차에, 바쁘던 일정이 잠시 끝나고 온전히 주말을 보내는 어제, 오늘 단숨에 읽고 여운이 남은 상태로 리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소개팅으로 시작하는 작품을 보고 일상적인 느낌으로 들어갔다가 서서히 이게 아니구나 싶어 태도를 고쳐야 했습니다. 작품은 명료한 메시지를 위해 불필요한 설명은 접어 버리고, 손가락을 보고 있던 저에게 달을 좀 보라고 호소합니다. 본작 ‘바통’은 분명히 시간여행 스릴러로 읽히지만, 기억과 자기동일성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그 중심에 있는, 기억을 매개체로 하는 철학적 소설이었습니다.


1. TBTT, ‘바통’이라 불리는 물건

‘바통’은 표면적으로는 시간여행 서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육체 이동”이 아니라 “정신 점유”라는 규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통의 사용자는 바통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매일 동일한 시간, 동일한 사고패턴을 유지해야 합니다. 바통을 쥔 사람은 과거의 자신의 몸에 들어가 주도권을 빌리고, 그 순간의 ‘나’를 점유합니다. 즉, 바통은 시간선 자체를 건드리는 기계가 아니라, 기억과 의식을 ‘좌표화’해서 이를 점유하는 장치입니다.

은수를 통해 ‘바통’의 규칙이 설명되고 바통이 주인공 연재에게로 넘어올 때만해도 과거의 나에게 수차례 개입하여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스펙타클한 모험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주인공의 일상을 끌어내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침음하게 합니다. ‘바통’의 설정은 단순한 시간여행의 파라독스 대신, “자기 자신을 침범하는 경험”을 전면에 부각시킵니다. 바통은 결국 기억을 반복하고, 자기 동일성을 점검하며, 나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 연재에게 바통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2. 인과율, 트랙, 그리고 견재

연재가 신영에게 바통을 빌려준 날, 연재에게는 또 다른 ‘나’가 찾아오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스릴러로 변모합니다. 하지만 이미 더 중요한 사건은 앞서 일어났습니다. 연재는 제대로 그 의미를 몰랐지만, 바로 그 날은 작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통을 사용한 날이기도 합니다. 연재는 과거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 어둠속 트랙을 달리다가 바통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등장한 견재는 어떤 존재인걸까요.


3. 분열, 존재, 그리고 우연재

욕심을 부리다가 트랙 위에서 바통을 놓친 죄로, 연재는 ‘분열’이라는 끔찍한 패널티를 받습니다. 인과율을 뒤틀어버린 2025. 6. 10.부터 견재가 대신 벌을 받았지만, 갈라진 트랙이 다시 만나고 드디어 본체를 만나면서 견재는 분열에서 해방됩니다. 트랙이 다시 하나가 되었고 이제 바통은 오롯이 연재에게 넘어갔습니다. 인과율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도 연재에게 오롯이 넘어갔습니다

 바통을 쓰는 건 철저히 “현재의 나”의 특권입니다. 현재의 나는 바통을 들고 트랙을 달려온 주자이므로, 그 경험을 고스란히 ‘오늘’의 자기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통을 뺏긴 과거의 나는 원래 주도권을 잠시 잃었지만, 시간이 끝나면 자기 자리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야 합니다. 그러니 과거의 나는 잠깐의 기억 공백이 있었지만, 그 공백이 뭔지는 모른 채  삶을 계속 이어가고, 오늘의 나만이 그 공백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존재가 되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의 트랙에서 온전히 바통을 이어받으며 ‘나’라는 하나의 팀으로서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재는 그러지 못했고, 과거에 분리되었던 견재는 트랙이 하나되는 그 날이 오기까지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연재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분열을 중단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은수에게 물어도 은수도 분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은수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지만, 그 성품과 성정에 비추어 정말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열은 왜 생긴걸까요. 연재는 분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연재 중인 작품은 지금이라도 연재중일 때 읽어볼까, 연재가 끝나면 단숨에 읽을까 고민하게 되는데 어영부영하다가 선택지 없이 완결된 이후에 읽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호흡을 맞추며 읽는 것과 한번에 읽는 것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만 연재 주기에 맞춰서 조금씩 음미했다면 또 감상이 달랐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표면에서 지워버린 듯한 작가님의 백그라운드 설정이 궁금해서 추리를 해 본 것이지만, 사실 이 작품이 내세우는 메시지를 생각하면 분열의 이유나 바통의 작동원리는 그리 중요하진 않습니다.

작품 속 바통은 주인공에게 자기 존재의 주도권을 지켜주는 장치였지만, 그 바통을 놓친 순간부터 연재는 끊임없는 분열에 시달립니다. 바통은 결국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바통은 지금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느냐고.

재밌게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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