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민인 여러분들은 그냥 죽습니다. 이 제국에서…. 그냥요.”
(본문.15-P203)
목차
1.『SF라는 조미료는 향취가 독특하답니다.』
2.『외계인에게 납치당한 지구인은 무슨 맛일까요?』
3.『미안해. 한 숟갈조차 배가 불러서 먹기 힘들어….』
4.『정식의 참맛은 정성이죠. 작은 칼질부터 시작해볼까요?』
1.『SF라는 조미료는 향취가 독특하답니다.』
한 번도 보지 못 한 이야기를 창조한다는 것은 여느 창작자들에게 내미는 도전장처럼 받아들여졌던 걸로 기억하지만, 반대로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에 거리감을 만들어내며 신선함을 찾는 시도는 창작자라면 당연히 갖춰야하는 소양으로 인식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익숙하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SF’를 비롯한 환상성에 담아낸다는 것은, 그 익숙하다는 요소를 비틀어버리는 가장 완벽한 수단이라고 판단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지구인 정식 한상>은 우리가 익숙하다고 부를 수 있는 이야기를 SF라는 장르에 담아내어 신선함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먼 미래와 진보된 기술들을 주제로 다룬 여느 SF장르들에 비하면, 90년대 한국이라는 충분히 이미지화된 배경을 가져와 거리감을 좁히는 데 중점을 둔 것과 더불어, 무려 ‘외계인 납치’라는 도시전설처럼 다뤄지던 소재를 가져와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구체화하며 그 나름대로 독특한 향미를 찾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완벽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물, 사건, 주제로 정의되는 소설의 3요소를 표면적으로 충족하고 있지만 익숙하고 상투적인 배경에 함몰되었고, 막상 작품의 무기로 내세우고 있는 SF라는 장르가 주제와 설정 면에서 지나치게 비대하여 작가가 감당하지 못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 또한 단점으로 지적 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구인 정식 한상>이 불편한 인상만 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만약 큰 고비를 넘겨 소설에 몰입할 여지만 있다면, 작가님이 표현하고자했던 의도와 주제들을 한 번 곱씹어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이 감평문에서는 <지구인 정식 한>에 담긴 매력을 분석해보고, 이 작품을 한 번이라도 시식해볼 미래의 독자들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주제로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PS.
이 작품의 리뷰에서는,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인 <개구리 제국>이 간혹 언급됩니다.
해당 소설 또한 제가 작성한 감평문이 있으니, 아래 링크에서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https://britg.kr/review-single/218440/
2.『외계인에게 납치당한 지구인은 무슨 맛일까요?』
지난 3년 간, 대한민국에서 신고 되는 평균 실종자 수는 약 7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림잡아 계산하면 하루에 약 1천 명씩 모습을 감추는 셈인데, 5천만 인구를 자랑하는 남한에서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데서 오싹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1-P94). 낮에는 인간들을 대상으로 평범한 백반을 파는 백반집이지만, 밤 12시가 넘어가면 납치해온 사람들을 조리해서 다른 외계인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고급 식인 식당으로 변한다.
(1-P95). 우리의 임무는… 바로 그 식재료가 될 지구인들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이 <지구인 정식 한상>은 이런 실종자들의 배후에는 ‘식인을 즐기는 외계인들의 납치 행각’이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소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외계종족의 높은 분들에게 대접한 식재료를 구하는 것. 즉, ‘인육’을 위해 사람을 납치하는 것입니다.
(2-P1). 나는 지구로부터 떨어진 드라코니스 제국의 식민지 행성인 베가 프라임 행성에서 넘어온 파충류형 외계인인 드라코니언이다.
(1-P94). … 감각이 예민한 일부 지구인들은 우리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렙틸리언”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놓기까지 했다.
렙틸리언(Reptilians)은 미스터리를 다루는 음모론에서 등장하는 파충류 모습의 외계인으로,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류 사이에 섞여 있다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이런 ‘렙틸리안’의 설정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작품의 컨셉은 ‘파충류형 외계인이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실체화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설정에서 주목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을 흉내 내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주위에 있으며
둘째, 그들은 ‘파충류’라는 명확한 짐승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셋째, 현대의 인류보다 월등히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중에서 ‘파충류’라는 속성. 다시 말해, 그들이 인간을 사냥감으로 인식하고 있는 ‘짐승’의 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작중의 핵심으로 파악됩니다. 그것은 무척 이미지가 선명한 편에 속합니다. 악어, 공룡 등 우리에게 익숙한 포식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대입하는 것에 무리가 없으면서도, 그 대상이 되는 피식자를 우리와 같은 ‘인간’에 대입하는 순간 마치 대적할 수 없는 무력감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즉, 주인공이 속해 있는 외계종족이 인간들을 포식하는 데에 대한 소설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셈입니다.
(1-P81). ‘니가 하는 일을 단순한 식재료 운반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거든. 바로 재료의 마지막 경험에 극도의 공포를 주입해야 하는 거야. 그들에게 공포가 주입되어야 이들을 드시는 분들이 아주 쌉싸름한 맛을 느끼시게 되는데… 그게 바로 우리 식당이 최고의 식당 중 하나로 우뚝 서는 요인이 된단 말이야.’
주인공은 이런 평범한 백반집으로 위장하고 있는 ‘외계인 전문 인육 식당’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소개됩니다. 포식자의 위치에서 인간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그렇게 겁에 질려 이성을 상실한 사냥감을 최고의 식재료로 취급합니다. 그런 식재료는 외계종족의 높은 분들을 위한 만찬으로 소비됩니다.
이 설정이 흥미롭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포식과 피식 사이를 오가는 짐승의 행태에서 엿보이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명확히 야만적이고 도덕이 부족한 짐승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포’라는 감정을 이끌어내는 가장 원초적인 힘을 응용하고, 그로 인한 결과물은 더 상위의 존재에게 대접한다는 설정은, 그들 사이에서도 인간사회로 비롯되는 힘과 위계질서가 적용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런 ‘식인’과 ‘납치’ 행위의 목적 또한, 계급으로 대표되는 상위존재를 위한 공물의 역할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중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인공은 인간을 납치하고 인육을 판매하는 중개상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막상 본인이 그 인육을 즐긴다는 묘사는 물론이며, 인간을 피식자로 인식하는 비하적인 시선 또한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아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면모까지 있습니다. 그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납치는 어디까지나 ‘업무’로 인식됩니다. ‘인육’은 계급이 낮은 하층민들이 상층민들을 위해 바치는 ‘공물’에 가깝게 묘사되며, 그들이 공물처럼 받은 고기를 즐기는 모습은 절제가 없는 권력자들의 파티처럼 그려집니다. 인간들이 외계인들에게 ‘희생’당하듯이, 그들 또한 더 높은 힘에 의해 굴종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3-P87). “한국은 요즘이 제철이라… 어느 식인 식당을 가시더라도 고기로부터 버블의 달콤한 맛과 절말의 씁쓸한 맛은 느끼실 수 있겠지만…(이하생략)”
(9-P18). 그렇게 억울하게 실업자가 되어버린 지구인들의 통한은 …(중간생략)… 우리 드라코니언 미식가 손님들에게 또 새로운 풍미를 제공해주었다. 그렇게 자연산 지구인들의 공급이 늘어나자, 가격이 좀 더 저렴해질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이러한 고기들을 맛보고자 하는 드라코니언 손님들의 방문도 늘었다.
(9-P26). “예, 미로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건설 사업 확장에 반대하던 놈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결국 우리 식탁에 올라왔잖습니까?” …(중간생략)… “아, 그 친구가 그런 사연이 있는 친구였군요? 어쩐지 그 맛에서 느껴지는 그 억울함이라는 게… 그 아주 강렬하고 중독성 있는 맛이더라구요?”
그 과정에서 작품은 앞서 보였던 ‘계급질서’와 ‘희생자’의 이미지를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에 겹쳐보려고 시도합니다. 작중의 배경인 90년대는 사회적으로 삐걱거리던 과거의 단편을 상징합니다. 현재에 이르러서 그 시절은 금융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위계질서가 만연하던 직장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을 반복하던 노동자들의 시대로 대표되고 있죠. 사회에 네거티브(negative)한 감정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며, 그 어두운 감정이야말로 외계종족이 사랑하는 가장 맛 좋은 ‘조미료’로 묘사됩니다. 발췌된 문장에서 표현하듯, 90년대 한국은 외계인들이 맛보기 좋은 고기가 ‘제철’이던 시기였습니다.
(13-P49). “니 말마따나 인육 파티는 이제 한국에서 막 시작했는데… 어차피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니가 제공해주는 인육 파티를 우리가 왜 기다려야하는데?” …(중간생략)… “지금 니가 우리 식탁에 안 올라가는 거나 다행으로 알아.”
이런 사회에서 권력자로 대표되는 이들 또한, 외계인이라는 더 높은 상위 존재에게 굴종하는 피해자로 묘사됩니다. 그것은 권력자의 희화에서 나오는 통쾌함보다는, 그런 존재조차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납니다.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오마한 사건을 제시함으로서, 당시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 또한 이런 권력자들의 시기와 견제에서 벌어진 비극으로 보여줍니다. 즉, 작품은 당시 시대의 비극에 대해 더 높은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7-P12). … 이 공장 내부는 자동 조병창과는 반대로 유기물들을 집어넣으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복제체 군인들과 그들이 먹을 식량들을 양산해낼 수 있다. …(중간생략)… 나는 그렇게 쏟아져 나온 복제체 지상군 가운데 하나였다.
(15-P118). 5등급이었던 간호사들은… 전원 폐기 처분 당하고 말았죠.
(17-P58). 우리 같은 5등급이라면 감점이 누적되면 즉결 처분 당하거나, 전장으로 차출된다.
사실 이런 포식자와 피식자로 대표되는 계급질서는, 지구인을 피식자로 다루는 그들의 사회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들은 여느 SF 창작물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고도로 발전 된 기술력을 근반으로 성장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노동력을 무한히 생산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인적가치가 소멸되었습니다. 생산한 노동력을 관리하기 위해 ‘계급’이라는 질서를 달아두고, 가장 밑에서부터 가지를 쳐내듯 제거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로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즉, 그들이 지구인을 포식하는 행위며 희생에 둔감한 것은 선악이나 도덕의 구도로 판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질서’이며, 권력자가 당연히 누려야하는 ‘욕구’로 대표될 뿐이죠.
흥미로운 것은 이런 외계종족의 사회야말로, 90년대 당시 인적자원의 가치를 부르짖던 대한민국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의 결말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무한히 생산할 수 있는 노동자들로 인해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발전을 이뤄냈으나, 그에 대한 대가 노동에 종사하는 하층민에 대한 존중이 소멸되어버린 세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들이 지구를 양식장으로 삼아 포식활동을 이어가는 것 또한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저 본인들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질서를, 타종족에게 그대로 대입하여 행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15-P208). “당신은 그 모든 죽음이 다 저항 연합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요. 하층민인 여러분들은 그냥 죽습니다. 이 제국에서… 그냥요.”
(16-P201). 1등급에 대한 의료 사고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즉결 처분을 받아야 했던 멜라와, 그저 공장의 실직자로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되어… 해치우기 쉬워졌다는 이유만으로 식재료로 죽을 위기에 처한 선아가 겹쳐보였다. …(중간생략)… 둘 다 이 빌어먹을 개좆같은 세상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가고 있는 거다.
주인공이 맞는 ‘희생’의 결말은, 말 그대로 이런 포식과 피식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 했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헌신한 사회로부터 가족을 빼앗겼고, 이윽고 눈이 뜨인 앞에 보인 것은 함께 관계를 맺었던 누군가의 또 다른 ‘희생’입니다.
(19-P173). “대공황과 빈부격차의 증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까지 잃어가는 지구인들은 점점 더 난폭해지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악순환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의 파티는… 이제 더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사회 시스템과 권력자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희생당한 주인공이 눈을 감은 뒤에도, 지구는 그들의 언어로 ‘제철’로 표현되는 시기를 맞습니다. 인간들이 개발하는 지구는 더욱 황폐해지고 혼란스러워질 것을 예고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조미료로 삼는 누군가에게 다시 포식당할 것을 예고합니다. 이 과정은 돌이킬 수도, 돌이키지도 못 할 선을 넘게 됩니다. 이런 지구를 외계인들의 ‘양식장’으로 만든 것 또한, 지구를 터전을 삼고 있는 인간들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사실에 작게 쓴맛을 삼키는 바입니다.
3.『미안해. 한 숟갈조차 배가 불러서 먹기 힘들어….』
앞서 서술했듯, 이 소설은 주제의식이 무척 뚜렷한 작품입니다.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희생과 그로 인해 태어난 시대의 비극, 더 나아가 그런 권력자들이 시민을 피식자로 삼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와 같은 거대한 소재들을 비판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는 눈여겨볼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야 호와 불호로 구분되겠으나, 적어도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는 독자 입장에서 선명하게 다가오는 편이었습니다.
이토록 주제가 선명하다는 인상은, 이 작품을 쓴 작가님이 ‘소설’이라는 매체가 주는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감상에서 기인합니다. 소설은 길고 지루한 여정입니다. 사회학 논문에서 몇 구절을 할애하면 설명할 수 있는 내용도, 소설이라는 매체에서는 ‘이야기’의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책 한권이라는 분량을 할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무척이나 의욕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 시대를 조명하겠다는 분명한 컨셉과 인간사회에서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식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것과 더불어, 심지어 외계종족에게 지배당하는 지구인이라는 SF적 소재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작품 한 편을 전부 읽고 나면 제목처럼 ‘한 상 정식’을 배부르게 차려먹은 듯한 풍족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상차림’은 그 특유의 풍족함이 연상됩니다. 상에 오르는 요리 자체의 솜씨도 중요하지만, 그 요리를 어떻게 담아내는가와 더불어 어떤 요리를 한 상에 올릴 것인가를 고려하며 조화적인 면도 신경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럴 듯한 한식당에 가면 음식의 종류는 물론이며,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를 함께 숙지하도록 권하고 있기도 하죠.
이 멋진 소설을 의욕 있게 준비한 ‘상차림’에 비유하자면, 이 소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요리’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물, 사건, 설정, 주제, 그것을 소설로 엮어내는 작가 개인의 역량 등이 그것이죠. 저와 같은 독자에게는 이런 요소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한 상에 가득 채워진 요리들의 의도를 찾아가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었으나, 혹여 어떤 독자 분께서 첫 술을 뜨는 것조차 부담되어 맛을 느끼기도 전에 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었다면, 저로서도 큰 상심을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작품은 없다고 합니다. 누구든 개인의 기호에 따라 평가하고 재단하다보면 흠집 하나조차 발견되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고 느끼겠죠. 이 단락에서는 혹여 이 작품에 집중하기 전에 떠나가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 요인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볼까 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아쉬웠던 요소들에 키워드를 달아 분석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설정’입니다.
흔히 ‘소설을 잘 쓴다’는 표현으로 뭉뚱그려서 표현하지만, 수많은 글 중에서 ‘소설’을 잘 쓴다고 평가되는 요인은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소재의 참신성, 입체적인 인물, 흥미진진한 사건,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는 주제, 그것들을 이야기에 담아내는 작가 개인의 역량까지……. 반대로 말하면, 이런 평가항목에서 아쉬움을 보인다면, 관습적으로 ‘소설을 잘 쓴다’는 인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에게 작품에 대한 신뢰를 주기 힘들다는 말로 해석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지구인 정식 한상>이 이런 요소들에서 낙제점을 받을 정도로 엉성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품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인물, 사건, 배경으로 대표되는 삼요소가 구체화되어 있으며, 각각의 요소가 버려지는 일 없이 제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작가님에게 소설을 쓰는 감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과 거리감을 두게 되는 이유는 SF라고 불리는 장르적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SF(Science Fiction)는 장르 명에서부터 ‘과학’을 포함하듯, 실존하지 않는 무언가를 다루는 환상소설들과 구분되는 실존성을 바탕으로 설득력을 갖추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SF적 요소들이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인간으로 분장하는 외계종족,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쓰는 최첨단 도구, 외계종족을 발전시켰던 생체복사 기구 등이 그것이죠.
문제는 이런 SF적 배경설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투박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설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요리에 있어 재료가 존재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집니다. 앞으로 그 설정으로 무엇을 이뤄낼지 보여주겠다는 선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 재료만으로도 요리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 일반적인 환상소설에서는 그 재료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거리감을 두고 시작하게 됩니다. 그럼 이 재료(설정)들을 어떻게 독자에게 보여줄까요? 그 또한 무척 소설적인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첫째, 그 설정이 기반이 되는 사건을 보여주거나
둘째, 그 설정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보여주거나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보여준다’는 것에 있습니다. 작중의 설정은 오로지 인물과 사건을 구성하기 위한 도구이며, 이런 인물과 사건들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설정들이 사건과 인물로 보여주는 데에 어색함을 표출합니다. 몇 가지 지문을 발췌하며 살펴보겠습니다.
(2-P1). 나는 지구로부터 25광년 떨어진 드라코니스 제국의 식민지 행성인 베가 프라임 행성에서 넘어온 파충류형 외계인인 드라코니언이다.
(2-P4). 우리의 위장은 시각 정보를 교란하는 가시광선 교란과 반경 10미터 내의 상대의 나머지 모든 감각들을 교란하는 이중으로 사용하는 방식…(이하생략)
(2-P6).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구의 주요 국가 정부 지도자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기술을 조금씩 전수해주는 대가로 우리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게끔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으며…(이하생략)
페이지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많은 설정들이 고작 2회차도 안 된 시점부터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설정들이 말 그대로 설정으로만 제시되는 서술에만 갇혀 있습니다. 마치 백과사전처럼 쏟아지는 서술들은 설정들의 ‘메모’ 정도로 건조하게 다가오며, 이런 주인공의 독백은 그저 독백에 그칩니다.
그렇다면 초반 회차부터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설명하는 이런 ‘설정’들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요?
당연히 ‘사전지식’입니다. 앞으로 소설을 진행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라는 안내문과 비슷한 역할이죠. 가전제품을 처음 사용할 때 설명서를 읽어보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각이야말로 이야기의 속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무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소설을 사건의 나열이라고 정의하는데, 그런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물 간의 맞부딪힘이라고 가정할 때, 앞서 작가님이 분량을 할애하며 설명하고 있는 모든 서술들은 사건이 아닌 진술에 불과하며, 이런 구절들이 소설처럼 읽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막말로, 지금 시대에 전자렌지나 청소기를 사고 설명서를 진득하게 읽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한 번 훑어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 이 작품에서 설정을 제시하는 방식이 그 정도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감각으로 다듬어져 있는지는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떠올려보면, 이렇게 진술과 설명에 늘어지는 설정들은 어떤 강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SF라는 쉽게 떠올리기 힘든 설정들을 독자들이 제대로 알아줄 수 있을까, 하는 강박이 말이죠. 그런 강박들도 다음 구절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3-P7). … 카두케우스는 지구인들이 보기에는 전자사전처럼 보이는 일종의 무선 통신 단말기로, 드라코니언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핸드폰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카두케우스는 무선 통신을 제외하고도 문자, 게임 등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3-P93). 우리 드라코니언들은 지구인들과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에테론이라 불리우는 독특한 물질의 향취를 혓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에테론은 모든 생명을 가진 모든 개체들이 지니고 있는 물질이지만, 각 개체들마다 살아온 삶의 궤적에 따라 다 다른 고유한 향취를 지닌다.
다음 구절들은 ‘카두케우스’와 ‘에테론’이라는 작품 고유의 설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짧은 구절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초조함마저 느껴집니다. 이 작품이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을 둔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구절들은 마치 곁에 없는 누군가에게 계속 ‘설명’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나요? 즉, 작가님은 작중의 인물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독자들만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사건과 인물의 어우러짐으로 보여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몰입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오히려 사건과 인물들을 배제하고 설정 그 자체에 몰입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요리 대신 재료들을 담아놓고 상차림을 해놓은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진술들이 아주 배제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위의 구절들이 굳이 필요한 설명일까도 의문입니다. 인간들의 전자사전에 빗대어 모양새를 설명하는 것과 더불어 게임까지 가능하다는 부연설명까지 곁들이니, 그저 설명으로만 치부해도 너무 친절한 설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테론’에 대한 설명 또한 외계종족이 인육을 탐하는 정당성을 갖추려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 겁에 질린 인간들에 군침을 흘리는 외계인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납득될 만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굳이 ‘에테론’ 같은 설정을 설명하며 이 외계인들이 인육을 먹고 싶은 이유를 납득시키는 것보다, 그저 공포에 질린 인간을 먹고 싶다며 재촉하는 외계인의 모습을 한 번 보여주는 쪽이 더 간단한 일이 아닐까요?
요약하자면, 이 작품은 설명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SF에 대한 복잡한 설정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그 설정들을 가장 투박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결국 해당 구절을 겨우 넘긴 독자들에게 남는 것은, 관심에도 없는 긴 강의를 들었다는 피곤함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이야기의 본질인데, 이 작품은 이야기의 본질을 뒤로 밀어놓고서라도 세부적인 재료들에 집착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번 <개구리 제국>의 감평문을 올렸을 때, 작가님께서는 ‘나는 분명 썼는데 왜 알아듣지 못 했는가’라며 의문을 표하셨던 거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당장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제대로 못 읽었다며 사과하고 넘어갔습니다만, 사실 그런 감상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작가님이 집착하고 계시는 그런 설정들이 애초에 독자들에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지점은 ‘이야기’입니다. 외계인 주인공이 ‘카두케우스’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보다 그 ‘카두케우스’로 연락을 한 번 하는 쪽이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우며, 생체복제로 무한히 생산되고 버려지는 외계인들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보다 그런 복제로 태어난 주인공이 제 삶에 고민하는 장면을 하나 번 보여주는 쪽이 더 느끼기 쉽습니다. 이렇게 설정을 늘어놓는 방식은, 후에 독자들의 오독에 대해 ‘나는 앞에 분명 언급했다’며 변명에 대한 안전장치를 걸어놓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염려마저 됩니다.
요약하자면, 이 작품이 첫 술을 뜨기 어려운 상차림으로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작품이 SF라는 장르적 틀에 지나친 신경을 쏟는 나머지, 설정을 독자들에게 알려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둘째, 다만 작품에서 그런 SF적 배경설정을 소설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감을 잡지 못 해, 오로지 설명으로 풀어내려는 방식으로 일관하며, 이것은 소설적 완성도에서 믿음을 주지 못 한다.
셋째, 이야기를 기대하고 첫 장을 펼친 독자들에게는 사전지식을 요구하는 과정이 불편하고 거부감이 든다.
조심스러운 말입니다만, 저는 작가님께 작중에서 ‘설명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전부 거둬내는 것을 제안할까 합니다. 지금 이 작품에서 시도되고 있는 진술들은, SF라는 장르에서 배경설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투박한 방식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이 작품이 SF라는 장르를 완숙하게 써낼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다면, 지금 작중에서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설명들을 모조리 잘라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제외하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 같다고요?
걱정 마세요. 이해하기 어려워도 괜찮습니다. 원래 SF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것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합니다. 영화에서 로봇이 나와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관객들이 로봇의 용도를 충분히 짐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이 로봇의 기능과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물론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상물과 활자로 상상을 유도하는 소설의 방식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결국 설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떠나, 그 설정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방식은 결이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만약에라도, 이런 SF적 배경설정을 사건으로 녹여내는 것이 버겁다고 느껴진다면…… 차라리 SF라는 장르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외계인이 아니라 조선족의 땅에서 건너온 인신매매범으로 바꾸고, 그가 인육을 바치는 대상도 외계인이 아닌 삼합회와 같은 거대한 범죄조직으로 설정한다면 어떨까요? 그 범죄조직과 연결된 각국의 권력자들이 인육과 같은 불온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것이 작가님이 바라시는 근사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독자들의 이해력을 걱정할 만큼 복잡한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인물’입니다.
작가님과 저 사이에는 익숙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저번 <개구리 제국> 감평문을 되짚어볼까 합니다. 해당 감평문에서 저는 이런 SF소설에서 ‘SF적 요소를 제외하고 보이는 것’들에 집중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둘을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은 요리에서 조미료를 분리한다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말일수도 있겠지만, 결국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들의 완성도를 살펴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 <지구인 정식 한>에서 발견되는 뼈대는, 당연히 90년대 사회에 대한 조명과 계급사회에 희생된 하층민에 대한 연민입니다. 특히 이 사회비판적 주제는 거의 웅변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강조되는 감이 있습니다.
(14-P22). ‘그렇게 대한민국이 망해야! 그 망한 기업들에서 쏟아져 나온… 절망한 사람들의 인육을 받아서 인육 파티 벌이니까 그런 거잖아요? 내말이 틀렸어요?’
(16-P201). 1등급에 대한 의료 사고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즉결 처분을 받아야 했던 멜라와, 그저 공장의 실직자로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되어… 해치우기 쉬워졌다는 이유만으로 식재료로 죽을 위기에 처한 선아가 겹쳐보였다. …(중간생략)… 둘 다 이 빌어먹을 개좆같은 세상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가고 있는 거다.
본문에서 발췌한 해당 구절들은 외계종족들이 벌이는 식인행위와, 90년대 한국 사회에서 쉽사리 희생되는 하층민들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겹치기 위한 시도입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떠나 몇몇 구절들만 살펴도 작가가 구성하고 있는 주제의식들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하게 실려 있습니다.
이런 우직한 주제 강조는, 앞서 설명했던 작가님 특유의 걱정과 강박에서 비롯되지 않나 추측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다보면 외계인과 지구인의 관계만 쫓아가도 해당 주제의식은 쉽게 느낄 수 있는 편입니다. 이것이 어떤 복잡한 주제의식이 아닐뿐더러, 사회적으로 격통을 겪던 90년대 한국을 조명하거나, 표면에서부터 불평등하고 난폭한 구조를 강조하는 외계인들의 사회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소재를 무엇에 비유하려는지 대략 추측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냉정히 말하면, 이 작품이 어떤 신선한 해석이나 독창적인 소재를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소재들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야기와 주제가 나올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상투적인 면이 존재하는 편이죠. 애초에 작가님도 이 작품을 구상하던 적에 어떤 신선한 소재와 고찰을 제시하기보다는, ‘틸리언’과 같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소재와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권력자’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옮겨오고 대입했다는 느낌에 가깝게 집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작품이 사건과 소재로 시작되는 이야기 보다는, 특정 주제와 고찰을 위해서 이야기를 준비했다는 느낌도 있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SF와 연관된 소재들과 주제 면에서는 웅변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고 독자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에 비해, 소설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인물과 사건 면에서는 그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평면적인 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단락들에서 이 작품에 대해 주제와 배경설정에 대해 분량을 할애하며 분석했던 저조차도, 막상 인물과 사건 등 기본 뼈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선아와 멜라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제각각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도 불구하고 언급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면…… 솔직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대상
둘째, 그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시련
말 그대로, 인물들의 역할은 모두 이 주제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작품에서 표현하고픈 주제의식을 쫓아가며, 해당 주제의식을 목소리로 대변하고, 그런 주제의식에 맞춰 주변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연기하는 데에 비해, 막상 인물 그 자체에 대한 구성은 이상할 저도로 얄팍합니다. 그 시대의 하층민을 대표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선아조차도 주변에서 오는 자극에 맞춰 움직이는 인형처럼만 다뤄지며, 이 작품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주인공조차도 사정만 가득할 뿐 어떤 깊이가 있는 고민을 보여주며 행동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주제의식에 함몰된 캐릭터들이다 보니, 그 인물에 공감할 수 있는 개연성 면에서도 다소 미흡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가령 선아가 안기부 출신이라는 주인공의 거짓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며, 그런 주인공이 베푸는 호의에 쉽게 감회되어 움직이는 것은 천진한 것을 넘어 다소 정신적으로 모자라다는 인상마저 주게 됩니다. 더 나아가 정체를 보여준 주인공에게 선한 내면을 알았다며 그대로 마음을 열어주는 장면도, 일반인으로 보여주기 힘든 단단한 정신력으로 느껴지며 인물설정에 대한 위화감을 전해줬습니다. 선아의 인물상이 오로지 주인공과의 관계에만 맞춰져 있다는 의미로도 읽혀집니다.
이런 평면적인 인물상에는, 주인공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인간을 납치하고 인육을 제조하는 판매상입니다. 작품 내에서도 비도덕적인 일로는 손에 꼽는 일에 몸을 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런 행위에 대한 고찰은 전무하다시피 움직입니다. 오로지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이고, 제 가족만 챙기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죠.
“외계인이니까 당연하지! 이 친구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그게 당연한 거야.”
맞습니다. 이 친구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인간과는 당연히 어긋난 사고를 하고, 복제품으로 태어난 배경으로 따지면 개성 면에서 공허한 것도 당연한 이치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소설은 ‘외계인’들을 독자로 삼는 작품인가요?
아닙니다. 명확히 우리와 같은 ‘인간’을 독자로 하는 작품이죠.
그렇다면 결국 이 작품에서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주인공은,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사고할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합니다. 수많은 복제품들 중 하나가 아니라, 지구에 내려온 가장 특별한 외계인 중 하나여야 주인공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 바탕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주인공에게는 그런 특별한 바탕이 부족합니다. 그저 자신의 설정과 역할에 맞춰 반응하고 움직이는, 여느 엑스트라들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수준이죠. 물론 물리적인 비중이야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아내의 죽음을 듣고 울분을 토해내는 순간 하나라면, 퇴고에 들어갈 때 이 인물이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관찰하고 고민하는가를 다시 한 번 설정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목표’입니다.
흔히 이야기를 ‘기승전결’이라는 네 부분으로 나눠서 상승하강을 표현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명확한 ‘기승전결’을 발견하기 힘든 편에 속합니다. 단순히 설정과 주제에 투자되는 분량이 많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좁게 보자면 주인공이 향하는 목표와 시련이 너무 과다하기 때문입니다.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저항연합에 대한 의심
- 가족에 대한 걱정
- 외계사회에서 태어난 본인의 신분
- 선아와의 관계
-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외계인의 포식행위
- 권력자들에게 바칠 인육을 잡아오는 업무
물론 이야기 하나에서 메인플롯과 서브플롯을 구분하며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것이 낯선 구성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많은 플롯들이 하나로 엮어지는 사건에 담겨 있기 보다는, 그 자체가 플롯의 한 부위를 어정쩡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엮어주려면, 결국 메인플롯이 명확해야하는데, 막상 주인공이 겪고 있는 중심사건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힘든 편입니다. 막연하게 추측하자면 ‘저항연합의 실체를 밝혀내 신분상승을 노린다’는 것이 주인공이 쫓는 목표로 보이나, 그 목표로 가는 과정에 굴곡이 없고 여정이 없으니 바깥에 있는 다른 사회비판적 소재들에게 눈이 가버리기 마련입니다.
만약 해당 메인플롯을 잡고 싶었다면, 선아를 의심하는 과정이 점점 커져가고 결과를 내는 과정이 있어야하는데, 막상 이 의심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단번에 지워지며 새로운 플롯으로 전환되지 않던가요? 만일 주인공이 저항연합에 가담하는 듯한 모습을 띄었다면 그저 제국에 충성하며 살길을 찾으려고 했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을 테지만,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선아에 대한 위협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그에 따른 새로운 목표로 움직입니다.
자고로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는 역할이 명확합니다. 사건을 겪고, 고찰하며, 그에 따른 결과를 내야하는 인물이죠. 시작과 끝이 명확해야하는 인물이라는 뜻도 됩니다. 아마 작가님께서는 초반에 의심의 대상으로 시작되었던 선아가, 주인공이 지켜줘야 하는 존재로 격상되는 일련의 흐름을 노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흐름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결국 작품 내에서는 그 기승전결이 명확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를 더욱 간결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만, 작가님의 선택이지 제가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만약 제 조언을 구하신다면, 아예 초반부터 선아가 인육의 대상으로 선택되며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자신이 죽이고 권력자에게 바쳐야하는 한낱 고깃덩이가, 주인공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는 과정을 그리며, 끝에 선아를 구하는 결과를 낸다면 어떨까요? 물론 이 플롯이 해당 작품의 플롯보다 더 낫다는 무례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저 작품을 깊게 읽었던 일개 독자의 아쉬움을 달아두었다, 정도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정식의 참맛은 정성이죠. 작은 칼질부터 시작해볼까요?』
앞서 이런저런 비판으로 이 멋진 작품에 흠집을 들춰냈지만, 그것이 곧 이 작품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적지 않은 분량을 써내 독자들 앞에 선보인 작가님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이 작품은 적지 않은 호평을 받아야 마땅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작품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데에서는,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앞서 길고 지루하게 늘어놓았던 비판들도, 어떤 고칠 수 없는 병(病)이라기보다는, 그저 ‘소설 쓰기’라는 방식에 대해 어색하다는 쪽에 가까운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보여주기보다는 설명하기에 집중하는 방식도, 개연성이 부족하여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인물도, 장황하게 꼬여 있는 플롯들도……. 그저 소설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조금 미숙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한 편의 습작으로서는 상당히 힘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재료가 명확하고, 그릇에 담겨 있는데, 그저 요리방식이 미숙하다는 느낌이라면 의미가 비슷할까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어떤 거대한 지점을 노리고 다가가기 보다는, 아주 표면적인 부분부터 다듬어봤으면 한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가령 주인공의 ‘모습’ 같은 것이 있겠죠.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등장하는 외계종족이 ‘도마뱀’에 가까운 외형이라는 언급은 등장하지만, 막상 생물학적인 특징에서는 거의 묘사되지 않는 설정에 가깝습니다. ‘렙틸리언’이라는 설정을 가려놓고 보면, 그저 힘이 세고 취향(?)이 구역질나는 여느 인간의 모습과 똑같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파충류처럼 피부의 수분이 중요해서 곤란을 겪는다거나, 번식 과정에서 알을 낳는다거나, 인간의 모습으로 도마뱀과 같은 행동을 하며 인간과 다른 습성을 암시한다거나 하는, 충분히 평범한 인간과 구별되는 묘사를 넣을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아닙니다. 그런 작은 설정은 오히려 배제한 채 주제와 배경 같은 거대한 설정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작인 <개구리 제국>에서도 외계행성의 주민들이 양서류의 특징을 가졌다는 묘사가 전무하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식탁에 요리 하나를 올리는 데는 갖은 정성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요리 하나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칼질로 재료를 썰고 껍질을 벗기는 아주 기본적인 과정에 공을 들이곤 합니다. 이 작품을 즐겁게 읽은 독자로서는, 그 작은 칼질 한 번을 기대해보게 됩니다. 칼을 쥐고, 재료를 썰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 반찬 보다 간소하지만 그릇 하나에 정성이 담긴, 그런 작품을 말이죠. 작가님이 글쓰기에 다가가는 열정을 느낀 한 명의 독자로서, 그것이 결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지구인 정식 한상>을 한술 뜨고 그릇까지 비운 독자이기에 단언할 수 있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 작가님이 쓰실 또 다른 한 상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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