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전작 단평 단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이화령 (작가: 이시우,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20년 9월, 조회 234

https://britg.kr/product/27921/

 

최근에 웹툰으로도 나왔다(https://ridibooks.com/books/4158000066). 사실 비슷한 소재에 같은 제목의 다른 공포 단편이 있어서 읽기 전에 걱정이 먼저 들었는데, 다행히 별 문제없이 읽을 수 있었다. 안정적인 작품.

 

이산화 작가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원숙함을 따지면 다른 몇몇 작품이 더 낫다 싶지만, 이 작품 쪽이 압도적으로 파워가 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간단하게 선을 쭉쭉 긋는데 멋들어진 그림이 완성돼있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이 작품이 그런 느낌이다. 브릿지에 명백히 이 작품을 의식하고 쓴 작품을 투고했다가 이 작품이 받았던 심사평과 비슷한 심사평을 받고 떨어졌던 적이 있다. 아직 내 수준으로 도달하기엔 거리가 먼 작품인듯.

 

손톱깎기가 제일 충격적이었다(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다 공감하지 않을까?). 예전에 본 [쓰리, 몬스터]라는 영화에서 인육만두 먹는 편이 떠오르기도 했다. 달걀을 깼더니 만들어지다 만 병아리의 시체가 흰자와 함께 나오는 그런 느낌의, 작가 프로필 이미지의 귀여움에선 상상할 수 없는 불쾌감을 주는 작품.

 

이 작품 속 세계는 어쩐지 채도가 낮다. 영화라고 친다면, 이 작품은 필터부터 공포영화용 필터를 쓴 느낌이다. 방청소를 하는 장면마저 전혀 상쾌함이 없다보니, 그야말로 어떤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지옥의 풍경.

 

음, 정말 잘 쓴다. 감복. 정말 견고한 필력이다. 제목은 아직도 이게 천정세인지 천장세인지 모르겠다.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는 파트 이후 바로 이어지는 낙차가 눈에 띈다.

 

나라면 주인공보다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릴러와 호러의 차이는, 다가온 상황에 대해 대처하느냐 당하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화령의 주인공을 보면 ‘똑똑하고 실행력이 있다. 나는 저렇게 못 했을 것 같다.’라는 느낌이고, 확실히 호러보다는 스릴러 느낌이 더 강했다. 반면 얻어맞기만 하는 작품(이 작품과 그네, 위탁관리 등)은 순수하게 호러적이다. 미드소마(2019)라는 영화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을 듣다가 이 생각이 더 굳어졌다.

 

신기하게도 읽으면서 단 한 번도 ‘버스가 달리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버스는 대체 언제까지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을 작정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이미 달리고 있었지만;; 그만큼 밀도에 집중한 작품이란 뜻일 듯. 멋들어지게 말해보자면 ‘진득한 긴장감에 시간마저 멈춘 듯이 느껴졌다.’

 

어떤 의미로 이 작품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의미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작품들이 모두 ‘모던 호러’로 묶을 수 있는 반면, 이 작품은 가장 고전적인 타입의 공포 소설이었다. 이 작품을 읽음으로서 다른 작품은 물론 이 작품까지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는 느낌이랄까?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작품을 마지막에 놓은 건 작품집 구성으로서 베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좋은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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