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 만드는 공포 감상

대상작품: 에어컨 (작가: 이도건,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8시간 전, 조회 9

올해는 역대급 더위가 오겠다는 예보를 여러 번 들으며 맞이한 여름입니다. 의외로 기습성 폭우가 여러번 오면서 생각보다는 더위의 압박이 덜 하지만, 비가 그친 후 찾아오는 무거운 여름의 공기는 높은 습도와 맞물려 좋지 않은 느낌들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위를 소재로 한 소설은 브릿G에도 여러 편이 있습니다만(사람 잡아먹는 선풍기가 나오는 작품이 기억나는군요),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잘 쓰여진 공포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글 자체의 재미도 훌륭하지만 공포 소설은 무엇보다 무서워야 존재 가치가 있는 법인데 이 작품, 상당히 무섭습니다.

이 작품을 들여다 보면 더위와 같은 자연적 재난 상황에 닥쳤을 때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최근 35도가 넘는 한낮 날씨에 5분만 밖에 서 있어보면 몇 년 전에는 자주 언급했다가 지금은 말도 잘 꺼내지 않는 ‘불쾌 지수’가 한계치를 쉽게 넘어가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여름에는 보복 운전이라던가 묻지마 폭행 같은 사건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통계치도 있지요. 그게 집 안이라고 다를까요?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공포는 그 장소가 ‘집 안’ 이기 때문에 더 극대화됩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장소이고 현대인들에겐 최후의 피난처가 되는 곳이 집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집이 노출되고 집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 요즘 사람들은 어떤 때보다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공포 요소도 바로 그 지점입니다. 더 피할 곳이 없다는 막막함이죠.

거기에 나를 두렵게 하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그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은 없을 겁니다. 그저 무섭게 변한 것이 아니라 뭔가 이상해진 가족들, 우리 엄마가, 우리 형이 맞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주인공의 감정이 짧은 이야기 속에 꾹꾹 눌러 담겨져 작품 내내 독자들과 함께 두려워하고 쫓기게 됩니다.

다른 계절보다는 특히 여름에 사람들은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거나 약간 달라 보인다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계절이 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말로 어느 여름날 51도가 된다면 우리 엄마나 아빠가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니 이 작품이 더 실감나고 무섭게 다가오는 것 같더군요. 작품 내에서 가족들의 행동은 자다 깬 주인공이 느끼기에 너무나 이상하고 무섭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이 직접 무언가를 확인한 건 아닙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바닥의 상태를 보고 주인공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 상황을 함께 보는 독자들에게 더 무섭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항상 ‘무서운 이야기는 짧을 수록 좋다’는 저 만의 개똥 철학을 펼치곤 했는데, 이 작품 또한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알찬 재미와 서늘한 공포를 담은 재미있는 단편 호러입니다. 기왕이면 에어컨 빵빵하게 켜고 아이스 녹차 한 잔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읽는 동안 얼음을 깨 먹진 않으실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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