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으로 모든 인간이 최대치의 능력을 얻은 시대, 모두 같은 신체 능력을 가졌으니 사교육으로 얻은 별도의 초능력으로 우위를 가리려는 ‘구찌다스파이트’에서 20주년을 맞이해 투명인간인 위원장보다 더 투명하고 공정한 대결을 위해 ‘디폴트 휴먼 쿼터제’를 도입합니다. 그렇게 작품 소개에 등장하는 초능력자 홀로와 수리, 그리고 평범한 인간 미애가 거창한 오픈런 대회의 결승선에 서게 되죠.
초능력 배틀물이라고 일컫는 초능력자들이 싸우는 만화를 보면 어느 한 능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한 결국에는 머리 싸움이 됩니다. 혹은 운이 굉장히 좋거나요. 어쩌면 자기가 초능력이 없는 것도 어떤 초능력도 통하지 않는 초능력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으로 설명될 수도 있겠고요. 초능력이 난무하는 세상의 ‘평범한 인간’인 미애가 어떻게 이길지 궁금했습니다. 원래 작품에서는 이런 불리한 쪽이 주인공이 되고, 주인공이라면 이기기 마련이잖아요?
그렇지만 착각이었습니다! 미애가 초능력이 있다는 건 아쉬웠지만, 제게 있어 주인공이 된 수리가 이제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지 기대됐습니다. 현실을 외면해서 꿈으로 만들어 없앤다는 건 독특하지만, 간단히 말해서 통제 가능한 루프니 여러 작품에서 그랬듯이 루프를 빠져나올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렇지만 이것 역시 착각이었습니다~! 무려 91번이나 반복한 끝에 수리는 한정판 신발이고 뭐고 미애에게 울며불며 항복합니다. 그래요, 저 같아도 이딴 시합은 다 때려치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더라고요. 진짜 꿈을 꾸면서 현실을 사는 게 아무래도 훨씬 낫지 않겠어요? 온갖 고생을 다 해서 예선, 본선을 통과하고 온 결승이지만 뭘 해도 결국 출발 신호가 울리는 순간으로 들어오는데 뭘 어쩔 수 있겠어요. 어쨌든 루프를 빠져나오긴 했으니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오직 명예만 필요하다며 다정한 사람을 연기해 놓고서는 초능력자를 통제해야 한다니요?? 읽기만 하는 제 뒤통수도 얼얼한데 수리는 어땠을지 짐작도 안 가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이 사실을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도 참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고요. 그런데 사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초능력이라면 외면술사가 몇 명 더 있고 마인트컨트롤러가 몇 명 더 있을 텐데, 야속하게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더군요…. ‘아니야’라는 말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야 외면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거기 매달려 미쳐가는 수리가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라도 밝혀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때 또다시 돌아가는 게… 그리고 수리가 왜 미애의 기억을 읽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의 무력감이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면 미애도 질리지 않을까요? 이렇게 반복하는 것이야 말로 미애의 삶일 수도 있겠지만요. 게임의 세이브 데이터를 몇 번이고 불러오는 플레이어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시 어떤 부분부터, 자기가 바라는 엔딩을 보기 위해 계속 반복하는 거죠. 이런 생각이 드니 그동안 해 온 게임 캐릭터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것만 같아 저도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졌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나는 게 그 뒤를, 그 전을 상상하게 되어 압도됐습니다. 이게 처음이 아닐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니…. 대체 미애가 바라는 결말은 뭘까요? 작품이 끝났으니 저는 영영 알 수 없지만, 미애도 모르지 않을까 싶었어요. 욕심에는 끝이 없고, 막상 이루어도 마음에 차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으으, 그렇다면 너무너무 끔찍한 전개가 될 것 같은데, 다행히 이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죠!
여담으로 홀로는 홀로그램에서 따온 이름 같고, 미애는 자기를 사랑한단 뜻 같은데, 수리는 왜 수리인지 짐작이 안 가서 마무리의 여운에서 도망치듯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새는 아닐 테고… 수리수리 마수리일까요? 지금 보니 미애의 뜻도 너무 넘겨짚은 것 같은데, 떠올랐을 때는 그럴듯해서 어디든 자랑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