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을 쓸 때 25분 작업, 5분 휴식 2타임으로 총 1시간 작업을 돌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25분 작업 시간 동안은 빈 페이지를 쳐다보며 불만스럽게 앉아있고, 5분은 기지개를 켜거나 웹서핑을 합니다.
왜 갑자기 이 이야기냐구요. 그야 사이 5분 휴식할 동안 이 소설을 발견했고, 덕분에 2타임 작업시간은 그냥 이 소설을 읽는데 할애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읽다가 파이어폭스 호환성 문제인지 본문 로딩이 안 되어서, 중반부터는 모바일로 봤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 작품은 한나라 – 현대 한국 – 미래의 아시아를 오가는 타임리프 소설입니다.
1부 <회남자>는 다소 ‘켄 리우’스러운 상상력이 가미된 한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부 <남한산성>은 1부에서 시간을 넘어 온 온 유안을 재호가 만나고, 3부 <불일부이>는 2부에서 넘어온 재호를 미래의 뉴먼들이 만나는 물고 물리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4부 <무여열반>에서는 이렇게 세 부를 걸쳐 진행되었던 의문점이 해소되며, 작품의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물고, 물고, 물리다가 마침내 결론을 낸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타임리프 장르의 소설인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가 떠올랐습니다. 특히나 4부의 끝이 재호와 마르고트의 로맨틱한 이별로 끝난다는 점이, 로맨스 정서를 전반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줄여)시간 전쟁>을 닮아 있네요.
작품은 중국의 고사를 자꾸만 ‘인용’합니다. ‘인용’이라는 기법 자체가 ‘무협만이 독자적으로 활용하는’ 기법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은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며 인용을 통해 살아온 장르입니다. 마치 인문학이 그러하듯이.
이를테면, 다들 아실 만한 웹소설인 <화산귀환>은 ‘화산파’를 활용하면서 <소오강호>를 인용하고, 김용은 <소오강호>에서 다시 화산(실존하는 산입니다)의 도관을 조사하고, 그리하여 텍스트는 <도덕경>에까지 이릅니다.
서구 인문학 또한 그러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초기의 그리스 희곡에서부터 출발하여, 각종 철학 서적에 인용되고, 그 철학서는 다른 논문 등에 인용되며 사유의 지평을 자꾸 확장해나갑니다. 그리하여 어떤 그리스적 철학이 로그라이트 게임 장르와 접목되면 <하데스> 같은 게 나오는 것이죠.
켄 리우는 이러한 ‘철학, 종교적 텍스트’와 ‘근대 과학적 사고’ 사이에서 오는 만남과 마찰을 ‘실크펑크’로 규정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단순히 ‘동양 판타지’로 오용되고는 합니다만, 굳이 기저에 깔린 철학적 텍스트가 ‘동양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왜 굳이 이런 점을 먼저 언급하느냐 하면, 마음에 들었던 지점이기 때문일 겁니다. <청록의 시간>은 타임리프 SF가 주는 장르의 재미와 무협에서 주로 등장하는 도가적 사유를 잘 접목하고 있습니다. <주역> 등에서 언급되는 태극 – 음양 – 4괘 – 8괘의 흐름이라던가, 작중 타임리프 요소가 사실상 ‘윤회’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동양 철학의 요소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동양 철학적 사고관은 6차원 등 ‘복잡한 SF적 서술방식’을 통해 서술되며, 사유의 지평을 과학적 사고관에까지 접목하고 있습니다. 고도로 발전한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과학을 활용합니다.
저는 최근까지 별 작품들을 보는 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이 작품을 발견해 순식간에 저는 시간을 갈아마셨고, 리뷰까지 남기고 있습니다. 아쉬울 게 있을까요?
동양 철학적 사고관과 타임리프 SF를 접목한 점은 굉장히 흥미를 느꼈습니다만, (철학적인) 사유적인 측면에 비해 충분히 현실을 구조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인공지능이 언급되는 3부 부터입니다. 뉴먼 등장인물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실제적인 측면을 구조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기보다는 ‘스카이넷’ ‘아키텍처’ 같은 이미 매체에서 다뤄진 악역의 재활용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2부까지 고전 인용들을 통해 쌓아 놓았던 신비주의는 3부부터에 이르러서는 다소 전형적인 장르상에 맞춰 해결되는 측면이 있겠습니다. 물론 결말에서 결국 마고와 재호가 (스포일러 관계로 생략) 하는 지점은 반전이라 할 수 있겠지만, 동양적 사고에서 보면 흩어졌던 괘들이 다시 태극으로 수렴한 것에 불과하고, 타임리프에 있어서는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구조의 완성에 가깝다는 점도요.
물론 그 점 때문에 작가를 비판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작가는 이미 충분히 장편에 각 부에 주인공 삽화까지 넣으시느라 악전고투를 겪으셨고,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르의 전형성은 어디까지나 도구이지, 작가의 분투 대상이 아니니까요.
꽤나 깐깐하게 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영 작품을 읽지도, 감상을 쓰지도 못해서 예민해져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리뷰에서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그저 무지렁이의 말로 흘려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