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YES / NO
NO.
이 작품은 ‘기독교를 믿는 악마‘의 이야기다. 그리고 시종일관 무례하며 뻔뻔하기 그지없는 낯선 방문자의 이야기다. 기독교를 믿는 악마라니, 생뚱맞은 설정에, 개그물인가하고 보았지만- 장담하건데, 당신이 기독교를 싫어하든 무신론자든 상관없이 끝까지 한번 보시라,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덧붙여 귀찮게 ’전도(傳道)‘같은 얄팍한 시도는 없으니 안심하고 보시라.
YES.
당신은 왜 그것을 믿는가?
아, 이 질문은 다시 해야겠다. 정말로 믿는가? 아니면 습관처럼 그냥 다니고 있는 건 아닌가? 다소 상투적일 수도 있는 오랜 시비로, 종교란 나약한 인간의 전유물이라던데, 다시 묻자. 그거 왜 믿는 거야?
당신이 믿는 종교가 불교든 이슬람교든 힌두교든, 기독교 또는 천주교든… 이 작품을 여는 이야기를 빌어 질문하자면(자꾸 물어서 죄송하다^^;;) 누군가, 당신의 삶에 쳐들어와 당신의 일상이, 편했던 몸과 마음이 훼방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주 많은 경우, 사람들은 복과 평안을 빌기 위해 종교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훼손될 경우, 편했을 때 가졌던 신앙은 가차 없이 내쳐진다. 역시 아주 많은 경우의 수로. 당신은 어떠할 것 같은가?
이 글에선 기막히고 코 막히게, 지옥에서 기독교를 믿고 있는 악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 기독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은 팝콘 들고 구경하셔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큰 테두리 안에선 자성(自醒) 및 공감될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세상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땅에서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 중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이는 얼마나 될까? 이는 지식적으로 성경과 예수라는 존재를 아는 것과 그를 믿고 그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확언하건데, 기독교인의 태반은 썩었다. 너무 과한 말 아니냐고? 나는 50%도 너무 많이 쳐준 게 아닌가, 80%라고 다시 쓸까 잠깐 고민했다.
이 작품의 대명제는, 성경 말씀을 빌리자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옥과 악마들, 그리고 천사라는 배경과 등장인물들은 분명 판타지적인 설정이 분명한데, 이 글의 저들은 전혀 판타지스럽지 않다. 오히려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이어서 드문드문 악마라는 정체성이 표현되지 않다면 그냥 인간세상의 ‘드라마’ 같다. 어쩌면 톨스토이가 그리는 저 옛 제정 러시아의 어느 땅에서나 벌어질법한 이야기가 연상되는 것이다. 기독교를 미화하지도, 악마를 딱히 악귀같이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실수하고 불평하고 이기적이고 눈치보는, 연약하고 평범한 인간 사회의 모습 그리고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것이 자꾸만 마음 어딘가를 건드려서, 내 삶과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끝끝내
이적이나 기적 하나 없이, 신적인 권능이 없는 인간의 가장 숭고한 행위로 작품은 결말로 치닫는다. 작가님이 의도하신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희생을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사는 예수쟁이가 얼마나 될까? (예수쟁이는 흔히 멸칭(蔑稱)처럼 쓰이지만, 아니다)
이 작품은 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읽어봤으면 한다. 그리고 신앙에 찔림과 도전을 받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나같은 냉소적인 인간에게조차 ‘믿음’을 가져볼까 생각하게 하라.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를 굳이 믿음과 신앙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그리하여 어떤 종교를 가졌든 자신만을 믿든- 그 믿음이란건 언제나 ‘돌아봄’이 필요한 법이다.
더불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고 무언가 마음에 동함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서도 진한 여운과 공감을 가지리라 생각하며, 추천 가득 담아 이만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