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호박엿 감상

대상작품: 쓴 호박엿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쁘띠캐롯, 19년 12월, 조회 16

글자 못 먹는 아이를 읽고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았습니다. 이번 작품도 글자 못 먹는 아이처럼 어린이의 성장을 다룬 동화입니다. 홀로 희수를 키우는 희수의 어머니. 자택근무를 하며 전화영어수업을 하는 엄마는 수입이 많지 않습니다. 공립 유치원은 정원 초과로 지원이 불가능한데 사립 유치원을 보내자니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요. 결국 전화 수업을 병행하며 희수를 돌보기로 작심하는데 맘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일찍 철이 든 희수에게도 혼자 노는 일은 너무나 힘들거든요. 엄마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고 놀아줬으면 좋겠는 그 마음이 백번 이해가 갔어요. 하지만 통화 내내 다글다글 늘어놓는 희수의 말이 전화 너머 학생들에게 들리는 순간 엄마의 직업이 보장될리가 없어요. 엄마는 희수가 떠들 때마다 호박엿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안성맞춤한 꾀에 희수의 말수는 줄어들었고 엄마도 평화롭게 수업을 진행하며 가정에는 평온이 감도는 듯 했어요.

그로부터 4년 후, 희수는 어엿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호박엿을 달고 살아요.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며 시끄럽게 떠들면 좋을텐데 호박엿이 주는 고요함에 너무 익숙해졌나 봅니다. 친구들이 말을 걸면 대꾸하기 귀찮아 친구들의 입에 호박엿을 물려주구요. 선생님의 질문에도 호박엿으로 우물거리는 입으로 대꾸하거나 말을 삼킵니다. 어른들에게 혼이 날 때도 있지만 이제는 말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엄마는 여전히 먹고 사느라 그런 희수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구요. 그러던 어느 날, 엎드려 있다 느지막히 운동장에 나가 체육시간을 맞는 희수가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에 처합니다. 친구의 지갑이 없어졌는데 누군가가 희수가 가장 마지막에 운동장에 나오는 걸 봤다는 거에요. 자백을 하면 용서하겠다는 선생님의 엄포, 시끄럽게 떠들어내는 친구들의 소란, 막연한 긴장감으로 희수는 다시 또 우물우물 말을 얼버무려요. 희수가 가장 늦게 나갔니? (침묵) 혹시 희수 뒤에 남은 친구는 없었니? (침묵) 혹시 희수 네가 훔친 건 아니지? (침묵)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희수는 긴장되고 떨려서 또 이가 너무너무 아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해요.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혹시 이 아이 짓인가 의심한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전화를 받은 엄마가 달려옵니다. 엄마에게도 아무말 꺼내지 못하는 희수. 화가 난 엄마가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울음이 터졌는데 그 울음 속에서 엄마는 보게되요. 희수의 새까맣게 썩은 충치들을요.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 희수의 침묵에 대해, 직감적으로 깨닫는 거에요. 그간 희수의 입에 물려놓았던 호박엿들이 큼직하게 뭉쳐 희수의 입과 희수의 목구멍과 희수의 마음을 꽉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요.

 

ADHD 어린이에 이어 방임형 학대를 다룬 이번 작품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아마 어린이 독자들보다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 그리고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등짝을 떼리고 굶기고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만이 학대가 아님을. 아이의 마음을 닫아걸게 하는 달콤한 호박엿 같은 학대도 존재할 수 있음을 조용히 가리키는 좋은 글이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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