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의 반란 (부제 : 무서워서 치킨 못 먹겠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소등 모음집) – 치킨게임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양하쓰, 19년 12월, 조회 92

***첫 줄부터 스포일러입니다.
읽지 않으시려면 뒤로 가주세요.


 

주변에서는 의외라고들 하지만, 나는 평소에 개드립 치기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이 소설 또한 못지 않은 드립력과 유머가 돋보였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조금 장난스럽게 리뷰를 써보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평’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누구보다 심도 있고 진지하게 이 작품을 대했다고 자부한다.

 

죄송합니다만, 닭이 주인공입니다.

심각한 자원의 고갈.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음을 깨달은 지구인들이 새로운 거처를 찾기 위해 우주항로를 개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성식은 이 첫걸음에 함께한 우주대원이었다. 지구의 존망을 등에 짊어진 소수정예들 중 하나인 그는 누구보다도 우쭐해 있었을 것이다.

성식을 포함한 대원들은 지구에 찾아왔던 타이탄인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냉동보존시스템이 고장이 나고 우주대원들 중 주인공 성식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그는 일주일치의 식량으로 5년을 버텨야 하는 위기 상황에 놓인다.

첫 장면부터 참 인상깊고 임팩트 있었다. 주인공이 앞으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할지 매우 기대가 되었다. 물론 ‘생존’이라는 소재가 가진 특성상 많은 생존 스토리가 초반에 흥미를 유발하기에 유리하지만, 이 작품은 생존보다도 더 흥미로운 주제를 내던진다.

바로 지능이 있는 닭. 그것도 성식이 잡아먹으려 했던 냉동닭의 반란이다.

 

 

당신 때문에 치킨이 무서워졌으니 책임져!

작품 내에서 지능이 있는 닭은 슈퍼닭이라 불린다. 그의 행적은 가히 놀랄 만한데, 성식과 비슷할 정도로… 아니 그보다 더한 잔인성과 대범함을 자랑한다. 진짜 이놈의 슈퍼닭 때문에 순식간에 치킨이 무서워졌다. 할 수만 있다면 작가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작가 당신… 내 삶의 몇 없는 낙인 치킨을 못 먹게 하다니 대체 어떻게 책임질 거요…?

어쨌든 닭이 사라진 장면에 바로 이어 198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된 유전자 조작의 역사가 등장한다. 여기서 어쩜 이렇게 기발한 설정이 다 있나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마션>이나 <인터스텔라>처럼 멋드러진 SF 장르을 기대하던 나였으니, 정말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셈이었다.

어쨌든 슈퍼닭은 자신을 무시하는 성식에게 몇 번이고 인내심을 발휘하며 협상을 권유한다. 그러나 성식은 협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결국 그는 슈퍼닭에게 두 팔을 빼앗기고 죽게 된다. 이후 무사히 타이탄 위성에 도착한 슈퍼닭은 타이탄인들의 환대를 받게 된다. 이렇게 인간과 슈퍼닭의 대결이 마무리되며 작품이 끝난다.

 

 

맛있긴 한데 좀 아쉬운 인공조미료 맛

작품 제목도 치킨이요, 리뷰도 치킨으로 닭판(?)이 된 마당에 작품에 대한 총평을 맛에 비유해보고자 한다. 소제목에도 썼지만, 이 작품은 참 맛있긴 한데… 좀 아쉬운 인공조미료가 쓰인 느낌이다.

사실 전반부에서 성식이 자신 혼자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며 1인칭으로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긴박한 느낌이 좋았다. 중반부터 3인칭으로 시점이 바뀌고 닭이 새로운 인물로 등장하며 분위기는 급변하는데, 이런 장치는 정말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다. 마치 닮볶음탕을 첫 술 떴는데, 단맛이 강해서 방심하다가 한참 후에 내 혀를 후려치는 매운맛이 느껴질 때 같은 느낌이랄까. 슈퍼닭이 등장하면서 이거 정말 방심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구나, 하며 감탄했다.

또 안타깝게도 우주 미라가 된 피트가 한국 치킨이 최고라고 하는 등 유머가 있는 대목들은 감칠맛을 더한다. 슈퍼닭이 부리로 기계판을 조정하고 우주선을 통제하는 모습도 상상해보면 참 해괴하지만 신선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네 본질은 닭고기지.’라는 대사에서 멈칫했다. 아, 이건 너무 많이 갔는걸… 하는 아쉬움이 컸다. 너무도 인위적이고 직접적인 대사였던 것 같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슈퍼닭이라는 발상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가 있는데 이렇게 직접적인 대사를 날리다니. 이보시오, 그러지 않아도 독자들은 다 안단 말이오. 우리가 즐겨먹는 치킨이 왜 이 작품을 읽고 두려운 존재로 변모했는지 말이오.

어쨌든 그래서 이 작품은 정말 맛있게 먹기는 했는데, 어느 식당에 가도 그 조미료를 쓰면 그 맛이 난다는 한계가 느껴졌다. 어떤 이야기이든 상징적으로, 에둘러 말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도 마냥 오락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알쏭달쏭하지만,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직접 읽어보고 해석하고 능동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재미도 느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대사는 그 재미를 반감시켰다. 그러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어찌 하다 보니 계속 지적만 해댄 것 같아 민밍하지만,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또 찾을 소설 맛집임에는 틀림없다. 한동안 리뷰 활동을 쉬어서 좀 가물가물하지만, 이 작가님은 이전에도 훌륭하고 기발한 작품들을 많이 쓰셨던 걸로 기억한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을 많이 써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도 한동안 치킨을 못 먹을 걸 생각하니… 역시… (부들부들)

 

덧붙임. 사실 리뷰 공모 마감이 오늘이길래, 미리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야 작품을 읽었습니다. 공모 채택의 기회를 놓쳐 아쉽네요…ㅎㅎ 반드시 채택되리란 확신은 없지만, 정성을 다해 리뷰를 쓰는 일에는 자신이 있거든요… 채택 전에 쓰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이토록 기이하고도 참신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멱살을 잡겠다는 얘기는 당연히 농담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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