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인 구조, 지나친 상징, 아쉬운 배치, 분명한 가능성 공모(비평)

대상작품: 모든 천사는 두렵다 (작가: 이열,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3일 전, 조회 27

넓은 범주에서 모든 이야기에는 정해진 흐름이 있지만, 감염되어 서서히 변해가는 인물을 그리는 서사는 특히 예측할 수 있는 절대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몇 갈래의 분기를 지닌 클리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감염을 부정할 것인가, 긍정할 것인가. 치유될 것인가, 죽을 것인가. 희생할 것인가, 전염시킬 것인가. 이러한 큰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잘 못 쓴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읽고 쓰는 이야기는 언제나 구조의 반복과 변주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열 작가님의 <모든 천사는 두렵다>는 질병의 감염을 다루는 서사의 큰 틀 내에서 잘 쓰인 작품입니다. 자신의 감염을 부정하는 인물인 지수가 서서히 질병으로 인해서 신체적으로 망가지고, 정신적으로도 변질됩니다. 이는 애인인 주희에게 부치지 못했던 편지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마지막에 가서 지수는 죽음을 각오하고 주희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합니다. 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잘 짜여 있으며, 서서히 변해가는 지수의 모습은 아주 섬찟합니다. 길게 이어진 후일담의 끝에서, 지수의 시신이 소각 직전에 사라진 것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주희 역시 어느 시점부터 소재 불명이 되었다는 것도 그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변주의 측면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큰 걸림은 상징과 내용 배치의 문제입니다.

본 작품은 태그에서부터 ‘종교상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십자가, 성당, 선택받음, 영혼, 천사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것으로의 변모 등이 반복됩니다. 좀 지나치게 반복된다는 감이 있습니다. 어쩌면 본작 제목의 출처인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영향을 받은 탓일 수도 있겠네요. 물론 지수와 주희의 만남이나 추억을 조명하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철골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물론 인스타 감성의 공사장 인테리어가 효과적으로 먹힐 수도 있습니다만, 이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수와 주희의 첫 만남에서 빵을 받은 주희의 반응, 둘이서 성당을 처음 갔던 일 정도는 삭제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리뷰에서 명시하게 되면 철골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꼴이 되겠지만, 그래도 잘 사용된 종교상징 하나를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성흔’입니다. 성흔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난 상처들을 가리킵니다. 손발의 못 자국, 가시관을 쓰면서 생긴 머리의 상처, 예수의 사망을 확인하고자 찌른 옆구리의 상처가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몇몇 성도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이러한 성흔을 얻기도 한다고 합니다. 지수는 계속해서 손바닥의 통증, 변이를 느낍니다. 후에는 발등에도 동그란 상처가 생깁니다. 또한 지수가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주희의 십자가, 최 일병이 목격한 양 팔을 벌린 사람의 모습 등을 통해서 암시적으로 연결됩니다. 지수의 이야기가 끝난 후 최 일병 역시 자신의 손바닥에서 변화를 느끼며 성흔이 나타날 조짐을 보입니다. 이것이 소설에서 상징을 사용하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성흔이라는 말이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성흔의 이미지가 강해진 것입니다.

종교적 상징 이외에도 사르트르의 <구토>, 니체에 대한 언급, 본작 제목의 출처이기도 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도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쉽습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리는 본 작품은 그 자체로 실존주의적입니다. 구태여 사르트르와 니케를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는 필연적으로 삽입될 수밖에 없다더라도, <구토>와 이를 다루는 대목은 과감하게 삭제했어도 좋았으리라 봅니다.

 

내용 배치에 대해서도 다루자면, 이 이야기의 핵심은 주희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들과 맨 마지막에 있는 군 비밀 보고서 메모로 충분합니다. 중간에 삽입된 주희의 편지나 최 일병의 관찰일지는 큰 구조의 관점에서는 잘 어울리지 못해 사족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도 좋은 서사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미 앞부분에 제시된 편지만으로 충분히 독자가 감염 서사에서 원하는 긴장감이나 이야기 전체의 흐름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뒤의 내용은 전부 읽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물론 최 일병의 관찰일지에서만 드러나는 정보도 있습니다. 특히 편지에서 직접 드러나지 않는 ‘순종’이라는 키워드가 그렇습니다. 최 일병의 관찰일지가 사족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관찰일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축약하여 지수의 편지나 군 비밀 보고서 메모에 삽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분량은 대폭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요약되고 생략된 정보들 사이에 나타난 공백을 통해 독자는 몰입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내용의 배치를 수정하여 지수의 편지와 최 일병의 관찰일지를 계속해서 교차하는 것입니다. 최 일병의 관찰일지는 현시점에서 비록 사족처럼 느껴지지만, 중요한 역할을 두 가지나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수의 변화를 제삼자의 시선에서 전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암시적으로 나타나는 최 일병 본인의 변화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이 질병의 전염성과 그것이 갖는 종교적 상징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인 것입니다. 특히 지수가 격리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시신이 사라진 뒤에도 최 일병의 관찰일지가 계속된다면, 다시금 새로운 편지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 공포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희의 편지도 효과적으로 쓰이려면 그 배치가 보고서 메모 전후여야 한다고 봅니다. 갑자기 주희를 조명시키고 그녀의 소재 불명을 다룸으로써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천사는 두렵다>는 이열 작가님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라고 봅니다. 이야기의 큰 구조가 잘 짜여있어, 독자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변주에서는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상징과 이야기의 배치에서 거친 면이 있지만, 서사의 전략을 잘 고민해 보는 것으로 더 매끄럽게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이열 작가님의 작품이 기대됩니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써주신 이열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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