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십니다. 담배는 안 피웁니다. 연금 받을 때까지 버티려면 둘 중의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판단의 결과입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본 작품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고, 읽고나면 왠지 금주를 권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이 리뷰도 하이네켄을 마시며 쓰고 있습니다. 리뷰가 잘 안돼도 좋습니다. 하지만 작품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스포일러를 포함해 전합니다.
보통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는걸로 리뷰를 시작하는 편이고, 앞에 스포 있다고 써놓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고싶습니다. 프로이트, 뭐 이미 현대심리학은 이분을 오래 전에 손절했다고 하고, 서브컬쳐에서도 정신분석학은 단물 다 빠진 소재로 취급하는 느낌이 있지만 여전히 그분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영화 드라마에서 정신의학이라면 일단 환자를 소파에 눕혀놔야 하는법이지요. 본 작품에서 마왕? 빌런? 즉 그것의 페니와이즈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바로 프로이트 옹께서 주창하신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입니다. 원초아, 자아, 초자아 친구들이지요.
어려운 책들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인류(엄밀히는 기독교세계인들이지만)는 때때로 나타나는 사악하거나 혼란스런 충동을 악마의 모략으로 이해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그 원인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 심리 근원에 존재하는 무의식으로 돌려 현대적인 정신의학의 토대를 닦았다고하지요. 지금은 연금술과 화학 정도의 관계로 보는듯도 하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어쩐지 대중들에게는 우리의 무의식이 도리어 악마화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가 나를 장악하고 상상도 못한 일을 저지르게 한다니, 그야말로 악마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오히려 그 존재에 대해서도 왈가왈부가 계속되는) 무의식의 세계는 딥 다크한 심연이 되어 지금도 공포장르의 빵빵한 잔고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 내면의 무언가가 실체화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제법 다뤄진 소재이나, 저는 그 매개로 술을 택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보통 무의식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매개체는 특별한 약물 혹은 꿈이 자주 등장합니다. 술의 경우, 오히려 친숙하다보니 제법 간과된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가 술에 관대한 탓인지, 아무튼 개인적으로 주량에 비해 과하게 마시면 필름이 자주 끊기는 편인데, 보통 잠들거나 알아서 집에 오는 편이지만 실수를 한 적도 꽤 있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명백히 현실에 영향을 끼친 상황에서 술에 취한 나는 온전한 나일까, 혹 다른 누군가였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일상적인 의문을 잘 파고든 소재였습니다.
다만 실체화된 무의식들(교양 심리학이 남긴 흔적에 따르면 에고와 슈퍼에고는 무의식에 속하는게 아닌것같지만 일단 본 작품에서는 그렇다고 보므로)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습니다. 일단 이드는 멍뭉이고 에고는 디오니소스님인데 둘은 융합하여 이누야샤가 되기도 하는등 상부상조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이드는 주로 인간을 씹뜯맛즐하고 에고는 포도주 시음행사를 하다가 문득 파이로로 전직하면서 상부상조해서 인간들을 조진다는게 문제겠습니다. 슈퍼에고는 주인공?에 따라서 아버지이기도,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뭔가 마지막에 나와 단죄하는 역할을 하는데, 나머지 둘이 주인공 자신인데 반해 본인은 타인에 속한다고 주장합니다. 뭐든 다들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주인공의 각성에 따라서는 신비한 푸른꽃?에 당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푸른 꽃과 여인?에 대해서는 교양이 부족한 관계로 저로서는 해석불능의 영역이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주인공의 아니마일까요? 융 선생님은 답을 알고 계실지, 아무래도 중요한 요소 같았는데…
해석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상 정확한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상징들이 작중의 상황에 부여하는 개연성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대체로 아브라함계 종교를 뼈대로한 상징과 문구들에 대한 설명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여기저기서 부연됩니다. 루루 등의 강아지 이름도 구글링 해보면 무서운 불란서 늑대가 되지요. 그러나 상징과 암시만으로는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하기(일단 예상을 해야 확인을 하든 배반을 당하든 하므로..)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의 원초적인 잔혹성을 형상화한듯한 이드가 해방될 때의 상황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에고는 무엇일까요, 포도주의 권능으로 이드의 제약을 풀려는 의도를 가진 존재일까요? 그렇다면 후반부에 그가 불의 권능으로서 직접적으로 대량살육을 벌이는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그리고 노숙자인 그에게는 왜 불상의 형상으로 먼저 꿈에 나타난것일까요? 슈퍼에고는 이들과 대적하는 존재일까요? 이런 초월적 존재들의 의도가 차라리 순수한 혼돈이었다면 아 인간들이 고통받겠구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수차례 암시되었듯 이들은 나름의 역할을 지닌 – 고로 논리적인 존재들입니다. 트럭운전사 그녀의 이드는 나중에 어딘가 길들여진 느낌까지 주지요. 이들의 의도가 제시되지 않다보니 계속적인 살인 내지 학살극의 생동감이 빛을 바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십자군 보내는 교황님처럼 라틴어로 반복적으로 말하긴 하지만, 역시 의도가 두루뭉술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비슷하게 등장인물들의 행동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개연성이 부족해집니다. 첫번째 주인공은 감옥에서 식인행위를 벌인뒤 갑자기 자신이 순교자라고 주장하는데, 악을 직시하는 게 본인의 사명인 건 그렇다치고 일반적인 신앙에서 악을 직접 행한 본인을 신이 택한 사람이라고 믿는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숙자 주인공도 자고일어나 술을마시다 해몽을 해보니 분신자살이 답이라고 결론지은 다음 도믿걸과의 대화를 통해 대구지하철참사를 되풀이하는데요, 과거 회상을 통해 볼때 이양반이 그정도로 상태가 안좋은 인물이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음주운전자 역시 한 화만에 슈퍼에고 니가 뭔데 나한테 뭐라그러냐며 투쟁심을 불태웁니다만, 화가나는건 둘째치고 뭘 어떻게 불러내서 대적하겠다는건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이야기의 배후이며 중심인 삼중자아의 정체는 가려놓더라도, 그 의도가 명확치 않다보니 독후감이 다소 찜찜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제목이나 작내 비중을 고려할 때, 술이라는 요소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점에서 오히려 에고가 기적으로 술을 생성할 수 있다는 점이 술과 관련한 긴장감을 떨어트립니다. 악마가 내키는 대로 강림할수 있는데, 마도서가 특별한 물건으로 취급받기는 어렵지요. 사족이지만 비록 구치소 환경이라도 몇가지 소설적인 장치를 동원하면 술을 구하는게 불가능하지는 않을것같습니다.
생각할 점이 많은 소재와 기억에 남는 시퀀스들(단문에서 다른분이 언급하셨듯, 특히 감방에 들어온 말벌 쪽이)이 상당한 작품이나, 작가분께서 너무 서둘러 마무리하신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호러영화는 못보면서 유혈낭자한게 또 취향이다 보니 사실, 상당한 기대감을 지니고 매화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여성 트럭커 또한 멋진 요소지요. 한국의 화물운수 구조가 하루빨리 정상화될수있기를, 오늘도 유로트럭을 플레이하며 응원합니다.
처음 하는 장편 리뷰라 이것저것 할말은 많은데 중언부언하고 불만만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항상 건필하시고, 작가님의 또다른 장편 연재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알콜에 슈퍼에고가 터미네이터처럼 융해되는 장면은 끝까지 안 나오더군요. 내심 기대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