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개발 최전선에 있던 개발자가 쓴 소설 공모(감상)

대상작품: 이세계 마왕 개박살내기 (작가: 앉은황소,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9시간 전, 조회 12

신생 게임 개발사 뉴월드가 내놓은 MMORPG [이마개]의 NPC와 몬스터들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들은 기억하고, 반응하고, 분노한다. 유저들이 NPC 왕을 학살하고 성을 빼앗자, NPC들은 저항군을 조직하고, 독을 탄 물약을 팔고, 암살을 시도한다.
개발자 윤진호가 가장 먼저 이 사실을 감지한다. 그는 좌표계의 이상함, 고유 NPC들의 접근 불가능한 데이터 구조, 깃헙에서 갑자기 사라진 오픈소스 엔진을 단서 삼아 이 게임이 ‘어딘가 실재하는 차원’을 그대로 끌어다 쓴 것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회사는 매출에 취해 있고, 대표 태환은 ‘정신이 이상해진 것 아니냐’며 그를 돌려보낸다. 그리고 얼마 뒤, 윤진호는 죽는다.


이 구조는 단순한 SF 판타지가 아니다. ‘이건 그냥 게임이야’라고 말하면서 돈만 벌리면 되고 관리책임은 외면하는 ‘높으신 분들’, 그 밑에서 자신이 뭘 만들었는지조차 모르는 ‘개발자들’. 그리고 ‘내가 제일 돈을 많이 냈는데!’ 라며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유저들’의 이야기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과금유도 게임의 핵과금 유저들]

소설에서 천마신군으로 대표되는 핵과금 길드의 묘사는 직접적이고 거리낌이 없다. 한달에 300만 원 미만은 가입 금지. 인당 수백만 원의 뽑기를 1시간 동안 돌리고 게임에 들어가는 길드. 수천만 원을 지른 천마신군은 NPC 병사들의 경외를 받으며 단칼에 수십 마리를 도륙한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게임은 정말 돈 쓰는 이가 어떻게 해야 만족하는지를 아는 게임이구나!”

이 한 문장이 한국 MMORPG 수십 년의 설계 철학을 요약한다. 게임은 세계관도 스토리도 팔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돈을 써서 강해진 나’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무대를 판다. 천마신군이 NPC들의 왕을 죽이고 세금을 걷고 저항하는 NPC들을 고문하는 장면은, 단순한 악당 묘사가 아니라 그 설계 철학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높으신 분들’의 세계: 숫자로만 보이는 존재들]

대표 김태환은 전형적인 ‘결과만 보는 리더’다. 그는 NPC들의 반발을 ‘부정 동향’이라는 지표로 관리하고, 마왕에게 순간이동 기능을 붙여주는 결정을 TD의 반대를 묵살하고 독단으로 내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벤트 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매출 그래프가 우상향이라서.

그는 NPC들을 ‘그 새끼들 태도가 이상하다’고 표현한다. 민심을 ‘잡아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NPC의 감정 로그가 서버에 실시간으로 찍히고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묻지 않는다. 10조 매출이 눈앞에 있으니까.

높으신 분들의 세계에서 존재는 숫자이고, 생명의 가능성은 리스크일 뿐이다. TD 윤진호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이상한 존재들을 건드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절규해도, 태환은 “며칠 휴가나 줄게”라고 대답한다.

고유 NPC와 특수 몬스터들의 데이터 구조에 접근하는 것조차 서버팀장도, TD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그걸 만들지 않았는데, 그건 엔진 안에 처음부터 있었다. 그러나 대표는 그 깃헙이 폐쇄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박수를 쳤다. “이거 쓰는 MMORPG 우리밖에 없다!”
개발 현장의 공포가 경영진의 쾌재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실제 게임 업계에서 반복되어온 이 거리감을 소설은 정확히 포착한다.

 

[개발 현장의 괴리: 알지만 말할 수 없는 자들]

TD 윤진호는 안다. 좌표계에 x, y, z 외에 d(dimension)가 존재한다는 것, 엔진 안에 자신도 접근할 수 없는 원본이 살아있다는 것, 오픈소스라고 받아온 그 엔진의 깃허브 주소가 개발 도중 조용히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그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 무엇인지 자신들조차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아는 것은 결국 ‘추측’으로만 존재한다. “내 생각에 그건 dimension이야.” “그렇지, 내 추측이지.” 그는 확신하지만 증명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으니 아무도 듣지 않는다. 결국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가고, 얼마 후 죽음으로 발견된다.

서버팀장 전현식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위치에 있다. 그는 고유 NPC들의 데이터 구조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언젠가 유지보수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고도 해봤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의 본질까지는 닿지 못한다. 마왕의 내면 독백 로그를 보면서도, TD가 왜 그토록 격렬하게 반대했는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전투팀장 장용철은 아예 모른다. 그는 “NPC AI도 몬스터처럼 바꾸면 되지 않냐”고 순진하게 질문했다가 대표에게 타박을 받는다. 개발진 사이에도 얼마나 깊은 정보 단절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뭐 대충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라든지 디자이너와 개발자,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라든지… 게임개발은 1도 모르는 1인이라…).

이 구조는 현실의 대형 기술 조직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이 경영진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못하고, 현장 실무자는 부분만 보며, 의사결정자는 지표만 본다. 그 사이의 간극에서 재앙이 자란다.

 

[개발자들조차 모르는 버그, 혹은 ‘그것’]

이 소설에서 가장 으스스한 장치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데이터’다. 고유 NPC들은 어떤 개발자도 내부를 열어볼 수 없다. 마왕 크투가의 데이터 구조는 TD도 서버팀장도 확인하지 못한다. 이것이 버그인지, 설계인지, 아니면 진짜 살아있는 존재의 흔적인지. 게임을 만든 회사조차 알지 못한다.

CBT도, FGT도 거치지 않은 채 오픈한 게임. 전체 빌드를 제대로 테스트해본 내부 개발자가 없다는 소문. 이 설정들은 단순한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개발 일정과 투자자 압박에 떠밀려 충분한 검증 없이 제품을 세상에 내보내는 현실의 은유다.

회사는 무엇을 만들었는지도 다 모르는 채로, 아니, 무엇을 만들라고 한지도 모르는 채로 ‘서비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상에 던져놓고 주가만 오르면 나몰라라 한다.

 

[잘된 부분]

현실 풍자가 날카롭다. 게임 오픈 당일 유튜버들이 과금 모델을 공략하러 달려드는 장면, 한 달에 300만 원 미만은 가입 금지라는 길드 묘사 등 — 한국 MMORPG 게임 문화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첫 사망 직후 팝업되는 ‘오픈 기념 무료 유료 장비 체험’은 웃음보다 ‘아오오…’ 하는 한숨이 먼저 나오는 종류의 리얼리즘이다.

그리고 세계관 빌드업이 자연스럽다. 태환과 진호가 처음에 VR기기와 함께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나 좌표계의 x, y, z, d 설정, 접근 불가능한 고유 NPC 데이터 구조, 오픈소스 깃헙의 폐쇄 등, 세계관의 ‘이상함’이 작위적이지 않고 개발 현장의 언어로 쌓인다. 이런 부분은 실제 개발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쓰기 힘든 디테일이라고 본다.

 

[아쉬운 부분]

두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다. 천마신군으로 대표되는 핵과금 유저들의 세계 정복 서사와, 진호·태환의 ‘실제 차원을 이용한 게임 개발’이라는 SF적 미스터리 서사는 각각 따로 쓰여진 뒤 억지로 이어붙인 듯한 인상을 준다. 천마신군이 NPC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장면은 분명 흥미롭지만, 그 서사가 크투가의 차원 이동이나 윤진호의 죽음과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한 채 각자 달린다. 독자 입장에서는 중반부 내내 서로 다른 소설 두 편을 동시에 읽는 것 같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대화체 설명의 과부하. 윤진호와 태환의 좌표계 논쟁 장면은 핵심 설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씬이지만, 대화가 다소 설명적으로 흘러 긴장감보다 강의처럼 읽히는 구간이 있다. 물론 진호의 말이 설득력 없게 다가간다는 것을 표현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살짝 아쉽다.

 

[결말의 정직함]

마지막은 마왕 크투가가 태환의 집 소파에 앉아 태환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크투가는 태환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왜 그랬냐”고 묻는다. 태환은 대답할 수 없다. 그저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이고, 찬사를 받고 싶었을 뿐이고, 그것들이 살아있는 존재인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꺼낼 수 없다. 그것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도 알기 때문에.

“살려주세요, 돈을 드리겠습니다.”

태환이 내놓는 최후의 카드는 결국 돈이다. 그가 세상의 모든 것을 해석해온 방식이다. 크투가의 웃음은 그래서 단순한 악당의 웃음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언어가 얼마나 빈곤했는지를 깨달은 피조물의 웃음이다.
그리고 크투가는 말한다. 죽음은 너무 값싼 복수라고. 수십번 모욕적으로 죽음을 당한 존재가 단 한번의 죽음으로 갚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그래서 크투가는 태환을 지옥으로 데리고 간다.

이 결말은 권선징악도 아니고, 카타르시스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청구서다. 살아있는 것들을 살아있다고 인식하지 않았을 때, 모니터 너머의 유저들과 그 너머의 개발자들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을 때. 그것이 무지 때문이든, 귀찮음 때문이든, 돈 때문이든 결국 그 청구서는 반드시 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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