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참혹한 미래(스포일러 有)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감겨진 눈 아래에 (작가: 전혜진, 작품정보)
리뷰어: 양하쓰, 17년 3월, 조회 201

<감겨진 눈 아래>의 주인공 세실은 프랑스에 사는 교포 2세이다. 그녀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그녀의 부모님이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을 왔다.  세실은 인권단체인 엠네스티의 인턴으로 활동하다가 부모님이 떠난 조국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 땅을 밟자마자 처음 보는 남자들에게 끌려간다. 남자들은 세실에게 3급이라는 급을 매기고, 그녀를 국가에서 만든 매음굴로 넣어버린다. 거기서 재경을 만난 세실은 한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들 중 여자들을 아기를 낳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끔찍한 현실에 처하게 된 세실은 이곳에서 도망쳐서 온세상에 그녀가 겪은 일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녀가 속해 있던 엠네스티의 사람들 덕에 무사히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지만 몇 년 동안이나 후유증을 앓는다. 그 후에 그녀는 진실을 외쳐달라고 부탁했던 재경을 떠올리고 자신이 겪은 한국의 참상을 책으로 써서 세게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특이점을 넘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체내의 칩, 의체,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등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SF적 요소도 다분하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간들은 이제 생존이 아닌 자아실현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긍정적인 미래상으로 그리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세계의 추세와 달리 오히려 퇴화한다. 비록 상상이기는 하나 어떤 역사의 조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여성 병역 제도를 통해 여자를 억압하고 도구로 삼으며 비윤리적인 악습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풍경이었다.

미래의 한국은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출산을 여자들에게 강요한다. 그 배경에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심화가 있었다. 이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고령화, 저출산, 문화지체 등 사회적 개념 및 현상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사회 교과서에 실린다면 어떨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자체는 요약해보면 몇 가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세실의 눈으로 본 참상이며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한국의 미래상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경고하고 있다. 여자들의 여성권 신장과 사회 진출로 인해 코너로 몰린 남자들과, 국민의 눈을 가리려고 애쓰는 정치인들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해. 그 무서운 메시지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이 강한 어조나 비판적 어조가 읽는 이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다. 또 여성 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자연히 작품은 현실고발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런 성격의 글은 어쩔 수 없이 편향된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게 만든다. 객관적인 시선을 잃고, 주인공인 여자의 입장에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초반에는 당혹스러움, 중반에는 분노, 후반에는 영웅심리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이 점이 과연 이 작품의 진짜 메시지를 전하는 데 효과적이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같은 맥락으로 이 작품에서 말하는 노령층과 남자들, 기득권층이 여성 병영 제도에 대해 동조하기만 했는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컸다. 중단편이 아니라 연재작이었던 만큼 밀도가 높고,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남성을 무조건적인 악역으로만 다루지 않았으면 훨씬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작품 설정 상 자칫 잘못하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남녀, 정의와 불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가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한 흑백논리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면 훨씬 더 거부감이 줄었으리라 생각한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현실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엘리트 출신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세실의 어머니는 교수였고, 세실 또한 똑똑하며 일찍이 인권단체에 들어가 인턴을 할 만큼의 인재다. 재경 또한 소위 명문대 출신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제대로 입을 열어 현실을 규탄하고 비판할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중간에 ‘전태일’을 언급하고 있는데,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가 없어서 아쉬워했다는 대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 스스로가 고학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현실을 깨우친 인물이다. 그가 입을 열어도 알아주지 않는 건 그의 사회적 신분 탓이 아닌 사회의 편견 탓이다. 또 전태일 이야기 때문에 마치 엘리트 계급의 사람들이 선구자적 역할을 맡을 만하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들에게 그런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인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남녀가 평등하다면 초졸과 박사도 평등할 것이다. 그래서 주요 인물들의 엘리트적인 면모보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더욱 부각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감겨진 눈 아래>라는 제목의 의미는 한국 정부가 감긴 국민들의 눈, 그 아래에 숨어 있는 잔혹한 진실일 것이다. 우리는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 이데올로기 등 비이성적인 환경 탓에 눈이 감겨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먼저 눈을 감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눈이 감겨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만이 눈꺼풀 아래의 어두운 그림자가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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