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그 사이에서…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촉감전(觸感展) (작가: 라퓨탄, 작품정보)
리뷰어: 아나르코, 17년 3월, 조회 54

예전에 자주 들었던 어떤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 하루 종일 흥얼거릴 때가 있다. 최근에는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해철이 형님의 「아주 가끔은」이라는 노래가 떠올라 계속 흥얼거렸다. 아주 가끔은 미쳐보는 것도 괜찮다고, 그렇게 조금씩 편견이나 교만, 한계를 뛰어넘으라고, 자신 안에 갇혀있지 말고, 이젠 문을 열고 세상을 보라고 노래한다. 이번에는 하루 종일이 아니라 며칠을 계속에서 흥얼거렸다. 흥얼거리던 며칠 중의 어느 하루에 <촉감전>을 만나게 되었다.

 

‘편집부 추천작’이라는 사실에 무작정 읽었다. 너무 무작정 읽어 내려갔기 때문일까,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가 호러라는데 뭐가 무서운지도 모르겠고, 작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처음 읽었을 땐 분명 그리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이런 생각은 그저 눈으로만 읽어 내려갔던 나의 무신경과 피곤함이 빚어낸 형편없는 결론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다시 읽었을 때, <촉감전>은 처음에 내가 읽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게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계속 흥얼거리던 「아주 가끔은」이 던져주는 메시지와 같은 선상에 이 소설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가끔은」에서는 제목 그대로 아주 가끔이라도 미쳐보고 그렇게 조금씩 자신만의 세상을 깨고 나오라고 한다. <촉감전>도 역시 자신만의 세상을 깨고 나오라고 이야기하지만, 가끔씩 조금씩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그래야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그런 강요 같은 조언이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 서늘한 어둠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왕성한 비평과 특유의 독설로 한국 조각예술계를 좌지우지했던’ 강지돈이 사라진 건 10년 전이었다. 도주했다, 살해당했다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 어느 곳에서도 그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동호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동호는 지돈이 불러준 주소로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놀라운 모습의 지돈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행동들에 놀라움을 넘어선 어떤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흔히 말한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그리고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도. <촉감전>에서 그 흔한 이야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만의 믿음과 자신감으로 독설을 내뱉던 강지돈은 촉감전을 계기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그만의 확고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기에 그는 예술가의 광기를 더해 자신의 눈을 스스로 파헤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지돈은 과거의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동호를 발견하게 되고, 마주하게 된다. 그러고는 그에게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지돈의 입장에서는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오히려 예술적으로 더 흥분되고 감격스러운- 이 장면들이 동호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공포로 다가온다. 누군가가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세상에서 벗어나라며 자꾸만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하는데, 그렇게 자신의 세상을 파괴하라고 하는데 누가 무섭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주한 낯선 세계에 대한 공포는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동호의 행동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빛만을 찾는 동호의 모습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그 빛이 비추는 것이 결코 길 일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도 여전히 빛을 찾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보통의 우리를 보는 것만 같아 슬프고 또 무섭게 다가오기도 한다.

 

<촉감전>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양지와 음지, 좋음과 나쁨과 같은 의미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사용되는 빛과 어둠이라는 극명한 대조를 통해서 보다 선명하게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또한 호러라는 장르적 특성까지 살려내 전체적으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 멋지게 느껴진다. 특히나 보통의 우리를 잘 표현하는 마지막 문단은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으로 생각되니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같다.

 

우리는 매순간에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그 빛이 비추는 곳만을 다닐 것인가, 아니면 두렵지만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을 향해서 한걸음이라도 내딛어 볼 것인가라는 어려운 선택 앞에 놓여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생각해보고 내일의 나를 생각해보면 그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은 스스로 하는 것이니 뭐… 확실한 건, 적어도 앞으로 며칠은 다시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댄 자신 안에 갇혀 있어. 이젠 문을 열고 세상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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