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둔 부모로서, 또는 저 역시 아이로 자라오면서 가정을 벗어나 학교라는 공간속에서 세상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하면서,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학교라는 공간과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막 부모의 울타리에서 겁을 먹고 혼자 학교를 가기 시작할 무렵,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교문을 들어서다 다시 엄마에게 쪼르르와선 울먹이던 하루를 제외하곤 학교는 늘 나와 가족을 제외한 나의 모든 것이 되었던 곳이죠, 교육과 학습에 있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있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우리가, 우리의 아이가 스스로를 돌보고 스스로의 삶과 인생과 생각과 사상과 고민을 깨우치는 곳과 시간인 학교와 학생이라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 믿고 내버려두곤 합니다.. 학교를 믿고, 학생을 믿고 내 아이를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우열이 갈리고 상하가 존재하고 강요와 획일성과 규칙과 틀을 강조하는 곳에서는 문제가 생깁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많은 아이들이 각자의 삶에서 사회와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문제는 커집니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공간이 아닌 경쟁과 다툼과 외면이 공존하는 곳이 되는 것이죠, 항상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아이들이 존재합니다.. 늘 우선시되고 중심이 되는 아이도 있죠,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관심과 자신에 대한 관심과 최선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감싸주는 선생이라는 존재 역시 늘 이러한 딜레마와 싸우며 고민하고 살아갑니다.. 학교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디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서 상담을 하면 항상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아이의 입장과 개인적 문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과 학교의 교칙이 있으니 아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합디다.. 실제로도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구요, 그게 우리 학교의 현실입죠,
과거보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달라진 것은 맞습니다.. 자기라는 존재가 없었던 시절의 학창시절을 보낸 저같은 중년의 입장에서는 현실의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대단히 자유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숙이 다가가보면 한반에 60명이 있던 시절의 학교나 지금의 30명 남짓도 채 되지 않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의 단면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학교 폭력이라는 아주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여전히 학교나 대중의 사회적 시선은 아이들의 문제, 가해자와 피해자에 준하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축소하곤 합니다.. 빌어먹을 일이죠, 그리고 그렇게 감춰진 학교의 삶은 되풀이됩니다.. 아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과 개인적인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담보로 수많은 고통과 인내와 멸시와 소외와 배척을 당하며 어쩔 수 없으니 하루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만 이끌어내죠, 이게 과연 조금 심적 연약함과 왕따로서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던 아이들이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끝내는 이야기로 쉽게 넘어가버릴 일일까요, 누가 되었든 가해자로 불리우는 존재들, 학교, 선생, 가해학생, 가해학생 부모, 그리고 사회의 대중적 시선들은 단순히 그 나이때에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는데 피해자 아이가 너무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고집 피우고 소통하지 못해서 벌어진 아픔이라고 합리화하면 되는 것일까요, 느무 흥분했군요, 여튼 학교 폭력은 인간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그 인생의 끈을 잘라버리는 대단히 무서운 범죄행위라는 점을 제발 좀 알아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쓸데없는 주절거림이 길었습니다.. 줄거리에 앞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만든 이 단편의 매력은 엄청납니다.. 아주 멋진 작품이고 흥미로운 학교 폭력의 이면을 다룬 좋은 소설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제목인 ‘사형 집행일’이라는 조금은 과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시작에서부터 작가가 직선적으로 드러낸 학교폭력으로 인한 문제와 그로 인해 복수라는 관점에서 한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정황들이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동하라는 아이는 소설속의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친구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동하는 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였죠, 그럼에도 동하는 항상 무엇인가 즐거움을 찾는 선한 아이입니다.. 교내 버려진 콘테이너의 고양이를 보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그리고 동하는 미술적 재능으로 인해 항상 미술대회에서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였죠, 그리고 오늘 내가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동하의 1주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형을 집행할 대상은 총 3명입니다.. 이들은 동하를 죽음으로 이끈 장본인들이죠, 작년 동하가 괴롭힘을 당하며 그린 그림 한 장으로 인해 학교는 발칵 뒤집히고 이로 인해 동하는 자살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는 나는 오늘 동하를 죽게 만든 이들에게 사형을 직접 집행하려합니다……..
소설은 나라는 인물의 심리와 생각과 시선으로 쉼없이 달려갑니다.. 동하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라는 인물이 동하의 죽음으로 인해 그 내막과 속사정과 주변의 상황에 대한 답을 내리고 동하를 죽음으로 내친 이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죠, 이것은 ‘나‘라는 인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임무이자 동하에 대한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무엇보다 이렇게 해야지만 앞으로의 ’나‘의 삶 역시 동하를 벗어나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동하의 죽음 이후 내가 감당했던 심리적 갈등과 불안과 분노와 고통을 제거해야지만 동하에게 제대로 된 편안한 죽음의 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동하의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을 투영한 ’나‘의 삶의 이유입죠, 소설속 ’나‘는 복수를 함에 있어서도 꼼꼼하게 알리바이를 만들어냅니다.. 동하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고자하지만 나를 세상에 드러내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틀에서 벗어난 우월한 존재가 자기도 모르는 새 되어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의도는 작가가 의도하였든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였든 상관없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딜레마의 축으로 전달됩니다.. 아주 좋은 고민거리죠, 그리고 이러한 ’나‘의 생각들은 상황속으로 나를 대입하기 시작하면서 여실히 무너져내리죠, 작가가 선택한 방법론이 저로서는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단순하게 결과론적으로 드러난 세상에서 보여진 진실이 각각의 삶과 그 이면과 고통속에서는 어느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결국 언제나 세상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고 익히고 깨우친 삶은 어느덧 어른이 됩니다.. 제대로된 교육은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이들이 제대로 삶을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죠, 세상은 조금씩 그렇게 바뀌어나가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많은 어려움과 아픔과 고통이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어른인 지금의 우리부터 조금씩 아이의 삶과 그 내면의 혼돈을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그들의 중심에서 아이들 하나하나의 삶과 그 생각을 나와 너가 다름을, 내가 너일 수 있음을, 모든 것이 우열과 상하와 비교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음을 공감해준다면 세상은, 아이들은 버려진 콘테이너의 고양이들이 무섭고 지저분하고 사라져버려야될 거부적 존재가 아닌 부대끼며 함께 공존하고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비벼대는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달리 보일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그리고 항상 비교당하며 살아오며 무시당했던 학창시절을 살아온 아이로서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과 공감적 매력은 매우 좋았습니다.. 짧은 단편이지만 많은 생각과 고민거리를 만들어준 작품이기에 작가님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드리며 좋은 작품 앞으로도 많이 선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팟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