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유리종이, 단단한 로맨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유리종이 (작가: 강엄고아, 작품정보)
리뷰어: 비연, 19년 9월, 조회 78

강엄고아, 유리종이

 

작가가 생각한 모든 소재가 글로 만들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나 역시도 내가 읽은 모든 글의 리뷰를 작성할 수는 없다. 시간적 여유와 체력 등을 따져가며 어떤 글에 대해 어떤 식의 리뷰를 작성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말인데, <유리종이>의 리뷰를 적겠노라 결정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 글의 리뷰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다. 최소한 나의 기준에서는 이 탄탄한 이야기가 왜 주목받고 있지 않은지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요소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선 연재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오타가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크게 틀린 부분은 없는 데다가(틀린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찾아보면 은근히 많다. 그러나 최소한 비전문가인 내 눈에마저 아주 어색할 정도로 틀린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몇 없었다.), 결정적으로 상당히 구조가 잘 갖추어져 있는 흥미로운 로맨스임에도 리뷰가 전혀 없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그 흔한 단문 응원조차 하나도 없다. 연재 속도가 놀라워 기존 연재작을 브릿G에 올리시는 것인가 싶어 찾아보았더니 다른 플랫폼과 동시 연재를 하고 계실 뿐 기성작가도 아니셨다. 아주 만약에라도 리뷰를 작성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셨었는지까지 고민할 정도였다. 혹여 이 글이 리뷰와 단문 응원을 하나도 받을 수 없었던 명백한 이유가 있었는데 저만 몰랐다면 꼭 말씀해주시길. 쓰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연재 속도였다. 월화수목금토 연재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매일 새 회차가 올라오니 내가 이미 리뷰에 적은 내용과 최신 회차의 내용이 서로의 영역을 벗어나지는 않는지 계속해서 확인해야 했던 것뿐이다.

 

2월의 하늘은 너무나 어두웠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날이었다.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두고 서정은 학교에서 가까운 번화가를 헤매고 있었다. 아직 6시도 안됐는데 벌써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바람은 또 왜 그렇게 부는지……. 머리카락이 갈 곳을 잃고 눈앞을 가렸다가 위로 휙 도망갔다가 참 요란하게도 얼굴을 때려댔다. 가끔씩 앞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서정은 콧구멍 속으로 휘몰아쳐서 들어온 찬 기운에 놀라 잠깐씩 뒤로 돌아야 했다. 목도리로 코와 입을 감싸고 벙어리장감을 낀 손으로 꼭 눌렀다. 몸도 춥고 마음도 춥고, 하늘도 어둡고 마음도 어두웠다. 이대로 바람에 휘익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서정을 떠밀어 올려 뱅글뱅글 돌려서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던져줬으면 싶었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는 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빨간 구두를 신고 노란 벽돌 길을 따라가다가 강철 오빠를 찾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단과 문장에서도 정리가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단정한 문장으로 묘사하는 세세한 표현이나 상황들은 독자가 노력해서 상상하지 않아도 장면을 눈 앞에 펼쳐지도록 만들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인용한 문단뿐만 아니라 전체 분량에서 이런 섬세한 묘사는 몇 번이나 등장했는데, 때마다 잘 정돈된 문장으로 사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를 쌓아가면서 독자가 편안하게 글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 인물들과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글에서 거친 문장이 주는 날카로운 쾌감을 느낄 수는 물론 없으나 때로 좋은 문장들로 단단하게 구성된 문단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얻을 때가 있다. <유리종이>를 읽으면서 그런 안정감을 참 자주, 많이 느꼈었다. 그것이 가지는 능력이나 효과를 따지기에는 나의 배움이 너무 짧으나 적어도 취향이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상황과 사물에 대해서는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소설이면서 정작 등장하는 인물들의 외형에 관해서는 그렇게까지 부분부분 뜯어가며 설명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잘생겼다거나 귀엽다거나 하는 등의 묘사가 인물의 생김새와 외형을 추측할 수 있는 전부이니 작가의 의도이든 아니든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서정은 일을 집에서 하는 것일 뿐 일이 없는 게 아니었는데도, 한참 바빠서 잠 잘 시간을 아껴가며 일하다가도 엄마 대신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돌렸는데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 서윤은 집에 있는 사람이 청소도 안 하고 뭐 했냐며, 설거지는 또 왜 이렇게 쌓였냐며 구시렁거리기 일쑤였다. 엄마가 가득 찬 20리터짜리 종량봉투를 내다버리러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가 집에 있는 딸내미는 뭐하고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이런 거 하냐며 서정을 욕했다.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서정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백수 취급을 받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사무실에 있는 자료를 눈으로 볼 수가 없어서 힘들게 일해야 했다. (중략) 차를 타고 빌딩 숲으로 들어강ㅁㄴ 일을 하는 거라는 고정관념에 절어 있는 사람들에게 집에 있는 나도 노는 게 아니라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정신은 피폐해졌다.

 

이야기가 참 현실적이라는 말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물론 친오빠가 짝이라며 데려온 전학생 오빠가 교내의 누구나 한 번쯤은 짝사랑해보았다는 아주 잘생긴 오빠라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지만, 서민, 서정, 서윤 남매의 삶이나 강철, 강석 형제의 고민 같은 것들은 참 현실적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서정의 삶에 대해서는 상당히 긴 분량을 할애하여 구체화한 반면 강철의 고민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너무 순식간에 공개된 것 같다는 부분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놀이터에 나왔을 때 서민이 없어 강철이 뚱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나 매점 휴게소에서 서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하자마자 자리를 뜨던 모습 등을 보면서 강철이 서민을 좋아하는 것인 줄 알았다. 서정을 아리송하게 했던 것들은 한 번도 ‘저 오빠가 나를 좋아하나?’가 아니었음에도 갑작스럽게 사실은 이 슈퍼스타가 한 여자만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폭탄 발언과 같이 갑작스럽게 쏟아내었음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작품 소개에서 말했던 ‘누가 볼까 두려워 여러 겹으로 감싸고 포장’한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강철의 유리종이가 까발려지듯 공개된 것이다. 차라리 서정이 아니라 서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더라면 이 뜬금없음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강현이 형님은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요? 사람들은 이강현 술 거의 안 마시는 걸로 아는데, 내가 말술이라고 다 폭로해 버려야겠다.”

실은, 너라면 아깝지 않다며 병을 탈탈 털어 강철의 잔을 채워준 게 찬교였다. 그랬으면서 택규에게 한 잔 맛보게 해주겠다고 말한 게 마음에 걸려 모든 죄를 강철에게 덮어씌운 것이었다. 강철은 술값하자는 심정으로 진실을 숨기며 첫 번째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택규의 원망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또한, 이강철과 이강현이 구분 없이 동시에 쓰인다는 것이 다소 어색했다. 특히 12화에서 두 가지가 마구잡이로 섞이는데 자꾸만 같은 문장을 다시 읽어야 할 정도로 빨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물이 예명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인간 이강철과 연예인 이강현을 구분하기 위한 기준으로 등장할 때가 많은데, 이 글에서는 인간 이강철 그리고 연예인 이강현의 차이나 그에서 오는 고뇌 등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았기에 차라리 예명을 없애는 것이 더 매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반부와 비교하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다소 진부하고 때로 올드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독자들이 서정과 강철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까워지는 과정에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서사를 할애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아쉬움에 앞서서 참 단단하고 알찬 로맨스를 만났다는 반가움이 먼저 들기에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계속해서 기대하며 기다리고 설레하며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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