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완벽하지 않으면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안 쓰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컴퓨터 본체가 고장나서 게임도 못 하게 된 김에 대강이라도 좋으니 리뷰를 써보고 싶어져서 써봅니다.
슬픈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살면서 한 번도 넘어져서 아파본 적이 없을 수 없는 것처럼요.
슬프면 감정이 격해져서 정말 울고 싶지 않은데도 절로 눈물이 솟아나서 참을수가 없게 됩니다.
목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나오고 정말 내 안에 이런 존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약한 내가 있었다는걸 알게 되죠.
그렇게 쏟아져 나올 감정들이 다 쏟아져 나오고 난 후엔 눈물이 그칩니다.
분명 문제들은 그대론데. 나를 슬프게 만든 것들은 달라진게 없는데 멋대로 감정이 정리돼서 허탈하고 멍해집니다.
그렇게 눈을 뜨고 얼굴을 씻어내면 마음이 낫는다는게 무엇인지 알게되죠.
하지만 이 세상에 아픔이 넘어져서 아픈것만 있는것이 아니지요.
슬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뜻입니다.
어떤 슬픔은 운다고 해서 낫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런 슬픔에 대해서 말합니다.
당신의 슬픔은 아무도 모른다.
소설은 화가의 편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삶은 공정하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이 문장은 반 고흐가 그림을 압류당하고 아내가 죽어가는 동안 치료도 못 해주는 불행한 처지일 때 쓴 편지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화가는 정말 우리의 삶은 공정하지 않았다며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는 철학자의 말을 실감한다며, 당신과 이별하기 위해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죽고 싶어하는 화가가 있었는데 왜 죽고 싶은지는 모릅니다. 다만 화가는 많이 괴로웠고 이제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조각가의 전시회에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얻자 죽을 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출품하게 됩니다. 조각가의 작품은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조각해놓은 것이었는데 화가는 보자마자 그것을 사랑하게 되고 공책에 모사합니다. 조각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버리는데 그 모습을 보자 화가는 자신의 인물화에 어울리는 모델을 발견하게 됩니다.
화가는 조각가에게 거부당했지만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그를 찾아가 그를 그려야만 죽을 수 있다고 자신의 상처를 고백합니다. 조각가는 몸이 깨진 조각처럼 망가져가는 병에 걸려 있었고 화가의 끈질긴 설득에 잠시 자신을 그리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조각가도 조각가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남에게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각가는 혼자서 망가져갔고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화가는 조각가를 위해 여러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괴롭힘을 주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조각가는 빠르게 망가집니다. 화가는 조각가를 도우려 하지만 조각가는 화가의 도움을 받아들이다가도 어느 날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버립니다.
화가는 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슬퍼하다가 동료 화가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가거나 어려운 책을 읽는 등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와중 조각가가 완전히 붕괴돼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화가는 슬퍼하면서도 동료와 슬픔을 나눕니다. 화가는 동료와 슬픔을 나누며 회복하고 좀 더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작품을 읽으며 느낀 것은 슬픈 사람은 낫기가 참 힘들다는 것입니다. 분명 몸이 아픈 사람들은 아파 죽겠다 여기가 아프니 병원에 가서 낫게 해달라 할텐데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하면 얘기를 나누건 약을 먹건 하지만 그게 낫기는 하는건지, 치료가 시작되긴 한건지 의심이 갈겁니다.
그렇다면 슬픈 사람이 나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병원에 가는 것으로 낫지 못하는 병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조각가의 슬픔을 보고서는 위로해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위로하기 위해 살고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위로는 조각가를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조각가가 낫고 싶어하는 부분이 분명히 보입니다.
어린 자신에게 폭군처럼 굴고 상처를 준 조부모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사랑하려고 한 것
반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자연을 사랑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잊어보려고 한 것
스스로 정신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조부모에게 솔직히 말한 것
상처가 커져 오른손이 완전히 떨어져나가자 화가에게 미안하지만 자신 곁에 좀 더 있어줄 수 있냐고 물어본 것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사랑해보려고 하고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도 하고 도움을 받아보려고도 했는데도 결국은 죽었습니다.
왤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슬픔에 빠진 사람이 슬픔에서 빠져나오려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슬픔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이 나의 세계를 망가뜨리고 어둡게 만듭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해서 결단력을 발휘해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이상한 생각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애초에 그런 우울에 빠질 리가 없습니다.
그런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현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거나 그런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주체적인 노력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해야합니다.
그러나 아프기 전의 생활에서 우울한 감정으로 떨어진 사람에게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라는 말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라는 말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슬픈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슬픈 적이 없다는 것처럼 슬픔을 깊은 곳에 감추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슬픈 것을 외면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룬다면 슬픔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마음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니까 나의 의지대로 이겨낼 수 있다. 지금 내가 어떤지 친구들이 아는 것 보단 내가 멀쩡하게 보이는 것이 더 낫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렇게 대처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렇게 낫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의 슬픔을 받아들여줄 수 있는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비록 원인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말하는 동안엔 속에만 쌓인 답답함이 해소되고 조금은 속이 풀릴겁니다.
내가 슬프다는 것을 알아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들에게 나의 고통을 풀어놓는 것. 그래서 모두가 내 슬픔을 알게되고 위로해주게 되는 것.
어떤 유투브 영상에서는 색칠한 동그라미 네모 세모에 기쁜 얼굴, 슬픈 얼굴, 악한 얼굴을 붙이고 움직임으로만 된 역할극을 보이면 영유아들도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기쁜 얼굴을 보면 웃고 슬픈 얼굴을 보면 슬퍼하고 악한 얼굴을 가진 도형이 다른 도형을 공격하면 혐오하는 등입니다.
우리는 기뻐하는 사람을 보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같이 슬퍼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슬픔을 좀처럼 털어놓지 못합니다.
슬퍼서 남들 앞에서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우는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지요.
왜 부끄러운 것일까요? 그건 내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에 봉착했고 그래서 감정이 폭발했다.
나는 약한 인간이다. 그래서 수치스럽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서 숨어버리고 싶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는 사람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세상과 격리된 채 혼자 웁니다.
아무도 당신이 운다는 것을 모릅니다.
끝없이 울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언젠가는 이불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당신은 얼마나 슬프든 간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불에서 나와서 얼굴을 씻게 됩니다.
그러면 또 하나를 깨닫습니다.
내가 슬퍼도 아무도 모르는구나..
하지만 슬프다는건 결국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은 언젠가 한번은 슬플 수 밖에 없다는걸 압니다.
그래서 슬픈 사람은 자신의 슬픈 감정을 솔직하게 어루만져주고 안아줘야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선 안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슬픔이라는건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나무나 돌처럼 무기물처럼 거칠게 다룬다는 것이고 마음처럼 상처받기 쉬운 것은 사포질할수록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참아내야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편안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