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중세 판타지가 특별한 요리가 되기 힘든 세상이에요.』
2.『인물이 곧 세상처럼 보이는 구성은 영리하며 매력적이죠.』
3.『‘죽음’이라는 언어가 단단하고 복잡한 울림이 될 때….』
4.『죽고 싶었어, 그럼에도 난….』
<본 리뷰는 “시나”님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작성한 리뷰이며, 리뷰가 작성되는 시점에서 38회까지 연재된 분량 중 작가님께서 1부라고 명시했던 31회까지의 분량을 감상한 후 작성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1.『중세 판타지가 특별한 요리가 되기 힘든 세상이에요.』
흔히 기계문명에 도달하지 않은 때에 신분과 종교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던 어느 중세 유럽을 모티브로 마법과 신화 같은 초현실적인 요소가 결합된 세상을 창조하는 장르를 ‘중세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정의하자면, 이 장르야말로 판타지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으면서도 익숙한 세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혹자는 이 장르가 보여주는 익숙함을 오히려 현 시기에 이르러 이미지가 지나치게 소모되고 있는 장르의 특성으로 지적하곤 합니다.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짐승들과 칼을 비롯한 날붙이와 초현실적인 무기를 창조해 싸우는 그 세상의 이미지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지나치게 반복되어 신선함을 주기 이전에 근본적인 장르의 토대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21세기 현대라면 충분히 설명되고 납득될 만한 요소들마저 이 장르 내에서는 중세라는 시기에 맞춰 다소 원시적인 방식으로 장치하며 이질감을 주는 요소 또한 눈에 띄곤 합니다. 역설적으로 그런 원시적이라고 부를 법한 시대의 제약들이 해당 장르를 바탕으로 세상과 인물을 창조하기 위한 뼈대로 제시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 장르에서 보여주는 어느 세상은 구체화되는 것을 넘어 전달하는 과정까지 난항을 겪기 마련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줘야만 하는 것의 혼동을 넘어, 어쩌면 보여주지 말아야할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이 환상 속의 세계는 작품 하나의 서사를 전달해야한다는 궁극적인 목표 아래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고 싶었어,>는 이런 중세 판타지를 표방하면서도 그 소모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과 동시에, 인물과 세상을 창조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제법 흥미로운 인상을 주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국’이라는 건조한 이름으로 명명되는 중세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수현’이라는 주인공의 행적을 바탕으로, 저주로 인해 죽음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서아’라는 인물과 함께 저주의 근원으로 추정되는 어느 마법사의 뒤를 쫓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목격되는 제국의 피비린내 나는 만행과 강압적인 통제, 그리고 그 줄기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인물들의 그늘 같은 사정이 독자들을 몰입시키며, 때로는 그 어두운 사연 속에 담겨 있는 무력하거나 잔혹한 인간들의 모습에 숨을 삼키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만 인물과 사정을 곱씹다보면 그것들이 결국 서사로 연결되지 않고 바탕으로만 남아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그런 인상들에서 수현과 같은 매력적인 인물조차 그 기능적인 면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하는 등 해당 장르가 아직 설익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명암들이 두루 발견된다는 인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감평문에서는 <죽고 싶었어,>가 이 장르를 바탕으로 인물과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한 번 살펴보고, 그로 인해 놓쳤을지도 모르는 사소한 지점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지적들이 작품의 결점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히려 그런 지점들을 채워갈 수 있다면 이 작품이 장르 내외적으로도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2.『인물이 곧 세상처럼 보이는 구성은 영리하며 매력적이죠.』
앞선 목차에서 중세 판타지라고 불리는 장르가 구체화해야하는 세상과 그 세상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난항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 것을 기억합니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을 활자로 전달한다는 것은 택배에 주소를 붙여 보내는 것과 다른 명확한 과정을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것이 마법이 실존하고 신분으로 구분되는 어떤 봉건사회의 이미지일수록 단계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됩니다.
굳이 이 지점을 언급하는 것은 <죽고 싶었어,>가 보여주는 배경과 정보의 전달 방식은 상당히 안정적이기 때문이며, 때로는 그 방식이 영리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이 장르 내에서는 노련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법’이라는 비현실성에 치우치지 않고 필요한 정보들을 쌓아가며 포문을 여는 듯한 시작은 이 작품에 입문하는 독자들을 확실히 끌어당기는 듯한 힘을 보여줍니다. 그 주체는 바로 주인공 ‘수현’입니다.
작품 내에서 ‘수현’은 주인공의 역할에 있어서 대사 자체는 물리적으로 많은 편이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면 불필요한 상황에서 입을 닫고 필요한 대사만 목소리로 들려주는 오히려 과묵한 인물상에 속합니다. 전달할 정보가 많은 이야기일수록 인물들 간의 대화에서 발견되는 생활적인 면들이 강조되기 마련이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수현’이라는 인물 그 자체를 강조하는 듯한 시도를 보여줍니다.
(1-P51). “… 지금은 저주 해제 말고 다른 의뢰는 안 받습니다.”
(1-P84). 그는 그 ‘낙인’을 알고 있었다.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여동생을 잃은 순간부터, 5년 동안 미친 듯이 찾아 헤맸던 흔적이었기에.
(1-P99) “당신을 이용해서 저는 헤르만을 쫓을 겁니다.”
(1-P102) 저주 해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중간생략)… 저주를 건 사람을 죽이는 것.
관습적으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그 첫인상이 관계의 기초가 된다는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1회 도입부에서 발췌된 이 문장들이야말로 이 작품과 만나는 독자들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첫인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수현’의 트라우마를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 몽상에 가까운 첫 장면은 그 특유의 모호함으로 인해 이해가 어려움에도, ‘서아’라는 인물과 처음 만나서 나누는 몇 가지 대화에서 우리는 많은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첫인상으로 독자들이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소설의 배경은 ‘저주’와 ‘마법’이라는 초자연적인 개념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 주인공 ‘수현’은 ‘저주’라는 분야에 대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 ‘수현’은 ‘헤르만’이라는 마법사에게 여동생을 잃은 전적이 있다.
– 소설의 목표는 ‘서아’와 여동생에게 저주를 걸었던 ‘헤르만’이라는 마법사를 찾아 복수하는 것이다.
인물, 서사, 목표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이 시작은 마치 배에 돛을 달고 뭍을 떠나기 시작하는 기분으로 다가옵니다. 흔히 이 장르에서 공을 들여 만든 배경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정보가 서사보다 앞서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오로지 ‘수현’이라는 인물의 시점에 독자들을 맞추는 영리한 선택으로 이를 제한합니다. 물론 서사적으로 완벽한 시작이라고 하자니 개연성적인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특히 ‘수현’이 ‘서아’의 방문으로 인해 복수의 대상을 찾으러 나선다는 전개야 무척 왕도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대상을 찾겠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동행을 강요하는 모습은 행동의 인과성이나 동기적인 측면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편입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대상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충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직접 저주를 풀기 위해 ‘수현’을 찾아올 정도로 전문가로 인식되던 인물의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표면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기분입니다. 그런 인물에게 선뜻 동행을 허락하는 ‘서아’의 모습 또한 수동적인 것을 넘어서 순종적이라는 느낌마저 드는 등 ‘수현’의 행동은 인물 간의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일 저주로 희생되었던 여동생의 이야기를 대사로 꺼내며 ‘서아’에게 그 여동생을 겹쳐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면 인물적인 동기 면에서 나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3-P15). “그 기사의 저주를 풀어주게. 그렇게 된다면, 자네가 찾는 마법사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만큼 머물게 해주지.”
결국 도입부에서 이 작품과 동행하기로 결심한 독자 입장에서 ‘수현’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저주라는 개념을 다루는 ‘전문가’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작품은 초반에 ‘저주’에 대한 단서를 얻으러 갔다가 ‘저주’에 걸린 과거 동료의 문제를 풀어줘야 하는 등 ‘수현’이라는 인물이 이 분야에서 지식과 기술 양면으로 능력을 강조할 수 있는 사건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의사가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맡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의사가 수많은 분야에서도 자신의 특기가 되는 분야가 있듯이, ‘수현’은 ‘저주’라는 분야에 대해서 그 전문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4-P86). 증상: 환상– 뱀, 피, 인간. 환청– 인간 목소리. …(중간생략)… 특이사항: 통증 없음, 그러나 발생하는 증상 수위가 높은 것으로 파악됨. 저주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닌 자신의 상식선에서 구조를 틀어 저주를 만든 것으로 사료됨. …(중간생략)… “저주를 건 본인이 마법사거나, 아니면 마법사를 끼고 있거나.”
그런 의미에서 ‘수현’은 나름 ‘전문성’을 독자에게 뽐내는 느낌을 줍니다. 저주에 걸린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견해를 메모하며 그 주체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여느 ‘탐정’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전문성을 뽐내는 ‘느낌을 준다’라며 거리를 두고 언급한 이유는 그 전문적인 지식이 오로지 ‘수현’ 본인에게 집중된 목소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저주’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는 방식에서 기인하는데, ‘저주’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자세하게 설명하면서도 그 ‘저주’를 직접적으로 다룬다고 정의할 정도로 인물과 엮인 사건이 없는 편입니다. 가령 앞서 ‘수현’을 의사와 탐정에 비유했던 것을 상기시키자면, 해당 직종은 관련 장르에서 흔적을 찾고 당사자를 직접 마주하며 관련 피해와 증상을 탐구하기 마련이며 그에 따른 전문적인 대처를 보여주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작품은 그런 시도가 약한 편입니다. 가령 죽음을 겪지 못 하게 되었다는 ‘서아’에 대해서도 그 증상을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훨씬 후에 일이 되며, 로데릭의 증상 또한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추측으로 생략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학을 다룬 작품에서 의사가 환자를 살피지 않고 차트만 확인한 채 증상을 정의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분야에서 ‘수현’이라는 인물만이 제안할 수 있는 대처가 필요하지만, 그 해결책이 ‘저주를 건 주체를 제거한다.’는 결론으로만 제시되니 이런 전문성 자체가 다소 희석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기대한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무색하게, ‘수현’의 행적은 본인의 지식보다 관계자들과 관련 지역을 찾아가 단서를 구하는 듯한 전개로 진행되기에 주인공의 역할 면에서 다소 고민되는 지점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11-P32). 전쟁이 끝난 직후, 외곽의 도시들이 제국에게 어떤 취급을 받는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과도한 세금, 약탈, 그리고 억압. 오만했던 마법사들의 도시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11-P117). “… 도시를 부수고, 모든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겁니다.” …(중간생략)…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 해봤으니까요.”
(12-P1). 군 상부 내에서는 이런 행위를 ‘대청소’라고 불렀다. 명령한 무언가, 혹은 구역을 소각해 정황이나 현장 기록들을 말소하고 …(이하생략)
(19-P61). “제국이 한 짓이라고 자랑스레 전시를 해놓으셨더군요. 흔적도, 전흔도 전혀 남기지 않은 소각을.”
어쩌면 작품은 ‘수현’이라는 주인공의 역할에 대해서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앞서 얘기했던 장르적 세계를 ‘수현’이라는 인물로 대표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도 ‘저주’와 같은 이야기를 잠시 배제하고 나면, ‘수현’에게서 보이는 것들은 이 제국의 권력에 대한 이기심과 그로 인한 만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수현’이 몸담았던 이 세상은 약자와 능력자들에게 불친절하며 또한 잔혹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마법’이라는 능력을 경계하며 한 도시를 제거했고, 이와 같은 일을 ‘수현’이 직접 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수현’에게 적지 않은 트라우마이며, 이런 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냉소적으로 다듬어야만 했던 계기로도 작용합니다. 한마디로 ‘수현’은 현재 이 배경을 함축시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거대한 매개체인 셈입니다.
(19-P89). “… 해동인의 발음은 영 어색해서 말이지. 내가 실례했군.”
(24-P36). “해동 놈이 여전히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문득 눈에 띄는 것은 이 ‘해동인’이라는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차별적인 언행이었습니다.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인물들이 중세풍의 서양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주연인 ‘수현’과 ‘서아’는 무척 현대적인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을 읽다보면 이것이 동양을 모티브로 한 ‘해동’이라는 지역의 특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 제국에서는 이런 ‘해동’ 출신의 인물들에 대한 내외적인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또한 서사적인 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수현’의 출신과 배경이 사건에 끼치는 영향은 무척 미미하다는 뜻이죠. 그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주변 인물과 주연 인물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그 연유에 대해서 쉽사리 파악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은 이 ‘제국’이라는 배경에 대한 디테일과 그 안에서 활약했던 ‘수현’이라는 인물에 담긴 소외된 위치를 인지시켜주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이런 배경 덕에 다소 애증 관계로 엮여 있는 ‘엘리사’와 같은 인물이 부각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수현’이라는 인물은 이 작품의 배경과 현실을 그대로 축약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당장 이 인물과 적대하거나 불편한 사정으로 엮여 있는 요소들을 한 번 살펴보면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습니다.
- ‘헤르만’이라는 위험한 마법사와 그에 얽힌 오래된 실험들
- 제국의 위협이 되는 마을을 직접 제거했던 과거
- 해동 출신이라는 차별적 시선
- 마법사였던 신분
- 제국 내에서 최상위층의 신분을 갖고 있는 애인
이처럼 간략하게 정리해본 요소만 살펴봐도 이 ‘제국’의 면모가 이 ‘수현’이라는 인물을 향하도록 고스란히 배치되어 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이 작품 내에서 창조된 세상을 거의 대변한다는 느낌마저 들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방식은 목차의 소제목처럼 영리하고 또 매력적입니다. 배경설정 면에서 복잡해지고 장황해지는 여느 장르들 속에서도 주인공이 곧 이 배경을 대변할 수 있도록 만든 구성은 이 환상에 가까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 입장에서는 제법 만족스러운 지름길을 선사합니다.
여기서 독자들은 ‘수현’이라는 인물이 대변하는 세상을 떠나, ‘수현’이라는 인물 개인을 궁리하는 때가 찾아옵니다. 개인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무언가일지도 모릅니다. 가령 이 인물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혹은 현재 이 인물이 바라는 것과 피하고 싶은 것의 순위 따위가 그 개인을 구성하는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틀에서 바라보자면 ‘수현’은 주인공으로서 독자의 시선을 대신하는 존재치고는 상당히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인물에게 엮여 있는 수많은 배경들의 집합에서 비롯됩니다. 그에게 얽혀 있는 ‘여동생의 복수’와 ‘제국에 대한 혐오심’을 잠시 벗겨내고 나면 그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데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새로운 목적지가 제시되지만, 그가 무언가를 이뤄낸다는 느낌은 적은 편입니다. 이런 구성은 그가 제국이라는 거대한 배경에 휘둘리는 피해자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내면에서 강조하고 있는 어두운 복수심만을 부각하며 인물 개인에 대한 인상을 지우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인물을 목적에 충실하다고 호평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인물의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카메라처럼 느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독자는 ‘제국’의 실체를 파악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수현’이라는 인물에게서 멀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저주술사’라는 정체성 또한 그의 마법사로 활약했던 과거에 밀려 설정만으로 남아 있으며, 물리적인 대사와 행동이야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물에 대한 몰입보다는 이 불합리하고 답답한 세상 그 자체 혹은 그에 휘둘리고 있는 어느 청년에 대한 모호한 감상에 가깝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변 인물들이 ‘수현’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방식도 필요하지만, 동행자인 ‘서아’는 지나치게 순종적인 인물상으로 그녀에게 얽혀 있는 혈마법이나 저주와 같은 배경설정들만이 눈에 띄는 편이며, 그 외에는 이들이 나아가야할 또 다른 목적으로서의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저 같은 독자에게는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세상과, 이 세상을 전달하는 방식은 흡족하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수현’이라는 인물 자체의 추락한 과거들을 살펴보는 것은 여러 감상을 전해주며, 그런 인물이 곧 이 ‘중세 판타지’라는 세상 자체를 대입하게 만드는 듯한 시도도 인상적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을 관찰하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이 작품이 ‘어두운 중세판타지’ 그 이상으로 다가가지 못 할 만큼 무취한 기색이 풍기며, 한편으로는 너무 내면적으로 함몰되어 인물에 공감하기 힘들다는 점만 작은 아쉬움으로 구겨둘까 합니다.
3.『‘죽음’이라는 언어가 단단하고 복잡한 울림이 될 때….』
다시 떠올려보면, 작품의 본제가 <죽고 싶었어,>라는 것은 이 소설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죽음’ 그 자체라는 것을 명시하는 듯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작품 내에서 ‘죽음’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죽음’은 경험하지 못 한 세상입니다. 그 자체를 경험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돌아오지 못 한다는 것을 가정하며, 그것을 가상으로 꾸미지 않는 이상 작품들은 죽음 그 자체 보다는 죽음에서 파생되는 개념들을 다루기 마련입니다. 죽기 직전의 삶, 죽음 이후의 흔적, 죽음을 피하기 위한 방식, 혹은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식 등 이 모든 것들이 ‘죽음’을 작품 내로 정의하기 위한 시도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고 싶었어,>라는 제목에서 선언되는 주제란 한마디의 대사로 옮기자면 “죽고 싶었어.” 즉, ‘죽음을 경험하고 싶은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로 정의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아’는 이 제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수현’을 찾아와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제 처지를 설명하며 저주를 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대사는 그녀가 ‘죽음’을 정의하는 태도의 단면입니다.
(1-P74). “저주를 풀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죽고 싶은 겁니까.” “… 같은 말 아닌가요?”
그녀에게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제 처지야말로 ‘저주’라고 규정합니다. 이에 대해 ‘수현’은 자신의 복수의 대상과 저주를 건 대상이 동일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저주를 풀겠다는 명목 하에 그 주체를 쫓기 시작합니다. ‘서아’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저주를 건 상대를 죽이는 것뿐입니다. 즉, 죽음을 풀 수 있는 열쇠는 그 주체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9-P95). “저주의 발동 시점에 기록되는 ‘존재 정보’를 기준으로, 대상 전체를 다시 구성합니다.” …(중간생략)… “그러니까, 사망 직후, 파괴된 신체는 복구되는 게 아니라 ‘교체’됩니다.”
(9-P102). “저주는 신체 손상을 조건으로 발동하는 게 아닙니다. ‘사망 판정’을 트리거로 삼습니다.” …(중간생략)… “생물학적 죽음이 기준입니다. 심정지, 뇌 기능 소실. 즉, 신체가 아니라 생명 상태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9-P112) “보통 불사의 존재라고 불리는 자들은, ‘재생’을 기반으로 합니다.” …(중간생략)…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의 ‘불사’자체를 해제한 적은 없습니다.”
그 죽음을 회피하는 저주에 관한 내용은 흥미가 동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이 ‘죽음을 회피하는 저주’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 소재이자, 같은 장르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장르적 재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저주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다소 시점이 늦은 감이 있으며, 그 또한 독자의 눈을 대변하고 있는 ‘수현’이 보고 들은 경험보다는 통제된 공간에서 전해듣는 보고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작품이 직접 장르적 재미를 거세하며 그 저주를 건조한 개념 상태로 남겨놓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독자는 이 개념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에 치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서아’는 죽음 자체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죽음을 매개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서아’에게 죽음은 거세된 무언가가 아닌, 오히려 경험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라는 뜻입니다.
쥐 한 마리가 녹슨 덫에 걸려 피를 흘리며 발버둥 치며, 뼈가 부러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생명이 보인다.
“죽어가네요.”
서아가 조용하고 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서아의 표정에는 어떤 혐오감도, 연민도 담겨있지 않았다.
(11화. 시르마로 中)
“지금 이건 물이라기 보단 약품에 가깝습니다. 배탈이 나거나, 심하면 중독으로 죽어요.”
“전 안죽는데요.”
“죽든 안 죽든, 마시지 말라고요.”
“알았어요, 안 마실게요. 수현씨가 싫어하니까.”
(14화. 수도에서 생긴 일 中)
그렇다면 발췌된 장면들 또한 의미가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서아’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죽음을 경험한 채 돌아온 산증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녀 본인은 그것을 ‘죽음’으로 인식하지 못 합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무게감을 깨닫고 있는 ‘수현’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10-P34). “제 앞에서 죽을 생각하지 말라던 거, 기억은 납니까?” …(중간생략)… “이건 당신이 괜찮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현’의 이 대사는 마치 그 자신이 죽음을 목격하는 것이 꺼림칙하다는 질책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죽음 그 자체는 개인의 경험으로 매듭지을 수 없는 불편한 개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듯합니다. 말 그대로, 그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과 무게감을 알고 있습니다. 생명은 소중하다며 관습적으로 나오는 어느 교훈처럼 ‘죽음’ 또한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지점입니다. 그 죽음에 대한 강박은 일찍이 제국의 앞잡이로서 생명들을 학살했던, 더 나아가 여동생의 죽음을 경험해봤던 그였기에 나올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18-P87). “제 동생이 죽었습니다.” …(중간생략)… “제가 조사하던 자료들을 모두 파기시키라고 직접 명령하신 건 공주님이 아닙니까.”
(18-P98). “그러니까 제 동생도, 그냥 지우시기로 하신 겁니까?”
(18-P112). “공주님은 늘, 제게 ‘살아있으라’만 강조하십니다.” …(중간생략)…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동생도, 제 분노도, 제 삶도 같이 지워주신 겁니다.”
한때 연인이었던 ‘엘리사’ 공주와의 대화는 ‘죽음’을 무마하기 위해 치른 갖은 희생들을 지적하는 아주 의미 있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직접적인 군 활동에 몸을 담고 있던 ‘수현’을 염려해왔습니다. 그로 인해 여동생이 저주로 사망했을 당시에도, 그 배후를 조사하려던 ‘수현’을 저지하고 관련 자료를 없애버려 그를 방랑하는 저주술사로 내몬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수현’은 복수심을 지우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제 자신을 내몰고 함몰시킨 삶을 살아왔습니다. ‘수현’은 ‘서아’와 다른 형태로 ‘죽음’을 회피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이 또한 죽음과 관련된 ‘저주’를 겪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울림이 적지 않은 장면이 됩니다.
“수현씨 죽을 뻔 했던 거예요, 방금”
“그것과 지금 당신의 행동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네? 당장 자진―” 수현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살라스에게 돌린다. 그는 여전히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안 좋은 선택이라도 하기를 바라는 겁니까?”
그의 격양된 목소리에 서아의 표정도 한층 더 차가워진다.
“저 자의 마법이 한 치만 위치가 달랐어도 수현씨가 죽었다고요.”
“그러니까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죽으면 그냥 다른 저주술사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수현의 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아귀 힘이 더 강해지자, 수현은 힘을 줘서 그녀의 손을 풀어낸다. 그녀의 손이 허공을 한 번 헛돈다.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작아졌지만 여전히 눈은 그녀를 노려본다.
(27화. 안녕, 살라스(3)中)
두 사람의 언쟁에서 발견되는 죽음의 가치관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서아’는 육체적인 죽음만을 죽음으로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죽음과 가까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수현’의 안부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수현’은 그 죽음의 의미를 더 정신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고 상처 입히는 모든 과정이 ‘살해’나 다름없다고 규정하는 셈이죠.
(28-P8). “… 살라스는 당신들을 살리려고 제게 저항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28-P10). “… 해동으로 가서 살아남으세요. 그 후에 나에게 복수를 하던, 뭘 하던 해야 할 것 아닙니까.”
(28-P56). “… 원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중간생략)… “어떤 상황에서는 그게, 죽음에 대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수현’ 본인조차 죽음을 피하는 것 자체를 수단과 목적으로 치환하는 여느 현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은 여러 감상을 전해줍니다. 그것이 그의 본심이 아닐지라도, 죽음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듯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퍽 이질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통일되지 않은 메시지로 파악할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우선순위로 둘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타협하는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4.『죽고 싶었어, 그럼에도 난….』
고백하자면, 이 작품에서 기대했던 이야기와 작품이 추구했던 이야기는 결이 많이 다른 편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독자로서는 초반 전개에서 ‘저주’라는 분야를 해결하는 특수한 직종을 다룬 판타지 소설로서의 결을 느꼈지만, 막상 ‘저주’라는 근본적인 소재는 말 그대로 설정에 남겨둔 채 전체적인 설정과 전개야 중세 왕국을 배경으로 모험을 떠나는 여느 판타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이라는 분야에도 오만가지 증상이 있듯 저주라는 분야에도 그 증상과 해결책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두면 ‘수현’은 그 분야에서 무척 지적인 캐릭터로 완성될 여지가 있었으나, 막상 죽음을 무마하는 저주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두고도 ‘헤르만이라는 강력한 마법사가 건 저주니까 굳이 증상이나 전조를 조사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생략하니 그저 ‘헤르만’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의 덩치를 불리기 위한 수단이었나 하는 아쉬움마저 듭니다.
이런저런 아쉬움들에도 불구하고, 이 <죽고 싶었어,>는 특유의 불길한 감칠맛이 존재합니다. 장르적인 재미와 개성 면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수현’이라는 인물에게 투영되는 이 제국이라고 명명되는 세상은 그곳에서 숨을 쉬고 함께 걷는 것이 위태롭다고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죽음’이 도피가 될지도 모르는 누군가와, ‘죽음’을 도피로 삼고 싶은 누군가의 동행을 관찰하게 됩니다. 그들의 목적이 이 제국이라는 세상에 고하는 마무리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이라는 종막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변화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작품의 제목이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끝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은 일반적으로 ‘끝(end)’에 가까운 이미지입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 ‘죽음’으로도 끝을 맺을 수 없는 세상과 인물의 역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죽고 싶었어’라는 아릿한 고백 뒤에 쉼표를 달아놓으며 무언가를 암시합니다. 이어질 인물들의 남겨진 삶과, 아직 끝나지 않은 선택들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전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서는 이 저주 같은 삶 속에서 단순히 마법사를 처단하는 복수를 넘어, 그들이 외면했던, 혹은 회피했던 죽음의 의미를 매듭지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날이야말로 이 <죽고 싶었어,>라는 제목 뒤에 붙은 쉼표를 지워내고 선명한 마침표를 찍으며 숨을 고르게 될 순간이겠죠. 저 또한 한 명의 독자로서 제목의 쉼표가 마침표로 완성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우선 비루한 감평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깊고 강렬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집필 활동을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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