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단편 모음집] 검열과 삭제 2 (작가: 이일경,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8월 28일, 조회 55

호러 잘 모릅니다. 사랑 만들기의 대가 러브크래프트 선생의 위명은 익히 들었으나 접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두운 데서 공포영화 보면 경기하는 소녀 같은 심성을 가졌기에 극장에서 공포영화도 못 봅니다. 다만 딱 한 명 챙겨보는 호러 작가가 있다면 이토 준지 정도입니다. 하다 하다 별 걸 다 한다는 점에서 이토 준지 시리즈를 능가하는 괴작가는 드물겁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도 조금 접해보았으나 이토 준지만큼 챙겨서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토 준지 시리즈는 단행본마다 꼬박꼬박 공포 만화 컬렉션이라고 붙어 있긴 한데, 사실상 어디서 공포를 느껴야 하는지 애매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단적으로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히로인인 토미에의 경우, 토미에가 직접 누군가를 죽이는 경우가 있긴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선량한 화자들이 창의력 대장이 되서 토미에를 어떻게든 죽이려 들다가 결국 본인이 파멸에 이르는 것이 토미에 시리즈의 진가입니다. 바로 그것이 단순한 공포 괴담과 호러 장르를 가르는 차이점(그 두 개가 구분되는 장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러는 여러분을 굳이 직접 죽이러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서 죽고 싶어할 만한 상황으로 여러분을 끌고 갈 뿐입니다. 죽는 게 무섭다와 무서워서 죽겠다의 차이일까요. 그리고 다음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묵시계>

 

영어제목은 Apocalypronogragh…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시계가 잠깐 뒤로 돌아갔다 다시 가는 것을 발견한 주인공은, 결국 갈수록 확대되는 스케일에 압도당하고 결국 말 그대로 미지의 공포와 직면합니다. 바로 인지를 넘어선 현상입니다.

사실 시계가 뒤로 가는 것이 주인공에게 무슨 특별한 위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나이를 더 먹거나 덜 먹는 것도 아니고, 다만 바뀌는 것은 주인공의 인식뿐입니다. 주인공의 체험으로 인해 주인공 세계의 원래는 어긋났던역사와 현실의 역사가 맞춰지는 순간은 묘한 안도감마저 줍니다. 문제는 다음에 다가온 주인공의 통찰인데, 생각해 보면 인류의 시간 단위에는 년 단위 그 이상을 묶어서 표현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지구에 사는 인간이 지구의 공전 이상의 무언가를 인식해야 할 이유는 없었겠지요. 주인공이 두려워하는 년의 다음 단위라는 개념은 그래서 매우 생소한 것입니다. 여기서 불교의 겁이나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는 시간 등등을 언급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설마 기원전으로 가기야 하겠습니까.

햇수가 바뀌는 시점까지 온 주인공은 그래도 숫자만이 바뀐,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상을 위화감을 안고라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묵시계가 향하는 바늘은 이제 주인공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넘어 어떤 것을 향할지도 모릅니다. 아직까지는 기현상의 유일한 목격자로 어색하게나마 계속 살아있을 수 있지만, 다음 순간에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궁금해하면서 보다가 결국 스케일 자체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신선한 발상이 멋진 작품입니다. 다만 주인공이 공포의 실체를 깨닫는 부분이 스무스하달지, 혹은 너무 휙 언급하고 지나치는 것 같아 약간 아쉬운 부분은 있습니다.

사족스럽게 한군데 더 트집을 잡자면, 시간이 돌아갈 때 사람들의 인식이 원래 1월이 여름이라거나 자정이 대낮이라는 식으로까지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모닝뉴스를 오밤중에 보고있는 상황이 올 텐데, 읽을 때는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으므로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센크라 데어 트리프>

 

제목을 아무리 구글링 해도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루마니아어로는 뭐가 나오던데 그건 아니었던것 같고무능력한 독자를 위해 해석을 좀

작가분께서 자주 주제로 삼으셨던 인식불가한 괴물들에 대한 내용인데, 특징적인 점은 그들이 사람과 꽤 닮았다는 이유로 혐오감 내지 공포감을 준다는 점입니다. 불쾌한 골짜기? 였나 그런 게 생각나는 부분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등신대 인형이나 마네킹과 한 방에 같이 있을 때 느끼는 위화감이 생각났습니다.

역시 간결하게 골조만 남겨진 단편을 읽는 맛도 좋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기왕 괴물의 포인트가 인간과 닮은에 있다면, 특별히 이 친구들이 인간을 잡아먹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서두에서 사라진 환자가 남긴 글을 고려할 때, 놈들은 인간과 ‘끔찍한 방식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혐오감을 주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끔찍한 존재라는 암시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고차원적인 두려움이 놈들이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오히려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편집의 드라큘라 같은 경우에는 드라큘라라는 거의 상업화된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것도 비디오라는 극히 산업화된 매체를 통해 새롭게 보는 맛이 있었기 때문에 드라큘라의 식인행위(를 안 하면 드라큘라가 아니니까)가 개연성을 가졌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전체적으로 긴 글은 아닌 만큼 두려움을 주는 한 가지 요소를 더 깊게 파고드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입니다.

 


 

리뷰를 즐겨 쓰지 않다 보니 사실 감상평을 잘 할 재주도 없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참 어렵습니다. 서두에 밝힌 대로 공포라는 감정을 즐기는데 이르지 못하다 보니 호러 장르에 대한 얼치기 이해밖에 없긴 하지만, 다각적인 요소를 시도하시는 이일경 작가님 덕분에 틈틈이 챙겨보고 있습니다. 부디 건필하시길 바라며, 저처럼 호러물에 익숙지 않은 분들에게도 작가님의 단편집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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