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겨울이 더 좋습니다. 비평

대상작품: 물의 정령 (작가: 무좌수,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19년 8월, 조회 38

실토하자면 새로 쓰신 작품을 읽어보다가 역으로 돌아 들어가서 읽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습니다. 사실 다른 항성계까지 가는 우주 배경 SF를 읽은 지가 좀 오래되었습니다. 인간이 우주 개척지에서 뭘 캐내고 수송하며 살아간다는 느낌의 작품은, 소설은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옛날에는 에일리언, 요새는 넷플릭스에서 봤던 익스팬스가 마지막이었는데 다 못 봤지만 지금은 서비스를 하지 않네요. 각설하고 다음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춥고 외떨어진 광산 행성으로, 해경(우주해적을 생각하면 우주는 해경 관할이 맞긴 한 것 같습니다) 형사들이 사이비종교 감시를 이유로 행성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골자로 합니다. 사실 하드 SF에 약해서 쌍성계나 행성의 계절 주기 등이 나올 때 좀 긴장을 했는데, 다행히도 뭘 계산해서 파고드는 트릭은 장치하지 않으셔서 약한 수학 실력으로도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 조성이 좋은데, 인류의 생활공간을 퍽 넓게 설정해주신 덕에 외우주인(실종자들)도 나오고, 뭔가 중심부여야 할 것 같지만 깡촌이 된 듯한 지구권의 상황도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갈등의 핵심은 실종자 사이비종교 토착생물 딜라리움으로 이어지는데, 처음 짐작한 상황과 마지막에 주인공 일행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 상당히 괴리된다는, 추리물의 왕도에 가까운 접근이 보입니다.

문제는 계속해서 의문을 가져가는 것은 좋지만, 마지막에 핵심적인 열쇠가 되는 토착생물 허깨비와 딜라리움 사이의 연결고리가 중간에 더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행성이 무언가를 채굴하는 곳이고, 사이비 교단이 광산들을 노리는 것으로 보아 채굴 대상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것 까지는 짐작이 가능한데, 그것의 이름이 딜라리움이고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는 영 후반에 가서야 독자들에게 공개됩니다. 그러나 후반 내용 전개를 고려할 때, 이야기 초반에 딱히 그걸 숨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대체 딜라리움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름만 보면 무슨 마약 같기도 한데, 심지어 원래 액체인지 고체인지 무슨 수단으로 캐내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허깨비의 경우 위험한 토착생물이 있다는 점은 적절한 시기에 강조가 되지만, 역시 어떻게 허깨비에 딜라리움을 흡수시킬 수 있고, 그것이 딜라리움 운반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실 얼음 속을 유영할 수 있는 차원이동에 가까운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것과 정제 딜라리움과의 관계는 제시된 바가 없어 외우주인들이 운반하는 물건의 정체가 공개될 때의 느낌은 상당히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와 갑작스런 엔딩을 볼 때, 단문에서 몇 분이 말씀하셨듯이,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더 쓰여져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속편이 나온다든지

그 외 소소하게 드리고 싶은 말은 거의 모든 서술에서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는데,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서정적이거나, 혹은 무언가 규모가 웅장한, 혹은 신비로운 몇몇 장면에서 현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의문입니다. 이 소설처럼 전체적인 시간을 제법 길게 잡아가는 글에서는 약간 받아들이기 피로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건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지 잘 모르겠네요.

 


 

무슨 불만만 열심히 써놓긴 했지만 사실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춥고 어두운 우주는 역시 거친 노동자들의 세상이지요. 그리고 딱히 외계인이 없어도 인간들은 인간들끼리 서로서로 편견도 가지고 차별도 하고 배신도 하면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처럼 특별히 은하간 우주전쟁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태양계는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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