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사이언스 픽션(SF) 감상

대상작품: 심야택시: 진화의 시작 (작가: 전윤호, 작품정보)
리뷰어: 이두영, 19년 7월, 조회 54

쥘 베른의 일화라고 기억하는데, 워낙 예전에 들은 이야기라 출처와 내용은 확실치 않다. 다만 기억하기론 이러하다. <해저 2만리>를 비롯한 그의 소설이 비과학적이지 않느냐고 누군가가 질문하자, ‘자신이 쓰는 것은 소설‘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고.

물론 쥘 베른의 대답은 SF라는 양식이 과학적 논거를 기반으로 두되 엄연히 ‘창작되는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무논리적 비약으로 점철되는 이야기를 SF라고 내놓은 뒤 ‘어차피 소설이잖느냐’하고 둘러댄다면, 그것은 창작이라는 허구에 기대어 작가가 작가 자신의 나태함에 변명하는 것이라고 봄이 더 합당할 것이다.

<심야택시: 진화의 시작>은 나태하지 ‘않은‘ 작품이다.


지식정보가 넘치면 넘쳤지 결코 빈곤하지 않은 현대이다. 정보를 습득하는 것보다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게 강조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과학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하다. 지금처럼 과학 지식이 풍성하게 마련된 시대가 과거에 있었겠는가 싶다. 그러다보니 쏟아지는 과학 정보의 홍수 속에 보통의 대중인 우리가 감당을 못하고 있는듯한 인상 또한 받는다.

SF로 등록되는 일련의 작품들에도 그런 경향이 감지된다. 미래 사회, 자율주행차량, 휴머노이드, AI, 외계 생명 등 SF라는 이름에 떠오르는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딱히 과학 지식에 근거한 디테일한 고증이 선명하진 않은 경우들. 가령 감정을 느끼는 휴머노이드라든가 사람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는 인공지능이라든가 하는 요소들이 작품에서 주된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과학기술적 차원에서 그것이 어떻게 성립 가능한지 탐구를 구하기보다는 그러한 요소들을 통해 사회 비판적 또는 개인적 사색 및 감정 등의 메시지 또는 테마 등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인 경우들.

물론 SF라고 해서 전문용어가 다수 포진된 하드SF여야 할 의무는 없다. 게다가 하드SF를 점점 더 접하기 어려운 것은 과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해온 역사와 그로 말미암은 지식 정보의 양이 비전문가에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해진 까닭에, SF적 요소 몇가지만 차용하여 이야기를 창작하는 일련의 경향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아야 합당하지 않을까.

브릿G에 SF로 등록된 작품들 중 우주과학이든 인공지능이든 해당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분들이 몇이나 될지 전수조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SF라는 장르로 등록된 내 작품들 모두 과학적 지식보다는 과학과 관련한 지식들을 접하고서 내 개인적으로 파생된 사색들—그것도 인문대 나온 사람답게 상당히 문송한(?) 사색들을 핵심 삼아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다.

이는 거꾸로 말해서, 꼭 하드SF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과학기술적 논리를 정교하게 세운 작품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는 말로 뒤집을 수 있으리라.

<심야택시: 진화의 시작>은 바로 그 좁은 입지 한 곳에서, 기술적 근거들의 정교함으로 오롯이 튀어나온 작품이다.


<심야택시: 진화의 시작>은 자율주행차량과 인공지능 그리고 근미래적 농업 경제에 대한 상상 등과 더불어 침팬지라는 동물을 등장시켜 윤리적인 문제도 결합된 작품이다. 동물에 대한 윤리가 새로운 이슈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테마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를 빌드업하는 과학 기술적 정교함은 빈틈을 찌르기 어렵다. 문장은 (걸핏하면 만연체로 늘어지곤 하는 내 문장과 달리) 깔끔하고 담백하다. 흡사 과거의 미국식 하드SF 같은 느낌과 일면 닿은 느낌도 준다.

그렇다면 이 말을 이렇게 바꿈은 어떨까—SF의 고전(classic)적 양식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고.

<심야택시: 진화의 시작>은 ‘클래식’한 사이언스 픽션(SF)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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