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스포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웬만하면 먼저 읽고 오셔서 같이 웁시다…
저는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미 진짜 세상에 충분한 재앙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굳이 창작물에서까지 그런 고통을 사서 느껴야하나 그리고 어떤종류의 결말도 결국 남기는 건 찝찝함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단순히 미래시점의 SF소설인 줄로만 알고 무너진 다리를 만났습니다. 또 프롤로그에 정신없이 쏟아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어지러웠어요. 사실 현실에서도 사람이름을 잘 못 외우는 편이라 보통 종이책을 읽을 때도 적어도 서너페이지는 낯가림 아니 이름가림(?)을 하거든요.ㅋㅋㅋㅋㅋ 그렇게 익숙해지고나야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주인공들을 머릿속으로 볼 수 있게되는데, 처음부터 인터뷰 형식으로 정말 .zip처럼 압축해서 속도감 만땅으로 인물관계들이 드러나니까 머릿속으로 엄청 열심히 짜맞춰야하더군요. 그래서 세 번의 시도로 마침내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고 명치를 한 대 얻어맞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너진 다리를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사실 채워야 하는 하루하루가 있기때문에 단숨에 읽지 못하고 사이사이 시간에 틈날때마다 읽었는데 알바하다가 다른 방에 들어가 숨어서 울고 지하철에 앉아서 조용히 눈물을 닦고 사람이 별로 없는 버스에 앉아 축축한 뺨을 하고 마지막엔 혼자 방안에 누워 마스크팩을 뜨겁게 적셨어요. ㅋㅋㅋㅋㅋㅋ여러분! 무너진 다리 읽으면 조용히 울기 만랩찍을 수 있습니다! 사실 보통 소설이나 영화나 여기서 울어라!하는 장치 잔뜩 깔아놓은 장면들이 많잖아요. 저는 어디서 울리려고 하는지 다 예상해놓고도 속으로 그런 신파 엄청 욕하면서 착실히 우는 그런 흔한 찔찔인데요. 무너진 다리에서는 그렇게 많이 울면서도 단 한번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어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과 존재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나에게 살아숨쉬어서 왜 나의 오늘이 위로가 되고 나의 어제가 가슴 아프며 내일을 꿈꾸고 있는 내가 벅차게 느껴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공감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신 작가님께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특히 1부는 내내 가슴끝까지 울음을 꽉 채운 상태로 읽었어요. 진짜 내내 너무 울고싶었어요. 그러다가 한번씩 문장들이 툭툭 밀면 와르르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졌어요. 프롤로그부터 이런 전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랬나봐요. 특히 가끔씩 글을 읽을 때 너무 불친절하게 등장인물 혼자 이야기를 달리거나 필요이상으로 다 꺼내보여서 나는 단지 그냥 방관자가 되어 서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마치 진짜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처럼 만드는 작가님의 섬세한 전달력이 너무 이야기에 흠뻑 젖도록 만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아인이 자신이 무엇으로 깨어났는지 인식하는 과정을 함께할 때 진짜 소름이 돋았어요. 그리고 접점이 없어보이는 인물과 배경들이 화면전환되다가 점점 더 하나의 큰 그림으로 짜맞추어지면서 마음이 벅찼습니다. 그 많은 인물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묻혀지지않고 입체적으로 그려졌어요. 진짜 사람보다 더 인간적으로요.
진짜 신경을 잃고 다시 깨어난 아인이 본래의 감각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잃게 된 설정이 초반엔 조금 갸우뚱했어요. 뇌는 원래 아인의 것이니까 신경감각과 감정은 분명 다른데 사실 긴 우주를 건너오는 동안 변연계에도 손상이 온 건지 혹은 감당할 수 없을 감정들에 대비한 누군가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일지 그런 가설들을 혼자 세워봤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아니 정말로 우리의 감정에는 감각이 전제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과학적이지만 발가락에 닿는 차갑고 매끄러운 바닥의 촉감이, 끌어안은 사람의 냄새와 온도가 우리가 눈물 흘리고 분노하는 데에 필요하다는 생각이요. 왜 휴론을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었냐는 질문에 답하는 임교수의 대답에서 그런 이상한 생각을 나만 한게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여튼 이런 설정이 새로 깨어난 아인의 본질에 대해 아인도 저도 확 와닿을 수 있게 만들어 줬다고도 생각해요. 이 세계가 처한 비극을 저도 아인과 함께 알아가면서 설정자체가 너무 뭐라해야하지 창의적이라고 해야하나 정말 너무 안 뻔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해서. 선생님 미국이요? ㅋㅋㅋㅋㅋㄱㅋㅋ진짜 신선한 거 아닙니까. 저한테 미국은 언제나 자기네들이 인류를 구원하는것처럼 구는 어벤져스라던가 그런 이미지가 크거든요. 그게 쫌 가끔씩 불편할 때가 있었어요. 그거 누가 준 명분인데?! 근데 반대의 상황이 되는게 진짜 좀 통쾌하기도 했고. 또 막상 읽을땐 이런 그림을 의도하고 그린거야~이런 티가 안나고 당연히 자연스러운 서사로 촘촘한 스토리텔링이 너무 세련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진짜 크고 작은 설정들이 넘 좋았어요.
세계가 맞이한 대재앙을 배경으로 개인이 삶의 몫으로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각자의 재앙들을 함께 꺼내놓았는데 그 둘을 저울질 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너무 좋았어요.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는 흔한 문장이 어느 때보다 와닿았거든요. 현실적이라 더 마음아팠고 가끔은 그 상처가 내 것같아서 같이 아팠다가 같이 일어섰다가 대신 위로했다가 그렇게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어요.
분명 막 문체가 친절한 건 아닌데 결국 시선의 온기가 느껴졌어요. 인간을 파괴하는 건 결국은 같은 인간이라고 사실 저도 평소에 되게 많이 했던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희망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들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울컥울컥했어요.
사실 5부가 너무 아쉽습니다. 역시 이런 인터뷰 형식만으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천재적이라 우는 와중에도 감탄했지만 그래도 잘 쌓아온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많은 장면 함께하고싶다는 욕심이 있어서요. 진짜 이 부분만으로도 영화 한 편 나올텐데 진짜 읽으면서 무너진 다리 영화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 백 번했어요…
물론 결말은 어떻게해도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찝찝함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첫문단의 생뚱맞았던 제 취향고백은 결국 제가 이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다리를 만나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결론을 말하고싶어서 였습니다. 작가님이 보여주실 앞으로의 이야기들도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많이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