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늘색을 회색과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자연이 파괴되어 세상의 모든 빛깔을 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닐까, 단순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하루>를 읽다 보면 그 세상이 그리 상상하기 힘든 세상도 그리 먼 미래의 세상도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그런 세상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텅 빈 놀이터의 열일곱 소녀는 몇 달 전 함께 산책 나왔다가 사라진, 그래서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하얀색 강아지, 쫑아를 기다리고 있다. 실종 전단도 돌리며 가족들과 매일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고, 어느새 가족들은 쫑아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오늘은 결국 학교도 가지 않고 쫑아가 사라진 놀이터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앉아있다. 그 순간 쫑아의 소리가 들렸다. 뒤쪽 풀숲 사이를 지나 철망 너머에서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단단하고 강하고 높고 차가운, 심지어 날카로운 가시들까지 잔뜩 달린 철망은 결코 넘을 수도, 넘어서도 안 되는 공간으로 다가오고, 소녀는 그저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다. 그런 소녀 앞에 어떤 낯선 이가 무지개와 우리가 아는 그 하늘색을 들고 나타난다.
이야기는 많지 않은 분량인 만큼 간단하게 정리가 되지만, 그 울림은 그리 간단하지 않게 느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짧은 글은 오늘날 우리 사회, 혹은 어떤 사건-그렇다! 그 사건!-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 또한 이런 생각으로 쓴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갑자기 사라진, 아니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과 끝까지 그들을 찾아낼 거라는, 아니 제발 어떻게든 돌아오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뭐가 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은, 아니,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갈기갈기 찢긴 채 그들의 곁에 남겨진 것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보기 싫은 것이겠지만, 넘을 수도, 넘어서도 안 된다는 저 철망에서 인제 그만 포기하라는, 지겨우니까 그만하라는, 결국에는 하늘을 회색빛으로 물들인 그 사람들도 본다. 그나마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와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며 토닥여주는 낯선 이를 통해서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촛불을 들고 서 있는, 회색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그 하늘빛을 돌려주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 위안 때문일까, 이야기의 결말이 얼핏 보면 해피엔딩 같아 보인다. 비록 쫑아를 찾지는 못했지만,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떠오르고, 우리가 아는 그 하늘색이 펼쳐지는 상황이 사실 해피엔딩에 가까이 다가간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큰 뭔가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아마도 진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철망은 넘어보지도 못한 채, 일단의 새파란 하늘은 얻어낸 것이 최근의 현실이니까 말이다. 그것도 충분히 좋은 일이고… 그럼에도 그런 결말을 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아프게 느껴진다. 소설 속의 소녀도, 현실의 누군가도 여전히 철망 너머의 뭔가를 아직 알지 못하기에 슬프고 또 화가 나는 것이다. 낯선 이가 새파란 하늘빛을 몰고 왔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철망 너머의 뭔가가 아닐까, 라는 강한 확신이 느껴진다. 궁금하다. 저 철망 너머에 도대체 뭐가 있는 것인지. 도대체 뭐가 있기에 그렇게 꼭꼭 숨겨놓기만 하는 것인지. 그 진실이란 것, 찾을 수 있겠지?!
지금 브릿G에서 작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하는 작품 공모의 첫 번째 주제가 REMEMBER 0416 이다. 상당히 민감할 수도 있는 주제를 누가 어떻게 풀어낼지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어떤 하루>가 그에 잘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어떤 것보다 진실에 더 가깝게 가야 하고, 또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그래야만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길 소망한다면 한 번쯤은 이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