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돌연변이에서 비롯된다.
있어선 안 되는 물건이 등장하고,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 나타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는 것을 볼 때 사람은 두려움을 느낀다. 이해할 수 없는 범주에 다다랐을 때 공포심을 느낀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작품의 제목으로 등장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타인의 관심을 사랑을 받기 위해 과장하고 부풀려 말하기를 좋아하는 허언증을 일컫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이 농담으로만 보인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뱉는 말이나 행동에도 진심이 담겨 있을 리 없다.
그런 주인공에게서 갑자기 말을 하는 아기가 태어난다. 말을 하는 아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주인공에게는 공포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기는 주인공이 혼자 있을 때 꼭 뒤에서만 말을 걸었다. 눈을 마주치면 다시 모른 척 시치미 떼고, 주인공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뒤에서 조롱 섞인 농담을 뱉었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기가 일찍 말을 텄다고 좋아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은 말을 하는 분신이 두렵기만 하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발로 걷어차고, 심지어 없애 버릴 궁리까지 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은 절대 아기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진실 보다 농담이 팽배하다. 진실과 농담을 구분하기 애매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주인공처럼 허언증을 앓는 분신과 함께 살아가야할지 모른다. 진실을 말해도 농담으로 조작되고, 농담은 발 없는 진실이 되어 순식간에 퍼져 버리는 이 세상이 종말을 맞아 싹쓸이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