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호러와 중단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장편 도전작이 많지 않습니다.
최근 하 지은 작가님의 글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이후에도 도전한 장편들마다 완독에 실패하고 말았지요.
이 작품은 아직 완결이 나진 않았지만 읽어보니 브릿G의 많은 독자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타지물의 경우 최근 다른 사이트에서 수도 없이 나오는 먼치킨물과 정통 판타지물이 대세라고 생각합니다만, 쉽고 고민없이 읽을 수 있는 먼치킨물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네요.
정통판타지물의 경우 한 시대와 공간을 머리속에서 창조해내야 하는 작업이 쉬운 일도 아니고, 그 안에서 여러 이야기들까지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작가님들께서 어려워하시는 장르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 저를 포함한 판타지물 도전자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로 시대적 배경의 구성이 탄탄합니다. 동서양적 문화를 잘 섞어놓은 여러 나라들의 묘사는 사실 여러 소설이나 게임에서 시도되었던 것들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굳이 어떤 편을 가르려 하지않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들어와서 큰 거부감없이 이해가 되더군요.
둘째로 케릭터들의 입체감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작가님이 많은 고민을 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판타지에서 등장할 수 있는 캐릭터의 성격은 사실 너무 뻔합니다. 충성심 강한 마초와 과묵한 지략가, 한없이 순수한 아이들, 정의감에 불타는 초고수와 그와 질긴 악연을 가진 태생적 악인들까지…
이 작품도 그런 기본적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게 사실입니다만, 그 안에서 인물들에게 다양한 고민과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신 부분들이 보입니다.
믿을 만한 인물이 배신을 하는 상황에서도 그저 반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짠하고 보여주는 것보다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심리 상태를 독자들에게 이해시켜주기위해 노력하시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해 인물에 지나치게 다양한 개성을 부여하면 ’23아이덴티티’의 케빈이 될 수밖에 없지요.
작가님은 인물에 숨을 불어넣으시는 데는 성공하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 또한 다르지가 않으니 배경과 케릭터입니다.
글의 시대적 배경은 오랜 시간 구상하셔서 만든 것이 느껴질 만큼 빈 구석이 없지만, 세세한 소품들까지 모두 새로운 단어들이다보니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긴 호흡으로 읽어나가야 할 이런 판타지물의 경우, 초반부의 프롤로그 뒤에 약간의 배경 설명을 더해주심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생기네요. 인물의 행동을 따라 자연스럽게 덧붙여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중반으로 가면서 매 편마다 계속 새로운 환경과 지역, 인물이 등장하는데, 설명이 뒤따라오지 않아 이해하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캐릭터의 문제인데 더 정확히는 캐릭터의 대사문제입니다.
캐릭터 자체는 작가님의 정성이 보이는 잘 깎아놓은 조각같은데, 그들의 대사는 많이 보았던 판에 박힌 이야기들이라 좋은 케릭터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일단 주인공인 카라의 경우, 어려서 양친을 잃고 어린 몸으로 거친 환경을 헤쳐나가며 살아온 배경을 이해한다고는 해도 대사가 지나치게 가벼운 듯 날이 서 있고 사방을 찔러대는 것 같아서 주인공의 매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동생인 시아는 카라와 반대되는 성향이 너무 강조되다보니 의존적이고 맥없는 캐릭터가 되었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충분한 개연성이 설명되었고, 언니의 품을 떠나 변화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기에 매력있는 케릭터였습니다.(시아야…흑흑)
이 작품에는 이렇듯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지만 글의 중추를 이루는 대화를 보면 약간 평이하다고 할까요? 충분히 감칠맛나는 대사를 넣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야기 진행에 무게를 두시려 그러신 건지 제게는 무겁고 건조한 대사들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최근에 인물간 대화의 내용이 장르소설 재미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고 보거든요.
특히나 이 글에는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이 편마다 등장하기 때문에 대사의 아쉬움이 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쭙잖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만, ‘피를 머금은 꽃’은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재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세한 부분에도 공을 들이시는 작가님 성향상 언제 돌아오실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1부를 읽는다면 2부를 기다리게 될 것은 확실합니다.
이 글은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오래 끓인 진국처럼 한번씩 더 읽게 되는 깊은 매력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