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한다. 저의 정치적 입장에서도 동성애는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야당 대표의 동성애 반대 발언이 있었다. 놀랐던 것은 그의 주장 그 자체보다는 그가 주장을 펼치기 위해 선택한 단어였다. 동성애는 “반대”할 수 있는 것일까? 이미 동성애자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건 그들의 인간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실존을 부정한다는 의미일까? 더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교육문제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소위 보수 정통 가치를 가진 정당에서는 동성애 그리고 학생들의 인권조례 이런 부분에 대해 현장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강고히 갖고 있다.”
동성애가 교육을 통해 교정될 수 있다는 주장도 황당했지만, 이를 인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만일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내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는 말과 함께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시사했다. 또 교황은 “신이 동성애자들을 본다면 그 존재를 인정하겠는가, 아니면 거부하거나 비난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자비를 가지고 그들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언급했다.
우리는 주변의 약한 사람들의 아주 작은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루스벨트는 세계인권선언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편적인 인권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작은 곳,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입니다. 아주 가깝고, 아주 작아서, 그곳은 어떤 세계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은 각각의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작은 곳에서부터 인권을 지키려는 모두의 노력이 없다면 보다 큰 세계에서의 발전도 헛될 것입니다.”
“Who dare to judge?”
우리 중 누구도 특정 가치와 이념을 기반으로 타인의 삶을 규정하고 판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의 삶에 대한 평가를 넘어 개입하고 교정을 시도하는 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내세의 구원 이전에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