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에이스입니다.
작가님의 글을 저의 두번째 리뷰작품으로 선정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포일러는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글을 읽지 않으신 분들도 편안하게 리뷰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리뷰의 흐름상 아주 조금 추가된 소설의 부분적인 줄거리는 있습니다.
주인공인 아라는 충동적으로 자신의 지도교수인 나타샤의 프로젝트인 로봇 ‘윌’이 폐기된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구하러(명백히 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몰래 잠입합니다.
그러다, 나타샤에게 곧장 발각되고, 본격적인 허락을 통해 윌에 대한 프로젝트를 인수받게 되죠.
이것이 소설의 도입부에 나타나는 줄거리이자, 이야기의 발단입니다.
BC 165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린드파피루스는 가장 오래된 수학책입니다.
내용적 측면으로는 수록된 것이 대부분 실용적인 문제들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주인공 ‘아라’ 에게는 로봇(이라고 편하게 지칭하겠습니다.)인 윌이 그녀만의 ‘린드파피루스’입니다.
그녀의 일상은 ‘윌’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고 할애되었죠.
린드파피루스의 손꼽히는 특징은 다른 수학책과는 달리 공식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인데,
윌 역시 정해진 공식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었습니다.
로봇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한다는 점이 있었으니까요.
프로그래밍된 주어진 임무조차 없고, 거창한 사명 또한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주인이 바뀐 것도, 누군가가 자신을 강제로 죽인(잠재운)것도 알아차릴 만큼 똑똑하기까지 합니다.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점은 작가님은 윌을 명백한 ‘로봇’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상당히 로봇적인 특징들을 윌에게 모두 때려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윌이 로봇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분명 의도한 것이겠지요.
작중 초반부터 아라가 연구가 끝난 시간, 몰래 윌을 보러가며 자주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였다는 점
이라던가, 나타샤가 ‘자격’을 운운하며 주인공에게 프로젝트를 인수하며 여운을 남기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윌을 단순한 객체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하는 느낌을 받았고,
우리의 윌은 요구도 할 줄 알고, 기다릴 줄도 알며, 먼저 질문을 꺼내거나, 허용된 선에서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을 바라보는 다정한 관점은, 가족이나 친구의 그것과는 다를 것도 없지요.
덕분에 아라는 점점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윌이 ‘나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흥미를 자극하는 연구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또 다른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일에도 많은 조건과 여건 그리고 여유와 결정이 필요한 법인데,
나무처럼 뛰어난 지능을 가진 로봇이라면 과연 어떨까요?
아라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소설에서 한번 씩 언급된 ‘책임’과 ‘자격’ 그리고 ‘관계’
그 단어들은 단순한 로봇의 소유자에게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SF장르의 영화나 소설 혹은 다양한 사회적인 방면에서도 언급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로봇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
로봇이 사람처럼 감정을 가지고, 스스로의 판단과 생각이 가능해지면
그 역시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인권을 주어야 하는가? 식의 논제입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저는 이 문제를 소설을 읽고 떠올리며 만일 내가 ‘아라’였다면
당연히 2번째의 의견을 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소설만의 로봇 ‘나무’를 보고 들은 느낌이지만요.
포스트모더니즘의 그림을 그리는 나무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이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자유로운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다니
참 멋지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주인공의 결정을 두고 나무는 ‘조언’합니다. 견디거나, 피하거나.
어쩌면 그 말이, 작가님이 표현해내는 또 다른 메시지 같기도 하더군요.
적어도 로봇이 할 수 있는 조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나무의 크기가 더 와 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의 결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범한 주인공이 난관을 피하지 않고 견뎌내어 빚어낸 빛나는 용기로
나무를 알아가는 동시에 보다 친해지며 앞으로의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나무:또 다른 존재>는 가볍게 읽어 내려가기 좋은 멋진 작품입니다.
깔끔한 문체를 특징으로, 거창한 표현이나 과학과 관련된 배경 지식 없이도
주인공의 심정과 나무의 심정을 번갈아 생각해보며 SF입문자들도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죠.
하지만 대사 하나하나에 내포되어 있는 뜻은 아주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홀린 듯 금방 읽었습니다.
오히려 덤덤한 표현력들이 더 와닿을 때도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모든 뜻을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던 점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아라가 윌의 새로운 본체(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나,
윌이 이젤에 그려준 아라의 모습은 꽤나 인상 깊었고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리뷰에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동반자인 아라를 이해하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배려한 그의 선택은 눈물이 납니다. 로봇답지 않게 참신하기도 했고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칭찬만 한 것 같으니 몇 가지 단점을 나열해보자면,
글을 읽으며 몰입이 어려웠던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단순한 대학원생이 이러한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점과
(저는 절대로 저런 프로젝트를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흠흠..)
이런 괜찮은 프로젝트가 너무나도 쉽게 폐기되어 버렸다는 점
(소설 속 세계관에서는 로봇이 흔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보다 많은 자본이 필요했다고 언급된 점을 보아하니 또 아닌 것도 같고….)
그리고 초반에 윌이 ‘한류 아이돌’을 빼다 박았다고 설명하는 묘사였습니다.
저도 아이돌을 참 좋아하지만(아이즈원 만세) 왠지 이 부분은 조금 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해도 좋았을 것 같은 아쉬
움이 들었습니다. 몰입이 살짝 방해되더군요. 물론 아주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작가님께
부족한 리뷰이고 모자란 글 솜씨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다양하고 좋은 작품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