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버트를 따라가다 (가제: 소녀) 공모

대상작품: 험버트를 따라가다 (가제: 소녀) (작가: 은제, 작품정보)
리뷰어: 비마커, 19년 3월, 조회 45

‘불편하지만 어딘가는 자꾸 기억에 남는’

‘유행이나 장르적 공식에서 벗어나고 자유롭기를 희망’ -리뷰 공모에 부쳐 中-

처음 저 코멘트를 읽었을 때(작품을 읽기 전)는 별 생각이 없었다. 재밌으면 그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다 읽고 리뷰를 쓸 때가 되니 저 말이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장르 공식에 빗대어 작품을 평가하다 보면, 작품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긴 하다. 여기서 ‘장르’란 ‘장르소설’의 장르가 아니다. 일반문예 작품을 읽을 때도 보이는 각각의 형식미, 양식미를 일컷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것을 배제하자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도 일치하는 듯하고, 스스로도 반성하고자 하는 마음에 양식미에 대한 얘기는 최대한 빼고 써본다.

 

장점

-일반문예가 아니라면 구사하지 않는 문장을 구사한다.

이건 필력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일반문예라는 장르의 분위기를 끌고왔다는 의미다.

경계문학이란 게 낡은 주제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도 나는 ‘하루키가 쓰는 왕좌의 게임’ 같은 걸 꿈꾸고 있기 때문에(나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에 낚였었다) 이런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는 있다. 장르문학에 새로운 피가 수혈되는 걸 보는 기분이랄까. 이 부분은 작가의 의도대로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단점

-장점에 곧장 이어지는 얘기다만, 이런 시도가 정말 완벽하게 맞아들어가는 경우는 잘 없다. 그보다 사실 걸작을 쓰기란 어느 곳에서나 어렵다. 다만 이게 일반적인 추리스릴러였다면 평작 추리스릴러로 남을 수 있겠지만, 이런 실험적인 작품은 안주할 장소가 없다.

이 말은 작가(作家)라는 말에서 가(家)자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작은 집을 제대로 짓지 못한 작품이다. 집을 짓지 못한 작품은 이미 지어져 있는 집에 들어가 살면 된다(마츠모토 세이초가 사회파라는 집을 짓고, 후대의 사회파 작가들이 그 경향을 뒤따르는 것처럼). 하지만 이 작품은 온전히 집을 짓거나 아니면 객사를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유인의 운명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중에서도 나오지만, 험버트는 롤리타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러나 제목에 험버트를 언급한 것 치곤 롤리타와 별 관련이 없는 느낌이다. 주인공의 정체를 숨기는 듯한 기색이 보여, 나는 당연히 원작에서처럼 딸이겠거니 했지만…더 충격적인 걸 기대했던 터라 좀 맥이 빠졌달까. 단점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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