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프 공모전’의 마감이 네 시간 가량 남은 20시 10분. 마지막 트롤리를 타고 수작이 등장했습니다.
‘소수를 죽여서 다수를 살리느나, 소수를 살려서 다수를 죽이느냐.’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트롤리의 딜레마입니다. 시간 보험사에서 등장하는 갈등구조 역시 이와 유사합니다. 다만, 시간 보험사의 갈등구조는 선택하기가 조금 더 나은편입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수는 ‘어짜피 죽을 운명’ 인 점이 그렇습니다.
공리주의적인 측면에서는 이번 트롤리 역시 시간 보험사의 계산이 맞을겁니다. 두 미래 모두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부분은 같지만, 어느 쪽의 미래에는 주가 하락과 책임소재 가리기 등등등… 번거로운 사회적 비용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달려있으니까요.
하지만 트롤리를 가지고 하루종일 이야기 하는건 정의롭지 못한 리뷰구요, 다른 이야기를 합시다. ‘어짜피 죽을 운명’인 사람의 이야기를요. 작중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소재는 상당히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명의 희생자가 모두 비정규직이네요.
어차피 죽을 노동자였다지만, 기업은 책임소재에서 완벽히 벗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창출된 가치는 누구의 몫일까요? 작가님께서 의도하셨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문뜩 읽다가 지쳐서 덮어버린 자본론이 떠오르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결국 죽었습니다만, 어떻게 죽었느냐가 중요하죠. 선로의 레버를 열심히 당기다보면 꽤 많은 돈을 만질 수도 있을테고, 어쩌면 보험사에 직접 고용되어 30만원을 더 받으며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원치 않았죠. 결국 화장실에서 살해를. 아니, TV 조립 공장에서 사고사하고 말죠.
사실 좋은 글을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글이 어떤 철학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떠나서, 이 글은 재미있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사항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