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만,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놔 두겠습니다. ㅎㅎ
처음 작품 설명만 보았을 때는 전형적인 추리물일거라 짐작 했습니다. 주인공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낯선 이들과 고립된 공간에 갇히게 되죠. 그곳은 이미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외부와 단절된 그곳에 진범이 숨어있습니다.
흔히들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하는 닫힌 공간과 제한된 용의자 속에서 탐정은 그의 명민함을 무기로 진상을 파악한 후 모두를 모아놓고 진범을 밝히죠. 정의가 승리하고 혼돈과 공포와 무질서가 물러가며 세상은 다시 안정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기대를 보기 좋게 비틀어버립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웃음을 자아내게 되지요.
먼저, 범죄 사실부터가 웃깁니다. 극한의 컨셉충(?)인 유명 추리소설 작가는 자신이 자식들에게 살해당하는 컨셉을 기획하고 상황을 조성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시체로 발견되죠. 이 자체가 ‘질서에 대한 위협, 전복’ 따위는 전혀 없는 웃기는 범죄(?)가 됩니다. 피해자가 직접 꾸미고 조성하고 실행을 도발케하는 상황이니까요. 따라서 범죄로 인한 긴장감 따위는 생기지 않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 등장인물들이 가장 긴장했을 때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가 아니라, 비로 인해 탐정 역을 맡은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번째로, 용의자들의 어설픈 연기가 웃깁니다. 용의자는 총 4명이고 각각이 맡은 역할을 실행하는데 아마 이 작가는 소설에는 뛰어났어도 자기 자식 파악에는 서툴렀나 봅니다. 하나같이 배우로서는 자질이 없어보이는 자녀들에게 본래 그 성격과는 맞지 않은 컨셉을 부여합니다. 특히 둘째와 셋째가 힘들어보이더군요.
셋째 -아마도 일종의 맥거핀 같은데- 뻐꾸기가 웃깁니다. 용의자 중 한 명은 틈만나면 ‘뻐꾸기의 저주’라고 읊어대고 심지어 이 글의 제목에도 ‘뻐꾸기’가 들어갑니다만, 실제로 뻐꾸기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어떤 의미인지 끝끝내 나오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탐정역의 주인공들조차 빈말로도 ‘대체 뻐꾸기는 왜 나오는거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이 세계관을 창조한 죽은 작가 외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대상인듯 합니다.
이렇듯 전통적인 추리 소설의 틀을 가볍게 빗나가는 이야기에, 처음에는 당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주인공 심리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또한 전개가 이러하다보니- 추리소설 특유의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워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러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 주인공들에게 벌어진 일에선 독자로서 잔뜩 긴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방금전까지 가졌던 생각에 대해서 반성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컨셉충인척 하던 모습이야말로 다 연기고, 실제로는 싸이코 살인마들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펼쳤더랬죠.
조금 아쉬웠던 점은, 제가 두 주인공 간의 서사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 분들이 주인공인 다른 시리즈가 또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족으로, 소설 속 인물인 ‘추리 작가’야 말로 (작품 속 세계관에서) 정말 대단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후에도- 전혀 그럴 의지도 마음도 없었던 이들까지- 자기가 짜 놓은 판 안에서 떠맡게 된 역할에 충실하게 움직이게끔 하다니- 이건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내쫓았다고 아니고, 이 정도면 살아있던 시절 내내 명성을 떨칠만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품 속 인물이지만) 이런 천재의 사망에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추리/스릴러’ 장르에선 매우 드물고 희귀한, 유쾌하고 즐겁고 웃긴 ‘코미디/유머’스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색다른 추리소설을 원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