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간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분의 작품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볼 때마다 지슬라브 백진스키가 언급된다. 그래서인지 엽편 분량의 소설 역시 그러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안개 낀 호텔 구조물 전체를 거미줄 같은 섬유 조직에 촘촘히 감싸인 거대 생명체의 골격이 지탱하면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을 것만 같은 글이다. 니헤이 츠토무의 만화 ‘브레임’!에 나올 법한 끝이 없는 규모의 구조물이라면 더더욱 좋으리라.
백진스키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악몽이 새겨진 세계라고들 한다. 그럼에도, 그림은 부정할 수 없는 몽환적 미려함이 스며들어 있다. 이 소설은 일종의 코즈믹 호러이다. 하지만 그 공포는 지중해 시에스타 같은 나른한 서정성의 안개로 자욱하게 마감된다.
사실 소설을 쓰려 하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깨기 싫은 꿈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창작의 모호한 영감이 안개처럼 들어찬 누군가의 머릿속 심상거이나 가상의 세계에 등단의 꿈을 바치도록 만드는 사이트들을 외계인이 만든 천국 같은 개미지옥에 은유함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쪽이든 읽다 보면 내가 저 안개의 호텔에 잡아 먹힌 것인지 호텔이 사실 나의 머릿속인지 모호해질 따름이다. -물론 내 깜냥은 캡슐호텔만 되어도 다행이겠지만- 초현실 세계에서는 코즈믹 호러조차 몽상으로 다가올 뿐이다.
호텔의 안과 밖을 모두 채우는 안개는 축축하고 음울한 습기라기 보다는 담배의 그것처럼 건조한 스모키에 가깝다. 사실 거의 평생을 간접흡연에 당한 입장이라 담배 연기는 진저리를 치지만 꿈속에서 흑백 영화 속에 들어가 휩싸이게 되는 연기는 몸과 정신에 무해할 것만 같다. 심지어 생활과 노후 걱정 없는 호텔이라면 마다할 리가 없지 않은가. 주인공의 선택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결말을 외면하려는 심리조차도-
그림 밖에서 보는 백진스키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혹시 누가 알 텐가,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