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바램 사이 그 어디쯤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잿더미 별 (작가: 유난비, 작품정보)
리뷰어: 드비, 10월 6일, 조회 52

<이 리뷰는 성적 담화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분들만 보시기를 권한다. 그러한 것이 정작 하고 싶은 리뷰의 주는 아니지만 언급되지 않을 수 없어 그러하다. 일부,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을 리뷰에도 옮긴 터라, 소수?의 너무 순수하여 그 표현이 불편하실 수 있는 분들은 살포시 뒤로가기를 누르셔도 좋겠다. >

 

이 작품은 어느 육군 부대 하사의 이야기다. 주인공 인철은 부대 내, 그의 관리 하에 있던 상병 하나와 일병 사이 성적문란행위라 구분되어진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따른 징계에 어쩔 수 없이 관여하게 된다.

작품을 보지 않고 위 말만 보고서 여타 다양한 성적 상상력을 꽃 피운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다. 죄송하지만 상상하신 그런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작품 속에 전개 되는 내용의 경중을 판단하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계신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실 것만 같다. 얼핏 보면 마치 군을 비하하거나 남성이란 집단을 조롱하려는 것일까 싶지만, 그것으로 하여 ‘함께 비난하자’ 하시는 것이 작가님의 의도는 아니라 생각된다.

 

오랜 시간 성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수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단순하게 크게 나눈다면 누군가는 ‘더러운 것’, 누군가는 ‘그저 번식의 수단’, 누군가는 ‘즐거운 것’이라 이야기 할 수 도 있다. 사람마다 어떻게 바라보는가.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또 수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해학, 누군가는 터부시할 이야기가 된다.

이 작품 속, TV에 나오는 여성 연예인을 보면서 한 ‘먹고 싶다’는 발언에서 촉발된 사건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와 ‘옳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먹는다’라는 자극적인 표현에만 함몰된다면 본질을 놓치는 것일 터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그 표현은 남성들만이 쓰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이끌린 연인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여성 동기 간의 수다에서도 왕왕 까르르- ‘경험’이 전무한 친구를 놀리는 짓궂은 농담의 소재가 된다. 지어낸 말이 아님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심지어 그 표현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꽤 많은 다른 나라의 언어에서도 발견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표현이 허용되는 순간은 지극히 안전하고, 여유있는 상황, 당사자들의 감정이 즐겁고 동의를 동반할 때 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당사자 혹은 제3자의 부동의 하에 이루어지거나 단순한 언급으로라도 원치않게 표현된다면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장난이었다, 농담이었다로 넘어갈 수 없다.

 

반면 이 작품 속에는 ‘욕망’과 대비되는 다른 형태의 ‘바램’이 나온다.

주인공 인철은 저 성적문란행위를 관리하고 처리해야 하는 이로서 평소에 좋게 생각했던 병사들의 낯선 욕망을 마주한다. (심지어 자신 또한 성적 구설의 대상이 되어있는 상황에 분노하지만), 징계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그 사회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일과 처벌 받아야 할 일이라는 판단 사이에 혼란스러워 한다.

작품 속에 서술되는 욕망은 그저 화면 속 연예인에 대한 질낮은 상상 성욕으로 소비됐지만,

인철은 욕망과는 다른 형태의, 현영이라는 동기에 대한 바램을 품고 있었다. 그녀에게 정말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모두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그녀의 마음 한켠에 자신이 있기를 바라고 자신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여 주기를 바란, 그것이 충동적인 것일 지라도- 닿고, 함께 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 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인철의 마음은 거절되었고 곁에 있음도 허락되지 않았다.

 

작품 속에서, 인철의 심리적 변화가 도드라지는 장면이 셋 생각난다.

허 하사도 솔직히 군인만 아니었으면 괜찮을 것 같지 않냐? 에이, 농담 마십쇼. 허 하사가 여자로 보이긴 한답니까? 여자라곤 아이돌만 보니까 이 새끼가 눈이 너무 높아졌나, 솔직히 괜찮지 않냐? 조금만 더 예뻤어도 군 생활 매일매일 즐거울 뻔 했는데. 얼굴이 평상타면 뭐합니까, 몸매도 같이 받쳐 줘야지. 뭣보다도 사람이 좀 여기저기 굴곡도 있고 그래야 하는데, 그분은 미드가 좀⋯⋯.

정신을 차렸을 때 당신은 임내준의 뺨을 후려갈기기 일보 직전의 오른손을 허공에 멈추고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임내준의 말투를 듣고 몇몇 사람의 얼굴이 절로 눈앞에서 그려졌다. 모두 당신 앞에선 예의 바르고 어쭙잖은 애교도 가끔 부려대어 귀엽게 보던 아이들이었다. 당신은 임내준의 주둥아리를 통해 재연된 그들이 당신이 아는 그 아이들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눈 앞에 거울이 있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안색이 심하게 파리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허인철 하사는 여자다. 남자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엄연한 여성이다. 평소 좋은 부대원이라 생각하고 있던 영균의 잘못에 혼란스러워하고, 내준에게 미안해 하는 대신 그걸 덮는 게 옳은 것인지 고민하고 갈등 하는, 부대원들을 아꼈고, 애정 하던 좋은 하사관의 모습이다. 단지 여자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뒤늦게 알려주면서, 그녀 역시 욕망의- 그것이 실현을 전제하지 않은 농담 같은 성적 수다에 그쳤을 지라도- 그녀 모르게 그러한 대상으로 전락해 있었음에 충격을 받는다.

이후 인철의 마음, 현영을 향한 바램이 거절되고, 허무가 남았을 만하지만 눈물 한방울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그간 그렇게 찾고 찾던, 인철을 군대로 이끌었던 홍보 포스터를 우연히 찾은 순간 포스터 속의 군인은 구겨지고 색만 바랬을 뿐 변함이 없었지만- 인철의 변화와 함께 조금도 멋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의 시작이었던 ‘가해자’ 영균의 제대 날

다른 건 모르겠고, 나가서 짜장면이나 한 그릇 시원하게 ‘먹고’ 싶네.

강조된 말투에 폭소와 휘파람 소리가 터졌다. 병사뿐 아니라 간부들도 그게 우스운지 영균이를 삿대질하며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모두가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지금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당신도 함께 웃었다. 그저 우스웠으니까.

 

다시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 또 다른 사건을 마주한 후 의견을 표하는 인철의 말에 필자는 설명하기 힘든 씁쓸함을 느꼈다.

그래서 당신은 대답했다. 진심을 담아서.

일 잘하는 애 그런 걸로 찌르는 게 말이 됩니까.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드니까 찌른 겁니다. 저는 이런 애들이 제일 악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멀쩡한 부대에 소란만 일으키지 않습니까. 조용히 넘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인철의 변화는 ‘잘못’에 대한 눈가림이었을까, 조직에의 억지 순응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 여기게 된 것일까. 작가님의 의도가 지능적인 돌려까기일지 아니면 안타까움 혹은 불편함을 주고자 하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순응, 타협에 대해 옳지 않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다만 안타깝게 만든다. 그러한 결말로 순간 성에 대한 논란을 참으로 하찮게 만든다.

 

그외

1. 당신은- 이라고 주인공을 서술하는 문장들은- 마치 또 다른 제3자의 관찰자를 생각하게 한다. 그 관찰자의 시각은 인철의 변화에 슬픔을 느낄 것인가, 어쩔 수 없다 무덤덤해 할 것인가- 생각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의 반복은 약간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생각한다. 2인칭이 아니라 3인칭의, 아버지는 당신의 책을 소중히 여기셨다 처럼 재귀 대명사의 ‘당신-‘처럼 쓰인 것 같은데 반복적인 ‘당신은-‘은 좀 갸우뚱해지는 느낌이 있다. 작품의 화자가 계속해서 쓸 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1. 사이 사이 몇 몇 문장들은 마치 시 같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다. 미사어구가 있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거칠고 어두운데도, 그 속에 ‘감정’이 담겨 있어 절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중 하나를 꼽자면- 현영과의 이별을 기정사실로 한 인철의 심리를 묘사하는 아래 문장이었다.

화려한 밤거리는 축제 같은 악몽이었다. 칠흑 속에서 유일한 빛이 되는 담뱃불을 붙이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빨리 꺼지도록 계속해서 들이킨다.

 

1. 이 작품은 퀴어 소설인가? 주인공 인철이 여성 하사관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 그녀가 현영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이후 인철의 심리 변화에 큰 영향을 주는 면도 분명히 있지만 너무 짧게, 가볍게 동성애를 소비하는 느낌도 있었다. 굳이? 싶은 장면인 것. 퀴어에 대한 부정적 평을 하는 게 아님은 아실 것이다.

 

 

이 작품은 97매의 단편으로 과하지 않게 시간을 내어 읽어봄직한 분량이라 생각한다. 혹 이 리뷰를 보고 관심이 생기신 분들이라면 읽어보시길 권한다. 보시는 분들에 따라 꽤 다양한 다른 생각들이 나오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참 궁금해지는- 곱씹어 볼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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