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진행하기 전에 “소설 리뷰”라는 것에 대한 현재의 생각을 밝혀 두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설 리뷰”에서 작가의 장점을 드러내는 것을 “미덕”이라고 계몽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만 공감하고 있습니다. “미덕”도 좋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독자의 “솔직함”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더 자세히 기록해 보겠지만, (“브릿G 기행”이라는 정체불명의 글을 구상 중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장점을 드러내게 해주겠다며 작품을 미화하는 걸 피하고 싶은 리뷰어의 수련 중 하나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부분을 드러내는 걸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리뷰”는 소설 원작자의 작품이 아니라 리뷰어의 작품이기에 원작에 대한 어떤 평가도 사실은 리뷰어의 자질이나 수준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명의 리뷰어가 어떤 작품에 대해 졸작이라며 온갖 헛점을 다 드러냈다고 해서 실제 그 작품이 졸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생각있고 진심어린 독자라면 반드시 원작과 리뷰를 비교해서 읽어보고 스스로 판단할 것이라고 믿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리뷰는 되도록이면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고, 그 안에 약간의 폄하와 개인적인 옹호가 들어있을 수 있고 그건 오롯이 리뷰어의 몫입니다. 따라서, 작가는 리뷰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되 크게 단정지을 필요가 없으며, 리뷰어는 노골적인 비난과 지나친 왜곡을 피하되 최대한 솔직한 생각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봅니다. 어처구니없는 리뷰라도 삭제해달라느니 고쳐달라느니 하는 요청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쪽입니다. 리뷰어의 한심함이 조리돌림 당하고 있는 경우일 수도 있다고 담담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리뷰도 그 중 하나일 수 있겠습니다.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의 문화 콘텐츠들을 좋아하는 어른들이라면 어린 시절 자기가 좋아했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고 좋게 포장되서 “애틋함”이지 사실 애틋하다기보다 온갖 유치한 감정들의 쓰나미였을 겁니다. ‘이건 나한테 완벽한 작품이야’를 시작으로 ‘왜 이 작품에서는 이런 식으로 엔딩이 되지’, ‘주인공은 왜 이러는 거야’를 거쳐 ‘왜 다음 작품이 나오지 않는거야’ 하는 투정까지.. 심하면 영화 “미저리”가 되기도 하죠. ^^;;
“어느 편집장의 편지”는 문화콘텐츠 소비자들이 흔히 경험하는 따뜻한 기억과 바램에 관한 작품입니다. 친근한 문장들로 조용히 독자들의 추억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특정 독자들에게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가상의 인물과 작품을 활용하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사회에 막 첫 발을 디뎠을 나이쯤에 읽었더라면 아마도 오랜 여운을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적을 나이쯤 – 신해철님의 가사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 – 되고 보니 이 따뜻한 두 통의 편지가 사람들이 간직해야 할 온정보다 어린 시절 순수함이 다 씻겨나가기 전에 저질러 보는 투정에 가깝다고 생각되더군요. 이런 행복한 만행(?)은 그런 시절에나 가능한 법입니다.
편집장이 된지 오래된 “필립 노먼”이 쓴 편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마추어같은 순수함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만화잡지에서 근무해 본 적이 없어서 섣부른 소리일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회사라면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프로젝트는 함부로 공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고소의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도 지켜질지 알 수 없는 프로젝트를 중간에 독자들에게 상황보고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화책을 단행본으로만 볼 뿐 만화잡지나 만화커뮤니티는 잘 들어가는 편이 아니라서요 ^^;;
언뜻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씌여지기도 했을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다지 개연성이 없어보입니다.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어서 응답하는 상황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경우라면 굳이 “피터 모리스”라는 인물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두번째 편지는 첫번째 편지에서 잘 발견되지 않았던 비밀들이 드러나면서 재미적인 요소를 확실하게 살려줍니다. “피터 모리스”가 은둔하게 된 이유가 아내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어 상황을 흥미롭게 만들지만, “피터 모리스”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필립 노먼”이 딸을 잃었다는 설정으로 인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둘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나는 딸을 잃은 슬픔을 극복했으니 당신도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현실에서의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하기 힘든 말입니다. 사회생활을 충분히 하고, 만화잡지의 편집장이라는 위치에 있다면 개인적인 친분이 거의 없는(?) – 오래 전에 파티에서 만나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기억 밖에 없는 – 중요 인물에게 개인적인 바램이 담긴 편지를 일방적으로 보내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 열혈 팬이어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말조차 꺼내서는 안되는 – 더구나 부탁은 더욱더 안되는 –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봅니다. 설령 마음 속으로는 애가 타더라도요.
그렇기에 이 작품은 흥미롭습니다. 분석적으로 보면 허술한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읽고 있으면 그런 부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거든요. 완전무결한 소설은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어떤 작품에나 있을 조그만 틈도 쉽게 발견되지 않도록 독자를 휘어잡는 걸 흡입력있게 썼다고 표현한다고 생각하며, “어느 편집장의 편지”는 그 결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판단됩니다.
작품 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도 있습니다. 작가이름이 “하나와 앨리스”인데, 이와이 슌지의 영화제목에서 따온 이름으로 보입니다.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릴리슈슈의 모든 것” 등으로 유명했던 영화감독님 – 다른 일도 많이 하셨지만 – 이셨는데,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비하면 지금은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혹시 “피터 모리스”의 모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시절에 영화를 아주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취향에 상관없이 한번은 봤어야 할 영화들입니다. “4월 이야기”가 극장에서 개봉된 뒤 상영시간이 60분 밖에 되지 않자 논란이 있었는데, 재밌는 토론이었던 것이 기억됩니다. 영화관람료는 좋은 작품을 보는 것에 대한 비용이고, 좋은 작품과 완성도는 시간에 굳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정도의 잠정적인 결론이 지어졌던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항상 불안불안합니다. ^^;; “4월 이야기”는 지금 봐도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상영 시간이 60분에 불과한 것도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와 앨리스”라는 작가는 현재 “어느 편집장의 편지” 한 편만 공개한 상황입니다. 이대로 은둔한다면 가수는 자신의 노래가사처럼 살게되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처럼 살게 된다는 허무맹랑한 격언처럼 될지 흥미롭습니다.
생각난 김에 “이와이 슌지”를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찾아보니 2017년에 배두나 배우를 주연으로 “장옥의 편지”이라는 작품을 만드셨네요. 시간될 때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 혹시 “어느 편집장의 편지”가 이 제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