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의 슬픔 공모

대상작품: 간극 (작가: 피커, 작품정보)
리뷰어: 선작21, 18년 12월, 조회 49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는 결말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글의 제목이 ‘간극’이란 것에서부터, 내가 남자친구가 있고 K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에서부터, 아니면… 뭐, 그냥 지금이 겨울이니까, 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여하튼 이 글의 인트로가 끝났을 때, 결말이 ‘그랬던 K가 지금은 제 옆에서 곤히 자고 잇내요 ㅎ’가 될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내러티브에 쓸 공간을 다른 데에 쓸 수 있는 공간 절약이니까요. 결말을 아는 만큼 글에 집중하게 되잖아요?

뷰티풀 선샤인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글의 연출은 그 영화 같습니다. 피커님 글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장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미려한 연출이고 다른 하나는 문체입니다. 이 글 역시 그 두 개가 아주 잘 보입니다. 이를테면, 서점에서의 다이얼로그. ‘드루와 드루와’를 감싸는 문장들… 대사가 ‘살아있다’ 는 건 힘든 건데 피커님은 참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네요. 부럽다…

다만, 조금 보완했으면 하는 점이 있기는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 내러티브에서 떼어낸 공간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 힘듭니다. 내러티브가 지나치게 거칠어요. 서점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세계화로, 겹받침으로, 느와르로, 이소라와 ‘간극’까지… 제가 좋아하는 피커님 문체의 힘으로 부드럽게 넘어갑니다만, 어딘가 군데군데 비어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 서술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거의 고백하다시피하는 그 순간에 안타까움이 적어집니다. 독자가 나에게 이입을 해야 되는데 이입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글은 ‘날 것’ 같습니다. 내러티브는 러프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공되지 않은 감정이 잘 살아있습니다. 기억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수습되지 못한 감정을 그러모아서 허겁지겁 찢어버리는, 그런 게 오히려 좋았던 것 같습니다. (때마침 제가 이니셜이 K인 일본인을 좋아했다가 실패한 기억이 있어서인것 같기도 하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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