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장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우주탐사선 베르티아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8년 11월, 조회 61

엔지니어, 물리학자, 수학자가 각자 자기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 불이 났다.
엔지니어는 재빨리 물 한 통을 가지고 와서 퍼부었다. 불은 꺼졌으나 방안이 온통 물에 젖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물리학자는 먼저 불의 열량을 측정하고 물의 양을 계산해서, 정확한 양의 물을 가지고 와서 불을 껐다. 그 사이에 불이 조금 번져 탄 자국이 남았지만, 그 이외에 방이 더러워진 곳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수학자는 방에서 탄 체로 발견되었는데, 그 옆에는 “해결 가능함!” 이라고 적힌 쪽지 조각이 발견되었다.

해도연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던 것은

이네요. 자게를 통해 리뷰 의뢰를 받았고 그래서 읽어 봤습니다. 재밌었죠.

앞으로 이 작품들의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재밌으니까 읽어봐요. 그리고 이 리뷰도 잘 부탁드립니다.

 

해도연 작가의 SF들에서 특징을 간추릴 수 있을까요?

리뷰 서두에 쓴 수학자 개그가 그 특징이라고 하면 억지일까요?

해도연 작가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해일’을 잘 만드는 작가입니다. 물론 그 해일이 압도적인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의미가 있기에 가능하죠. 하지만 그렇게 잘 만들어진 개인이 가진 의미들-소중한 것, 욕망, 기타 서사 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결국 하나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리고 그걸 하는 순간 세계에 압도됩니다. 세계는 대체 왜 그렇게 움직일까요?

작품 바깥으로 잠깐만 나옵시다. 인류는 세계의 작동원리를 파해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택했죠. 그래요 과학이요. 세계가 그렇게 움직이는 까닭은 과학적이기 때문입니다.

해도연 작가의 글이 SF로 읽힌다면 이 때문이겠죠. 개인과 무관하게 세계는 움직입니다. 왜 그러냐면 철저히 과학적인 이유로요. 그러나 해일로 이야기가 끝날까요? 아니면 해일또한 지나갈 뿐이고 어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일까요.

블루베리 초콜릿 올드패션은 해일을 집적적으로 보여주진 않아요. 그리고 어떤 구체적이고 특정한 기술이 나오는건 아닙니다. 주인공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지만, 그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건인지 구체적으로 암시되진 않지만 독자도 그걸 풀기 위해 낑낑대죠. 그러다가 독자들은 주인공이 수수깨끼를 풀기 위해 뭘 선택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광고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만나죠.

위대한 침묵은 해일이 덮치면서 이야기를 완전히 끝내버립니다. 따로 해설이 필요할까요? 갈등의 절정에서 위대한 침묵이 모두에게 강요됩니다. 아마 다음은 없겠죠. 마침표가 찍혀버렸으니까요.

따뜻한 세상을 위해서는 블루베리 초콜릿 올드패션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를 보여주죠. 주인공이 직면한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해 주고, 해결도 해 줍니다. 그러나 이 불쌍한 주인공의 운명에 마침표를 찍어주진 않아요. 그래서 7번째 시술을 마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테스트가 끝난 다음에 세계는 어떻게 움질까요? 해일이 포말이 된 다음에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마리 멜리에스는요? 마리 멜리에스에서 명확한 답이 나오나요? 마리 멜리에스는 어떻게 할 수 있었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미 하기로 결정했죠. 작가의 말을 통해 외부적으로도 이 이야기는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해주고, 그동안 어떻게 이걸 복원했는가에 대한 노력을 그려요.

작가가 해일을 잘 그린다고 말했죠. 그 해일은 등장인물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어요. 지금도 목성에서는 지구보다 큰 태풍이 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리는 목성에 부는 태풍보다 우리의 소중한 사람을 위협하는 찬 바람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걸요. 마리 엘리어스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작품이었죠.

그러나 기억이 복원된, 그러니까 해일이 몰아친 그 다음은 여전히 언급되지 않아요. 가장 결정적인 그 순간 작가는 침묵을 지킵니다.

우주탐사선 베르티아에서 약간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그거였어요. 저는 이 세계가 인간들이 뉴런이란걸 깨닫고 사멸한 시점에서 멈출줄 알았어요.

이미 필요한 과학적 원리는 충분히 묘사되었고, 인류는 우주에서 고독하며, 수수깨끼는 풀렸으니, 수학자는 다시 잠이 들 줄 알았죠. 지금까지는 이걸로도 충분했으니까. 대신에 이야기는 다음장으로 넘어갑니다.

그 이야기에 대한 호오는 언급하지 않을께요. 다분히 취향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러나 분명한건, 해도연 작가의 다음 SF에 대한 기대치가 좀 더 올라갔단 점입니다. 해일을 잘 만드는 작가가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