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멜리에스

  • 장르: 로맨스, SF | 태그: #로맨스 #SF #마인드업로딩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 평점×48 | 분량: 124매
  • 소개: 기계화학자 유진은 마리 멜리에스 계곡 가장자리에서 계곡과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간 하루를 떠올린다. 마리 멜리에스와 보낸 마지막 하루의 풍경을 눈 앞에 펼치며 달과 별이 떠오르길 기... 더보기

마리 멜리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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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수 연구소에서 서쪽으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엔 화강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마리 멜리에스 계곡이 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계곡 밑을 조용히 흐르는 얕은 강물과 그 옆을 둘러싼 조그맣고 새카만 숲은 아름다웠다. 특히 해질녘이 되면 울라토 마을의 평원을 가로질러 온 붉은 햇빛이 계곡을 가득 채웠고,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저녁마다 마리 멜리에스의 가장 높은 언덕으로 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따뜻하게 물든 날, 언덕 위로 모여든 열댓 명의 사람들이 서쪽 하늘을 보며 감탄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무리 가장자리에서 홀로 계곡의 동쪽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한때 엘리스-수 연구소의 직원이었던 유진이었다. 유진은 화강암 절벽을 비스듬하게 나누고 있는 붉은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유진은 귀를 기울였다. 뒤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계곡 아래에서 조용히 메아리치며 퍼져나갔다. 마리 멜리에스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만큼 선명하고 생명력이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일상일 뿐이었고, 관광객들에겐 붉은 노을빛이 비친 계곡 광경 만이 중요했다. 한때 유진은 마리 멜리에스에 올 때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치고 대화를 했다. 유진은 마리 멜리에스의 살아있는 듯한 메아리를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은 아무 말도 없이 언덕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입을 열면 당장이라도 마리 멜리에스가 대답하면서 대화가 시작될 것만 같았지만, 유진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곧게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자기가 작은 소리라도 내면 마리 멜리에스가 눈치채기라도 할 것처럼.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하늘도 차가움을 되찾자, 사람들이 조용히 언덕 아래로 내려가 마을과 호텔로 사라졌다. 이제 언덕 위에 남은 건 유진 뿐이었다. 유진의 시선은 동쪽의 낮은 하늘로 향했다. 보름에서 며칠이 지나 오른쪽 가장자리가 검게 흐려진 커다란 달이 지평선 위로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은 허리춤에 걸려있는 투박한 쌍안경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달빛과 함께 지나간 일들이 유진을 스쳐 지나갔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