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내면 사이에서 탄생한 밀실의 고찰 <죄로부터> 의뢰(감상)

대상작품: 죄로부터 (작가: 태희,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7시간 전, 조회 6

 

 

목차

1.밀실이라는 이름의 테마파크

2.환상의 공간? 현실의 공간?

3.매력적인 서사는 어디에서 완성되는 걸까요?

4.마무리하며.

 

 

<본 리뷰는 태희님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작성한 리뷰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1.밀실이라는 이름의 테마파크

 

평범한 인간을 출구 없는 밀실에 가두고 그 처절한 발버둥을 탐미하는 이 장르의 기원은 불분명합니다만, 인간을 위협하는 환경이 광활한 오지가 아닌, 몸을 가누기조차 버거운 ‘밀실’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근원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을 넘어,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공간을 제시하는 것에 있습니다.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질수록, 그 환경은 인간에게 탐험과도 같은 성격을 띠게 됩니다. 하지만 ‘밀실’로 제한되는 환경은 단순히 일상과의 단절을 넘어 극복하기 힘든 재난처럼 비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작자들은 이 ‘밀실’이라는 환경을 구성하는 데에 제법 많은 힘을 쏟기 마련입니다. 채 몇 평으로 제약되는 공간이라는 건조한 환경 속에서도, 그 공간 자체가 매력을 줄 수 있어야한다는 역설을 끊임없이 연구하게 되죠. 즉, 밀실이라는 이름의 ‘작은 테마파크’를 설계하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죄로부터>라는 작품을 말할 때, 이 ‘밀실’이라는 환경을 다루고자하는 여느 창작물들에게 있어서 되짚어볼만한 지점이 있다 평가할 수 있습니다. 몸을 찌그러뜨리다시피 해서 기어가는 것만 겨우 허용되는 작은 통로를 제시하고, 그 안에 갇혀 공황에 빠지는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여느 창작물들과 결을 같이 하지만, 그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기 위한 방식 면에서 살펴보자면 무척 정석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죄(罪)’ 그 자체를 형상화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형상화에 치우친 나머지 이 장르 내에서 갖춰야하는 각종 요소들이 무시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감평문에서는 <죄로부터>가 ‘밀실’이라는 테마파크를 완성하는 방식과 더불어, 그 ‘밀실’이 주는 제약을 해결하는 방식을 분석해보고, 이 작품이 서사적으로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2.환상의 공간? 현실의 공간?

 

흔히 이 장르 내에서 ‘밀실’이라는 공간은 인위적인 속성이 가미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동굴이나 지하 같은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도 밀실로서 제시되지만, 그런 공간에서조차도 변수는 항상 인간에서 비롯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목적지를 잃은 지도자, 벽과 바닥 등 공간에 변형을 준 흔적들이 그런 예시 중 하나죠.

 

왜 그런 인위적인 요소가 가미되는가를 따지고 보면, 이 밀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환경면에서 무척 제약적이기 때문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탐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변수도, 더 나아가 그런 공간에 갇힌 인간의 모습까지 획일화되고 건조화 되는 것이 밀실의 속성입니다. 구치소의 창살처럼 그런 변수를 의도적으로 줄이기 위한 공간도 있기 마련이지만,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어떤 식으로도 움직임을 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멈춰 있는 롤러코스터에 몸을 싣고 있는 장면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제가 <죄로부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이 작품이 만드는 ‘밀실의 형태’였고, 그 다음으로 ‘밀실이라는 제약의 해방’ 방식이었습니다. 여느 창작물에서 그런 제약을 벗어나는 방식이야 교과서처럼 제시되어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인물의 수를 늘리거나, 그 공간에 침입하는 위협을 만들거나, 혹은 그 인물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처럼 아예 다른 컷(cut)을 삽입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그 방식을 염두에 둔 채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며 <죄로부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이 공간은 어디인가?

둘째, 이 공간은 현실인가? 혹은 환상인가?

 

우선 첫 번째 질문을 시발점으로 이 작품을 살펴봅시다. 작품은 주인공이 ‘밀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에서 눈을 뜨며 공황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위협하는 ‘밀실’은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P5). 그가 있는 곳은 마치 관 같았다. 어깨를 살짝만 비틀어도 벽면에 닿을 만큼 비좁은 (중간생략)정말 딱 사람 한 명 누울 수 있는 네모난 통로였다.

 

표면적으로 이 공간 자체는 무척 인위적이고, 또 현실적입니다. 도입부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환풍구를 닮은 공간을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죠. 그만큼 이 공간 자체는 익숙하게 설계되었다는 뜻입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없이, 비좁은 통로를 끊임없이 기어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이 공간은 ‘밀실’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P23). 그는 어쩌다 자신이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간생략)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산산조각 나 흩어져 있는 기억들 가운데 어렴풋이 어떤 노인의 얼굴이 기억을 간지럽혔다.

(P40). 그건 징그럽게 생긴 벌레였다. 그 벌레와 숨 막히는 눈 맞춤을 하고 있는데 벌레가 점점 그에게로 다가왔다.

 

곧이어 등장하는 ‘노인’에 대한 기억과, 통로를 기어 다니며 주인공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벌레’는 이 공간의 정체에 대한 암시면서, 이 공간이 여느 창작물 속의 밀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장치로 여겨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표면적으로 제시되는 이 밀실은 극도로 협소합니다. 사물과 인간이 끼어 들 공간이 물리적으로 제약되고 있죠. 이런 공간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변수란 어떤 노인에 대한 기억과 존재하는 것이 이질적인 벌레무리처럼, 무언가에 대한 복선처럼 암시됩니다. 즉, 이 작품에서는 해당 공간에 대한 완성은 환경의 외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의미로도 읽혀집니다. 그로 인해 이 작품은 곧 이 환경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통로 끝자락에서 발견됩니다.

 

(P57). 쇠창살 너머에는 사무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중간생략)쇠창살 너머의 사무실도 그가 일하는 법무법인 사무실이었다.

(P93). 쇠창살 너머 사람들의 대화를 계속 듣고 있던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 대화는 분명 얼마 전 그가 직원들과 했던 대화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통화 내용까지 똑같았다. 그 전화는 신망 받던 인권 변호사인 그가 제1야당에 도지사 후보로 공천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당의 공천 관리위원장이 직접 걸어온 전화였다. 이틀 전인가 사흘 전인가 그는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 했지만, 바로 얼마 전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지적하자면 이 장면은 <죄로부터>를 읽고 있는 독자가 작품의 성격을 규정짓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됩니다. 이 순간부터 주인공이 갇혀 있는 밀실이 완벽한 ‘환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그 자체도 시간적으로 어긋나는 광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배경적 상황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앞서, 공간 자체를 환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야말로 밀실로부터 나오는 제약을 벗어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언급했던 만큼 이 구성은 무척 영리하며 정석적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기억도 없이 환풍구나 다름없는 공간에 갇힌 것도, 이 공간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도, 느닷없이 쇠창살로 가로막힌 풍경 너머로 사무실이 보이는 것도, 모두 환상성이라는 설정 아래 개연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관찰되는 사무실의 풍경이 며칠 전의 시점이라는 것을 더하면, 앞으로의 전개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단서를 찾아갈 거라는 전개야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P123). 쇠창살 너머에는 과거의 그가 운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간생략)도로를 질주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형체가 차 앞에 나타났다. 이런 늦은 시간에 누군가 도로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P164). 노인의 시체를 들쳐 업고 환풍구 쪽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시체를 환풍구 안으로 다리부터 밀어 넣었다.

 

그는 앞서 발견했던 쇠창살 너머로, 자신이 저질렀던 ‘죄(罪)’의 진상을 되살립니다. 도지사 공천이 확정된 이후 한 노인을 차로 치었고 시체까지 유기했던 중범죄를 저질렀던 것이죠. 즉, 이 공간은 노인의 시체를 유기했던 환풍구라는 배경이 모종의 이유로 그를 가둔 것이며, 벌레와 쇠창살은 죄를 지은 그를 위해 준비된 형벌이나 마찬가지였죠. ‘쇠창살’이라는 소재가 주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감옥’과도 결을 같이 하는 셈입니다.

 

(P187). 그는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출구를 향해 기어 나갔다. (중간생략)뒤에서 무언가 그의 발목을 잡고 거세게 끌어당겼다.

 

결국 작품은 자신이 죽였던 노인의 시체에게 붙잡히는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결말에 대해서는 ‘자신의 죄에서 도망칠 수 없다’라는 관습적인 주제 혹은 그 이상의 해석을 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주제 자체를 표현하려고 했던 이 공간의 환상성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환상성이란 무엇이든 구축할 수 있는 편리한 재료입니다.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제약을 가장 과장된 방식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이 재료의 속성이죠. <죄로부터>가 환상성으로 구축하고 있는 ‘밀실’의 형태는 이런 ‘죄(罪)’라는 소재의 형태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돌려받고, 감옥과 수갑에 묶여 자유를 박탈당하는 여느 이미지들은, 이 작품에서 분명한 모습으로 형태화가 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배경과 사건에 함의된 것이 아닌, 주제와 본성 같은 추상적인 요소 그 자체를 형태화 하고 있는 듯한 인상 비롯됩니다. 흔히 사건과 배경에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제시하곤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먼저 염두에 둔 채로 사건과 배경을 조립했다는 구성이 선명한 편입니다. 인과를 파악할 새도 없이 환풍구 안에 갇힌 주인공이며, 우연처럼 나타나 죽음을 맞이한 노인, 그리고 이 환상적 밀실에서 눈을 두는 곳에 영화처럼 펼쳐지는 과거 회상들까지. 각종 요소들이 그 이정표만큼은 무척 뚜렷하다고 할 수 있죠. 이 때문에 독자들은 <죄로부터>를 읽으며 주인공의 감정에 동기화되기보다, 우리에 갇힌 흉물을 구경하는 관찰자 혹은 ‘관광객’의 시선에 머물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죄로부터>는 해당 장르에서 무척 정석적인 장치들을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작가 본인의 의도가 곧 발상이 되었다는 것이 자명한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 자체는 서사적으로 무척 안정적인 편입니다. 낯선 환경에 처한 주인공의 반응 및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는 이음새 등 그 기술적인 면에서 커다란 흠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한 번 소설을 잡으면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을 만족스럽게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그런 안전성이 익숙한 배경과 검증된 구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죄책감이라는 요소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이 환상적인 밀실이 충분히 활용되었다는 인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감옥과 같은 배경에서도 창작자는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장치를 궁리하기 마련입니다. <죄로부터>가 작가님의 의도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장르적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변주 면에서 그런 시도가 부족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그런 시도만으로도 이 작품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매력적인 서사는 어디에서 완성되는 걸까요?

 

흔히 작품에 있어서 ‘서사’라는 단어로 그 구조를 설명하곤 하는데, 줄거리와 같은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제쳐두고 ‘서사’라는 단어를 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관객과 독자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줄거리’가 아니라, 매력을 줄 수 있는 ‘서사’라고 한다면 더 평가항목이 더 세심하게 나눠지는 것이 보통이죠,

 

단순한 이야기의 줄거리가 아니라 ‘서사’를 따지기 시작한다면 그 폭은 넓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부르는 서사란 인물, 사건, 주제를 두루 살펴서 발견되는 특유의 결을 따지기 마련이니까요. 앞서 <죄로부터>의 서사가 안정적이라고 언급했지만, 그것이 곧 완벽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빈틈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던 환상적 요소를 활용하는 시도가 부족했다는 것에서 기인할 수도 있지만, 몰입감이 있는 서사 면에서 보자면 그 발전방향을 몇 가지 제안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첫째는 디테일입니다.

 

이 작품 자체가 주제 면에서는 그 형태화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르적인 컨셉을 따지자니 인물 면에서 그 디테일이 아쉽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밀실이라는 배경이야 관습적인 이미지를 차용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서 헤매고 있는 주인공은 훨씬 복잡한 인간상을 표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사실 독자로서는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무척 제한적인 편입니다. 추측하건데 정치에 연줄을 둘 정도로 배경이 좋은 변호사라는 것과, 뺑소니 사고로 이름 모를 노인을 죽이고 시체를 유기했다는 과거가 전부라고 할 수 있죠. 아마 작가님께서는 이 뺑소니 사고에 집중하기를 바랐을 듯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야당에 공천을 받았다는 그 거대한 배경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떠올려보면,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에게 공천을 준다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닙니다.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같은 자리도 한 석이 급한 야당 입장에서는 그 인지도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텐데, 시장도 아니고 무려 도지사라는 자리에 공천을 줬다는 것만 봐도 정치적 중량감이 상당하다는 방증입니다. 물론 텃밭이라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된다는 것을 보면 인물적인 인지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인물 상관없이 당만 보고 찍어줄 수 있는 지역이라면 당 차원에서는 자원하는 후보가 적지 않을 텐데, 외부인(혹은 평당원)인 주인공이 마땅한 경선도 없이 후보로 낙점된다는 것도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닙니다. 즉, 주인공은 각종 정치인과 연줄이 많은 것을 넘어 적수가 없는 거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배경이 곧 주인공이라는 인물을 완성시키는 서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이 도지사가 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사람들과 엮여 있는지, 그 목적을 위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렸는지……. 오히려 이런 배경이 교통사고로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우연적인 사건보다 더 많은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배경을 활용하기 보다는, 사람을 의도치 않게 죽였다는 ‘죄(罪)’라는 컨셉에 지나치게 충실한 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에 시체유기까지 당한 노인은 그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완벽한 도구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결국 이 작품에서 ‘인물’이라는 역할에 부합할 수 있는 존재는 주인공뿐인데, 막상 그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그 특유의 주제만이 관찰되는 무언가로 비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님이 이야기를 잘못 쓰셨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재료들을 준비해놨는데 활용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는 밀실입니다.

 

앞서 해당 장르를 다루는 창작자들이 ‘밀실’이라는 배경을 ‘테마파크’처럼 제작한다는 비유를 언급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이 공간이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이 공간 자체가 주요 사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관성에 따른 것에 가깝습니다. 바다에 뗏목을 타고 나가서 조난당하고,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곰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죠. 결국 그 공간 자체가 주인공에게 긴장감을 일으키는 ‘적대자’로 작용하는 흐름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죄로부터>에서 등장하는 밀실은 다소 건조하고 공허한 묘사가 눈에 띕니다. 그 배경은 도입부에서 느끼는 인상처럼 환풍구 통로를 거의 흡사하게 차용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벌레와 시체처럼 주인공이 벌인 일에 대한 상징적 암시가 대부분입니다. 영화 <쏘우>에서 시체가 쓰러져 있는 화장실이라는 배경이 먼저 떠오르고, 영화 <큐브>에서는 사방으로 입구가 연결된 사각의 방이 떠오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만한 배경적인 인상이 부족한 편입니다. 배경적인 가장 큰 특징은 과거를 보여주는 쇠창살로 지목되는데, 그것은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일 뿐 사건으로 작동하는 무언가는 아닙니다.

 

사실 이런 작품에서 관찰되는 사건의 배제는, 모든 사건이 이미 완료되었다는 독특한 전제에서 비롯됩니다. 교통사고, 시체유기 등 대부분의 사건은 이미 과거에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자명하며, 끝나지 않은 것은 주인공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 ‘죄(罪)’ 그 자체입니다. 이 작품이 사실상 환상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하면, 작품 내에 시행되고 있는 사건이 없다는 인상으로도 다가옵니다. 작품 내에서 실존적인 위협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의외로 이런 아쉬움은 이 배경을 현실로 정제한다면 해소될 수 있습니다. 가령 주인공이 모종의 이유로 누군가에게 납치되었고, 인위적으로 개조된 환풍구에 강제로 갇혔다면 그 자체로 무언가 시작될 여지가 있죠, 반드시 이런 전개를 따라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서사란 현재에서 움직이는 주인공의 갈등과 선택이 영향을 끼칩니다.

 

단순히 기어가고 도망치는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이 기묘한 밀실 안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혹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전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본다면 이야기는 훨씬 풍성해질 것입니다. 과거의 죄를 보여주는 밀실을 넘어, 현재의 주인공을 몰아세우는 밀실로 진화할 때 이 작품의 서사는 비로소 완성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4.마무리하며.

 

비록 장르적 관습에 따른 몇 가지 아쉬움을 짚어보았으나, <죄로부터>가 보여준 몰입감과 주제를 향한 집요한 시선은 결코 가볍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독자를 밀실이라는 공간 속으로 단숨에 끌어당기는 작가님의 필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며, 작품을 통해 보여주신 죄와 벌에 대한 탐구는 충분히 강렬했습니다. 비판적으로 다룬 몇몇 지점들은 작가님께서 가진 큰 역량이라면 금세 해결하고 넘어설 수 있는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고민이 밑거름이 되어, 앞으로 작가님만의 독보적인 색채가 담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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