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느리고 지루하고 정석적인 방법이 답이다 감상

대상작품: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 (작가: Xx,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2시간 전, 조회 5

‘본캐’로 돌아가서 리뷰를 써 보려고 한다.

내 본캐? 나는 마녀다. 무당이 있는 것처럼 현대에도 마녀는 있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마법과 주술과 연금술을 민속학 수준으로 연구하는 취미가 있는 과학도’ 정도로 생각해주기 바란다.

그냥 미친인간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아무튼 그런 시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 섬뜩함의 질감이 달라진다.

 

[애정 주술의 위험도에 대하여]

저주를 하려고 하면 무덤 자리를 두 개 준비하라고들 한다. 그만큼 저주와 관련된 주술은 위험도가 크다. 그런데 저주만큼이나 위험한 주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애정과 관련된 주술, 그것도 특정인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단순히 본인의 매력도를 올리는 주술은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가 나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같은 방식—특정인의 마음을 강제로 이쪽으로 돌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주 드물게 그런 의뢰를 받으면 나 또한 단호하게 쳐낸다. ‘본인의 매력을 올리거나 연애 또는 불특정 다수를 만날 기회를 늘리는 건 가능해도 그건 불가능합니다’라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너무나 낮고, 가장 중요한 건, 성공했을 때의 위험도가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누군가를 죽이려는 저주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했을 때 풀기가 더 어렵다.

그 의도 자체는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지만, 상대의 마음을 강제로 이쪽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이런 주술은 악의가 넘칠 수밖에 없다.

“악의가 넘치는 주문이니까요.”

“이건 차라리 처음부터 누군가를 망가뜨리기 위한 저주에 가까워요.”

이 소설은 그 주술을 성공시켰을 때의 공포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왜 하필 세 번인가ㅡ3이라는 숫자의 주술적 중요도]

3이라는 숫자는 주술과 마법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원은 세 번 그리고, 주문은 세 번 반복하며, 여신은 세 가지 얼굴을 한다. 어느 원시문화권에서는 1, 2, 다음은 ‘많다’이다. 기독교에서도 신은 삼위일체를 이루고, 현실에서 최초의 도형—삼각형—을 구성하는 점의 개수는 3개다. 신화나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9라는 숫자 또한, 3의 배수이다. 동서양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3은 완성과 순환, 그리고 힘의 결집을 의미하는 매우 상징적인 숫자다.

그렇다면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낭만적 표현이 아니다. 창포꽃을 세 번 접는 행위는 주술적 문법 안에서 일종의 ‘시전 준비 동작’에 해당한다. 백일 동안 날마다 세 개씩 접으라는 조건 역시 반복과 지속이라는 주술의 기본 원리를 따른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은 그 ‘세 번’만을 떼어낸다. 완성되기 전, 충분하지 않은 수. 채 이루어지지 않은 마음의 상태.

“차라리 창포꽃이라도 접을 걸”

윤정의 탄식은 그래서 더 쓰리다. 타인을 강제하지 않는, 느리고 번거롭지만 위험하지 않은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택하지 않고 코코 포리고리라는 지름길을 골랐다. 주술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 선택의 순간이 이 이야기의 진짜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때문에 제목에서 ‘창포꽃’은 중요하지 않다. ‘세 번’이 중요하다.

 

[삼인성호(三人成虎) — 소문을 실체로 만드는 주술의 작동 원리]

삼인성호. 세 사람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여기에서도 3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주술적 방법을 통해 그 삼인성호로 ‘진짜 호랑이’를 만들어낸다.

코코 포리고리의 문장—’아가씨가 그러는데, 나랑 ○○이 사귄다더라’—은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늘 들려오던 말과 구조가 같다. ‘쟤가 너 좋아한대.’ ‘누가 그러는데, ~가 ~좋아한다더라.’

아이들은 그 말을 악의 없이 퍼뜨리지만 학교 안의 인간관계는 재편되고, 당사자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소문은 감정을 사후에 추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없는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코 포리고리는 이 유년의 소문 놀이(and, 서동요 전설)가 성인의 세계에서 초자연적 주술로 진화한 형태다. 아이들의 소문이 ‘말하는 사람 본인도 믿는다’는 순진함 위에 서 있다면, 이 주문은 시전자만 진실을 알고 나머지 전원의 기억이 조작된다는 점에서 훨씬 불균형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믿으면 세계가 재편된다. 마법과 주술은 언제나 집단무의식을 동력으로 삼는다.

주술사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코코 포리고리는 집단의 인식을 매개체로 삼아 현실을 조작하는 주술이다.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믿음을 동력으로 쓴다. 그것이 이 주문이 개인 단위의 애정 주술보다 훨씬 강력하고, 그만큼 훨씬 위험한 이유다.

 

[마녀로서의 결론 — 이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

이 소설은 주술을 다루는 픽션이 흔히 빠지는 함정—’신비롭고 아름다운 마법’의 낭만화—을 피해 간다. 코코 포리고리는 끝까지 저주처럼 작동한다. 성공해도 아름답지 않고, 풀어도 깨끗하지 않으며, 시전자 역시 그 힘에 잠식되어 있다.

주술사의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타인의 의지를 강제하는 힘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윤정이 치른 대가는 자신의 기억과 의지, 그리고 사랑의 정당성이었다. 지훈이 치른 대가는 3년의 연애 기억과 자기 이름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치른 대가는 ‘전 애인’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호칭이 될 것이다.

‘차라리 창포꽃이라도 접을 걸.’ 윤정의 이 한 마디가 소설 전체의 메시지이다. 느리고 번거롭고 성공도 보장되지 않지만, 타인을 강제하지 않는, 그리고 본인에게도 진실된 방법. 물론 세 번만 접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세 번밖에 접지 못한 꽃이, 주문으로 억지로 피운 꽃보다 낫다. 세 번이 시작이니까.

주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말한다. 이 소설은 찐이다.

작가님이 어린아이들 놀이언어로 된 주술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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