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권력 공모(감상)

대상작품: 자취의 기록자들 (작가: 창궁, 작품정보)
리뷰어: 냉동쌀, 2시간 전, 조회 7

기록은 인류의 본능입니다. 당장 기록의 나라라고 이름난 조선을 끌고 오지 않아도 우리는 수많은 나라가 남긴 역사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양권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의 기준이 되기까지 한 중국의 역사서도 있고, 어째서인지 미흡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서양권도 그 방대한 기록은 만만치 않습니다. 암흑기라는 이름까지 붙은 중세에조차 말이죠. 우리의 관심도가 낮을 뿐 아시아 대륙의 동남쪽, 남쪽, 서남쪽에도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기록이 있고, 야만적이고 마초적인 이미지가 있는 바이킹, 그들과 일찍이 교류해 온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도 모두 기록물이 있고, 이렇게 문화권으로 나누지 않고서도 우리는 수많은 원시인이 암각화를 통해 그들의 기록을 남겨왔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문학이라는 것도 기록의 일종으로서 발전했을지도 모릅니다. 최초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즉 구비문학의 형태로 내려왔지만, 문자가 발명되고 나서부터는 지금 우리가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하는 것처럼 점판에, 목책에, 종이에, 그리고 데이터 상에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기록 그 자체도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의 기록까지도 담겨 있다는 아카식 레코드라는 개념도 있고요, 심지어 이곳 브릿G에도 기록을 소재로 한 소설이 공개된 적 있습니다. 해당 소설에도 부족한 감상이나마 남긴 적이 있는데, 어째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와 도입부가 비슷해져 버리고 말았군요. 민망하네요.

기록을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는 작품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 소설에서도 기록은 우리가 사는 현실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록물과 기록하는 행위 모두 말이죠. 기록을 성실히 하지 않는 자는 게으른 자로 취급받으며 수치스럽다고 손가락질받는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필가까지 고용한다고 하는데, 일종의 필경사 같은 직업이 되겠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바로 궁극의 기록책입니다. 여느 전설이 그렇듯 궁극의 기록책 또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소설의 주인공 은하녘은 1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 누리거리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바로 궁극의 기록책은 실재하며, 자신이 그것을 확인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은하녘은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하지만, 오히려 거짓 기록을 전달하여 사람들을 현혹, 선동했다는 죄명으로 기록원에서 퇴출당하게 됩니다. 그토록 기록을 중요시하는 곳에서 거짓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는 아직 소설을 읽지 않은 분도 쉽게 예측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은하녘은 가족 전체가 비난을 받아 숨어 사는 처지에 이르게 됩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은하녘에게 누리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초의 섬은 실존한다. 새벽바다 건너, 끝의 바다와 어우러지는 그곳에 최초의 섬이 있단다. 그곳엔 최초의 기록자가 있고, 많은 자취민들이 입에 올리던 궁극의 기록책도 있단다. 나는 그곳에 단 한 줄을 기록하고 왔다.”

은하녘이 뭘 기록했는지 묻자, 누리거리는 직접 가서 확인하라고 독려합니다. 그렇게 은하녘은 최초의 섬을 찾아 서쪽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누리거리처럼 오랜 시간,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한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설득하여 끝내 허락을 받아냅니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도입부입니다.

이후 은하녘의 여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사건들은 모두 기록과 크게 밀접한 관련을 지닌 만큼,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는 다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판타지들입니다. 하지만 은하녘의 여정은 우리의 현실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령 이곳에서는 기록을 약탈하는 자도 있고, 자취에 거짓말이 횡행하도록 내버려두는 기록원장도 있습니다. 즉 기록을 보유하고 저장한다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 간의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격언은 다들 역사 공부를 하며 자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현실에서도 수많은 권력자가 타인의 기록을 말살하고, 새로운 기록을 조작하며, 어쩌면 그것이 역사로까지 남게 합니다.

그러나 철학자 존 로크는 사유재산권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자연물에 노동이 투하된다면 그것은 노동자의 소유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노동은 곧 인격이며, 노동이 투하되어 누군가의 소유가 된 재산은 곧 노동자의 인격 그 자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기록에도 마찬가지로 기록자가 들인 노력과 시간이 깃들어 있고, 기록을 통해서 존재가 고정되고, 소망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유대가 연결됩니다. 즉, 기록은 기록자의 인격인 것입니다. 따라서 기록은 오롯이 기록자의 것입니다.

은하녘과 그녀가 만나는 반동인물들의 사상적 대립은 권력자의 억압으로부터 저항하여 시민의 자유를 역설한 자유주의 철학자의 투쟁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철학은 산업 발전과 그에 따른 경제 성장에 발맞추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경제적 자유주의는 도리어 경제적 약자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장 전체의 활기를 저해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초기 자유주의 철학자가 본다면 상당히 상심할 만한 모습입니다. 본래 그들이 주장한 의미가 퇴색되고, 희미해졌다고 여길 테니까요. 이 소설 속에서 최초의 기록자가 스스로를 ‘희미’라고 소개하는 것은, 이렇게 해석한다면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이 리뷰는 다분히 기록과 권력의 관계에 치중한, 어쩌면 작가님께서 리뷰어에게 신신당부하신 ‘넘겨짚지 않을 것’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감상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 유일한 장기를 포기할 수 없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늦은 감이 있지만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넘겨짚은 내용 말고도 풍부한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주제와 어긋나는 것 같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름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가 전부 우리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그것과 연계되어 부계, 모계, 어느 쪽도 성씨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 그밖에 눈에 들어온 여러 글감이 있지만 그것은 다른 독자분들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기록을 독점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현실을 반영하여 환상적으로 표현한 흥미로운 판타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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