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콱 망해버려라! 공모(비평)

대상작품: 종말대환영 (작가: 라퓨탄, 작품정보)
리뷰어: 최현우, 17년 2월, 조회 71

실생활에서도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이놈의 세상, 콱 망해버려라!’. 뭔가 일에 크게 실패했을때, 하는 일마다 마치 절대적인 누군가가 확률을 마음대로 조작하며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외치곤 한다. 이것은 내가 그것을 갖지 못했으니 차라리 세상이 망해버려서 아무도 그것을 갖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못된 심보가 아니라, 지금 너무 괴로우니 뭐가 됬던 간에 차라리 끝내버렸으면 좋겠다는 자조적인 한탄에 가깝다. 물론 앞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만.

이 소설을 단순히 말하자면 망해버려라! 해서 진짜로 망해버린 케이스다. 소설의 주인공 준성은 그야말로 불행한 인생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보통 사람들은 한 두번 겪을까 말까 한 불행들이 그에게는 종합세트로 몰아닥친다. 소설상의 설정으로 인해 이렇게 된 거긴 하지만, 주인공 그 자신이 느끼기에는 정말 누군가가 그를 영원한 고통에 빠트리기 위해 일부러 조작한 상황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시골에 사는 어느 여고생과 몸이 뒤바뀌지도 않았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지구를 향해 소행성이 날아온다. 지구 멸망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주인공 준성은 평소 사랑하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철천지 웬수였던 사채업자를 찾아간다. 예상과는 달리 소행성 충돌로 인해 모든 것을 초탈해버린 사채업자는 비교적 따뜻하게 준성을 맞아준다. 그와 대화하면서 작가는 아마도 ‘금전이나 이익관계를 제외하고 나면 우린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라는 평화로운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가 아닌가 추측된다.

마침내 소행성이 충돌하였으나, 준성은 그가 그토록 바라던 멸망을 맞이하지 못한다. 그래서 뭔가 더 지구가 완전히 망해버릴 만한 게 더 오길 기대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좀 과다한 해석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마지막에서 준성이 유성과 지진과 헤일을 바라며 멸망을 그토록 간절히 바랬던 이유는 사채업자의 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생 천대받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그가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느꼈던 것은 멸망에 의해 초탈해버린 사채업자였다. 그 사실이 주인공의 머릿속에 ‘멸망+환대’로 뿌리박혀 멸망을 누구보다도 바라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지?

가볍게 읽기 좋은 SF단편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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