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을 평가 할 때 쉽게 등장하는 관용어구들이 있습니다. 재기발랄 하다, 기분 좋은 반전 같은 것들도 그중 하나지요. 그런 표현들은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피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평을 하는 입장에선 왠지 무책임하고 게을러 보일까 겁나고 창작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안될테니까요. 그럼 어디 한번 제가 천가을 작가님의 <막대과자는 톡 하고 부러진다.>에 대해 한마디를 남겨보겠습니다. 그야말로 재기발랄하고 기분 좋은 반전까지 있는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막대과자의 날, 교실에선 저마다 ‘중학생 답게 어른들의 상술에 걸려 준’ 풍경이 펼쳐집니다. 화자인 지연의 사물함에 의문의 막대과자가 하나 도착해 있습니다. 알아보니 앞자리의 혜인이의 사물함에도 들어있습니다. ‘누가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받은걸로 봐서는 고백 과자도 아니고.’ 라는 지연의 말에 혜인이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입니다. 그리곤 너무나 능청스럽게 교과서를 빌린 값으로 막대사탕을 하나 건냅니다. ‘혜인이는 원래 이런 구석이 있는 녀석’이니까요. 그때 사건이 터집니다. 의문의 막대과자를 받은 학생들 모두 노트를 도난 당한 것이죠. 본인이 특기인 과목의 노트를 말입니다. 이 얼마나 재기발랄한 시작입니까.
사실 추리 소설로서의 쾌감은 약합니다. 대단한 트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범인의 범행동기가 강력해 사건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큰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막대과자…>는 훌륭한 추리 소설입니다. 다시 읽으면 첫문단에서 지연과 혜인이 주고 받는 대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훌륭한 추리소설들이 그렇듯 작가는 이미 자신의 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가 그 패를 눈치도 못채고 지나가게 헛기침을 하며 점잖을 빼고 말입니다. 거기에 소위 낚였음을 뒤늦게 알 때의 재미, 훌륭한 추리 소설에는 꼭 있는 장치들이지요. 저는 <막대과자…> 속 그 패에 퍽이나 반했습니다.
한국 소설에서 교실과 학생이 등장 했을 때 독자의 머리 속에선 몇가지 그림이 쉽게 그려집니다. 우리네 교육 현실이나 입시 교육에 대한 고발일까? 풍자일까? 이런 저의 못된 예상 역시 <막대과자…>는 톡 하고 부러 뜨렸습니다. 막대과자의 날이니까요. ‘성큼성큼 다가’가 마음을 훔치는 날이니까요. 이 기분 좋은 반전 덕에 많은 독자들이 <막대과자…>를 사랑하지 않나 예상해 봅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습니다. 수업 시간 묘사들이 조금은 잔가지 같았거든요. 그 가지들을 조금 더 쳐냈다면 더욱 몰입감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연과 혜인 보다도 선생님들의 묘사 비중이 많은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잘 읽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실제 현직 출판사 편집자들이 봤으면 군침 좀 흘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응원과 기대의 목소리를 함께 보냅니다.
뱀꼬리. 혜인이 사물함엔 초록색 막대과자가 들어 있네요. 초록색이 제일 맛있잖아요. 아몬드가 솔솔 뿌려진… 그거 좀 나눠 먹지.